이제껏 KBS 주말 드라마의 노선을 쭉 달려온 사람이라면 아마 최근의 ‘참 좋은 시절’이 가장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참 좋은 시절은 그야말로 KBS 주말 드라마 같지 않은 드라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 – 내 딸 서영이 – 최고다 이순신 – 왕가네 식구들처럼 심각한 소재를 다루더라도 전반적인 분위기는 우울하지 않았던 주말 드라마 특유의 성질을 배반하고 있는 드라마니까.

가난한 이는 가난해서 우울하고 엘리트마저 비련으로 휩싸여 있다.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캐릭터가 너나 할 것 없이 슬프고 가련하다. 그들의 안개처럼 무거운 우울이 경주 시내에 자욱하게 깔린, 참 좋은 시절은 KBS 주말 드라마의 이단아다.

김희선이 연기하는 여주인공 차해원 또한 독특한 이력을 남기고 있다. 억척스러운 여주인공과 엘리트 남주인공의 만남이라는 소재는 딱히 신선할 것이 없지만, 그 대상이 배우 김희선이고 작가 이경희의 손에 쓰였다는 사실은 서로에게 있어 새로운 차원의 필모그래피를 만들었다. 어느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정점으로 올라서려는 커리어우먼의 모습은, 미스터 큐나 토마토 같은 김희선 표 트랜디 드라마의 18번이지만, 그 직업이 사채업이라는 현실에서 비전이 아닌 비련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참 좋은 시절의 해원은 김희선이 이따금 연기했던 가난하고 우울한 여주인공, 드라마 해바라기나 세상 끝까지의 배경에 김희선 스타일을 덧입힌 캐릭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희선의 트랜디 드라마를 컬트 드라마로 만들어놓은 이경희 작가처럼 그녀에게 김희선이라는 배우 또한 독특한 이력으로 기록된다.

아직 왕가네 식구들이 끝나지 않았던 시절에, 참 좋은 시절의 예고편에서 경상도 사투리로 왈패 처녀를 연기하는 김희선을 보며 이경희 작가가 그녀에게 참 많은 기대를 걸고 있구나 싶었다.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가 중심이 되는 주말 드라마를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지만 김희선에게 이런 연기를 시키는 것도 일종의 도전이다. 시청자에게 평이 박했던 배우가 맛깔나게 사투리를 소화해낸다면 극찬을 받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경희 작가는 부러 핸디캡을 주어 배우 김희선의 정점을 찍어보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이경희 작가가 어떤 의도로 경주 배경 중심의 걸진 사투리 쓰는 캐릭터를 불러들였는가는 몰라도, 그 반응이 최소한 제작진이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현재 4회까지 방영된 참 좋은 시절은 전작 왕가네 식구들의 반사이익으로 보기 드문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극찬을 받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반응 또한 적지 않다.

씁쓸한 것은 악평을 받는 이유 대부분이 주연 배우의 사투리 논란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명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결국, 사투리를 기가 막히게 소화했거나 사투리 설정이 애초에 없었다면 비난을 피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드라마의 주 무대가 되는 배경은, 경상북도 경주시다. 굳이 구구절절 지역의 설명을 덧붙이는 까닭은 참 좋은 시절의 사투리 논란이 꽤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경상도 사투리가 형편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경주 사투리가 아니고, 경상북도의 사투리가 아니라는 세밀한 지적이 줄을 잇고 있다. 경상도 사투리가 안방극장에서 보편적이면서도 까다로운 것은, 남도와 북도의 말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강세도 다르고 억양도 다르다. 같은 경상도 사람이면서도 이 사투리가 틀렸네, 맞네 하는 논란이 생기는 것 또한 모두 듣고 자란 지역 사투리의 친숙함에서 오는 것이다. 한마디로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의 사투리는 천지차이라고까진 말할 수 없어도 미국말과 영국말의 뉘앙스 차이 정도는 된다.

심지어 일부의 시청자는 지역 사투리의 차이를 넘어, 세세한 도시 사투리의 디테일마저 요구하고 있어 놀라움을 더한다. 옥택연과 김광규는 부산 사투리를, 김지호는 대구 사투리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경주 출신 배우 김상호를 제외한 모든 배우가 경주 사투리를 구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줄을 잇고 있다.

같은 북도와 남도라고 해도 또 도시에 따라 사투리의 종류가 달라진다니, 아무리 연기 잘하는 배우라도 이런 요구까지 부응하기란 무리다. 더군다나 시청자의 비판 또한 갑론을박이다. 막상 경상남도 사투리를 쓴다며 지적을 받는 김희선은 부모님이 대구 출신이라 남도의 사투리와는 거리가 멀다. 경주 사투리가 아니라고 지적하는 시청자가 있는가 하면 김희선 혼자 제대로 경주 사투리를 구사한다는 지역민도 있다.

시청자는 이미 응답하라 1994를 통해 사투리 연기의 정점이 어떤 것인가를 잘 알고 있다. 이미 응답하라 시리즈로 경상도 사투리의 정점을 알게 된 시청자에게, 이 정도의 사투리 연기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 심지어 응답하라 1994 또한 경상도가 아닌 세부 도시까지 파고 들어가면 부적격인 사투리 또한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사투리 논란에 휘말리지 않았던 것은 적어도 기본적인 배경의 고찰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사투리, 혹은 경주 사투리의 차이가 아니다. 어느 네티즌의 불평처럼 그 지역 주민이 아닌 서울 사람이 들어도 어색한 사투리라는 것이 참 좋은 시절의 현주소니까. 드라마의 모든 캐릭터가 중구난방으로 통일되지 않은 정체불명의 사투리를 쓰는데, 배우 자신은 물론 제작진부터가 배경 ‘경주’를 향한 연구에 소홀했다는 증거다.

경주 시내를 배경으로 쓰면서 가장 중요한 언어 문제가 중구난방이니 그야말로 이 드라마의 배경이란 드라마의 코디 아이템으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배경으로 쓰인 지역을 향한 진지한 고찰과 애정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이 드라마의 캐릭터들은 그저 사투리 쓰는 서울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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