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반대하는 일들이 착착 진행 중이다. 미국산 쇠고기는 결국 판매되고 촛불을 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법’의 이름으로 연행됐다. 말 많던 경찰관 기동대도 결국 창설됐다. 당연히 이명박 정부의 심판의 장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서울시 교육감 선거도 결국 그렇게 됐다.

보수 언론에 저항하기 위해 광고주 불매운동을 하던 네티즌들을 강압적인 방식으로 수사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포털에서의 다양한 여론 형성이 괘씸하던 차에 각종 규제들을 추진하고 있다. 결국 정부는 YTN에 자신의 선거캠프 방송특보 출신을 앉혔다.

▲ 지난 5월 초, 유니버시아드 대회 실사단과 함께 한 박광태 광주광역시장(가운데)과 강박원 광주광역시의회 의장(왼쪽에서 세번째). 명예시민증을 수여하고 기념촬영했다. ⓒ 광주광역시청
방송통신위원회는 PD수첩에 광우병 보도와 관련 국민들에게 사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MBC는 결국 <PD수첩> 편에 선 수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져버리고 사과방송을 내보냈다. KBS 사옥에 경찰력이 투입됐다. 이사회는 결국 정연주 사장 해임안을 결의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해임권을 행사했다.

누가봐도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 의도가 다분히 보이는데, 그 말도 안되는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8.15 사면대상에 기업인들이 다수 포함시켰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 노골적이다.

그런데 소위 절차적 민주주의로는 정부의 독주를 견제할 수 없어 보인다. 국회는 국민을 대변하지 못하고, 검찰과 경찰은 정권의 편이 된 지 오래다. 법원도 마찬가지다. 불과 얼마 전 삼성 이건희 회장을 통해 확인하지 않았나.

권력은 '제도'와 '절차'를 쉽게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만들 수 있다. 대안이 될 것으로 믿었던 촛불은 이제 너무 희미해서 걱정이다. 그 모든 촛불의 힘이 이제는 베이징 올림픽으로 이동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법과 제도가 이렇게 허술했던가. 악몽이 계속되고 있다.

자치단체장의 '치적쌓기'로 이용되는 국제대회

광주에서도 많은 이들이 반대하고 있는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자치단체장의 치적쌓기'라는 비판에도 불구 박광태 광주광역시장은 '2015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라는 국제대회 유치에 정력을 쏟아붓고 있다. 그 과정은 언론과 관변단체, 시의회 등 끈끈한 동맹을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다.

박시장은 이미 올해 초 2013년 유니버시아드 대회 유치에 나섰다가 실패한 바 있다. 당시 유니버시아드 대회의 유치전에 뛰어들 때도 시민들의 여론 수렴은 없었다. 유치실패는 단체장의 고집 하나로 밀어붙인 독단행정의 당연한 결과였다.

100억이라는 상당한 돈을 유치전에 쏟아 붓고도 여전히 돈의 쓰임새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생산유발 9500억원, 부가가치 4500억원, 고용유발 3만 여명’이라는 모호한 장밋빛 전망들만이 난무했고 건설사를 사주로 둔 지역 대부분의 언론 역시 광주시의 입장을 비판 없이 전달했다.

막상 재도전에 실패하고 각종 의혹들이 제기되자 광주시는 "시민 명령에 따라 재도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다시 건설사를 사주로 하는 언론사와 관변단체를 동원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갑자기 지역 신문에는 재도전의 당위성을 이야기하는 관변단체 인사와 공무원들의 기고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최근 광주시의회와 상공회의소가 주관한 토론회는 여론 수렴했다는 모양새를 갖춰준 것이란 쓴소리가 나온다. 시를 견제해야 할 시의회가 집행부의 들러리가 됐다는 것이다. 이제 시는 관변단체와 언론의 도움을 받아 적절해 보이는 모양새를 갖추고 재도전으로 가기 위한 일정들을 착착 진행할 것이다.

▲ 지난 4월 실사단 방문을 앞두고 시청사 주변에는 U대회 유치를 알리는 홍보탑과 대형 현수막들이 걸려 있다. ⓒ 광주드림
닿을 곳 없는 목소리들

나는 유니버시아드 대회의 광주 유치를 반대한다. 유치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고 그 이익이란 것도 결국 정치권력, 건설업자, 투기꾼, 개발업자의 몫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가 어떤 식으로 여론을 수렴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2015 유니버시아드 대회 유치에 부정적이었다. 문제는 그 같은 목소리가 과연 여러 장애물을 헤치고 정책결정자에까지 닿느냐이다.

나는 역시 방송이 정권이나 자본에 복무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국민의 건강권을 포기한 정부의 쇠고기 졸속 협상을 철회하고 재협상해야 한다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나는 교육이 경쟁의 장으로 변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런데 권력은 그 수많은 목소리를 무시한 채, 절차적 민주주의 사이에 적당히 숨어서 원하는 바를 관철시킨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이미 너무 많이 보고 있다.

촛불이 타오르면서 실질적 민주주의가 드디어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닐까 기대했었다. ‘야간 집회는 불법’이라는 제도적 테두리에 움츠려들지 않고 국민의 저항권을 행사하는 촛불집회의 행렬을 보면서 그러했다. 그런데 요즘은 두렵다. (베이징 올림픽 때문에 더 그러할 지 모르겠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서 그것의 위험성을 보도하는 기사나 방송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땡이뉴스'나 오락프로그램만 보게 되는 시기가 오게 될까 두렵다. 결국 한반도 전역이 대운하 공사로 파헤쳐 질까 걱정된다.
박광태 광주 시장이 더 이상 시장도 아닐 2015년, 단체장의 치적쌓기 욕심으로 유니버시아드 대회 유치의 뒷감당을 고스란히 시민이 지게 될까 무섭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답이 될 수 없다면 정답은 어디 있을까? 우리 안의 민주주의가 더욱 절실한 때이다. 다시 촛불이라도 아니 필요하다면 벽돌이라도 들어야 하지 않을까?

지역일간지 <광주드림>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광주드림은 한때 지역 문화잡지 <전라도닷컴>과 한몸이었으나 자본의 문제로 각각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역신문이 지역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문법 한 조항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정기간행물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신문법 <제5조> 3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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