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통일준비위원회 발족을 예고한 것에 대해 해석이 분분하다. 연초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며 통일을 경제적 관점으로 접근했던 대통령이 거듭 통일을 강조하는 것이 어떤 정세판단에 기초한 것인지를 아무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통일’은 ‘북한 체제 붕괴를 통해 이루어지는 흡수통일’이 아니겠느냐는 의구심이 있다. ‘통일 대비’를 강조하면서 통일을 위한 방법은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노태우 정부가 만들었던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대체하는 새로운 통일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나, 이 계획 역시 ‘통일 추진 계획’이라기보단 ‘통일 실행 계획’의 성격이 강할 거라는 전망이다.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은 “국정원이 정부에 북한 붕괴의 가능성을 보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한다. 한국 정부의 북한 붕괴에 대한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북한이 스스로 무너지는 자동붕괴론과 한국 측이 북한 붕괴를 꾀하는 붕괴추진론이다. 현 남재준 국정원장은 북한 붕괴를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재 국정원은 붕괴 추진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자동붕괴의 조짐이 보인다는 보고를 하고 있다는 전언이 있다.
이는 2010년 이명박 정부가 느닷없이 통일세를 제시했던 상황과 포개진다. 당시의 한국 정부도 김정일 정권이 금세 붕괴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5년 동안의 ‘전략적 인내’의 결과는 없었다. 대북정책을 사실상 포기한 ‘5년의 공백’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인 25일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장에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물론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 다르다. 북한의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김정은 정권의 결속력이 김정일 정권만큼은 안 된다는 분석이 많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태도를 다소 바꿨기 때문에 북한이 남북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가 실질적으로 북한 붕괴 시 한국 측의 대응 방안이 전무하다는 사실에 대해 위기를 느끼고 실질적인 행동을 취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국정원 보고의 타당성이 문제의 핵심이 된다. 국정원은 박근혜 정부 1년차 대선 개입의 주역으로서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되어 왔다. 길게 봐서도 민주화 이후 국정원은 자신의 존재의의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조직의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댓글 여론전이나 민간 기업의 기술유출 수사 등의 새로운 업무를 계발해왔고 스스로 업무를 떠맡아 왔다. ‘이석기 내란음모’ 수사로 시작된 공안정국의 의도와 비슷한 문맥에서 국정원 발 ‘북한 자동붕괴 조짐론’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 수 있는 근거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통일준비위원회에서 논의되는 의제가 무엇일지를 지켜봐야 한다”라고 입을 모은다. ‘통일준비’란 수사가 통일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론을 말한다면 문제가 없으나, 현재 박근혜 정부의 인식으로 볼 때는 ‘북한 급변사태 시 한국 정부 측의 대응전략’일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그래도 기금을 만들거나 세금을 거두거나 유사시 통일의 충격파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한다면 차기 정부를 위해서도 좋지 않겠느냐”고 해설했다.
그러나 북한의 사정이란 것은 내일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몇 년을 더 갈지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있다. 대북정책을 담당하는 관료들조차 ‘북한 사정은 아무도 모른다’고 푸념하기도 한다. 급변사태에 대한 대책도 필요는 하겠으나, ‘통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닌 ‘통일 그 자체’에 정부가 치중하는 것을 ‘통일 정책’이라 보는 것은 난감한 일이다. 국정원의 보고가 얼마나 진실한지 검증도 안 되는 시국에서 정부가 이를 너무 신뢰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대선 개입’이나 ‘이석기 내란음모’ 뿐만이 아니라 ‘통일은 대박’이란 수사조차 국정원의 영역 안에 있다면 민주적 통제의 범위를 벗어나 있는 정보기관의 영향력의 비대함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개혁’이나 ‘해체’의 요구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국정원의 노력에 박근혜 정부의 핵심 정책이 좌우된다면 이는 국가적으로도 비극적인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통일준비위원회의 구체적인 활동은 ‘박근혜 정부의 꿈’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가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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