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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헤르메스’, 19금 연극? 촛불 예찬![블로그와] 박정환의 유레카
박정환 | 승인 2014.02.25 12:09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중국 속담처럼 자본은 모든 걸 잠식하고 모든 가치관의 맨 윗자리에 오르기를 바라는 속성이 있다. 주인공 남건은 한때는 이데올로기가 최고인 줄로만 알던 노동운동가를 한 전력이 있는 남자다. 하지만 이데올로기가 밥을 먹여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찍 깨닫고는, 메피스토에게 영혼을 팔아치운 파우스트 마냥 자본을 추구하기 위해 자본이라는 가치관을 이데올로기의 자리와 맞바꾼다. 노동 운동을 함께한 전상국과의 옛 우정은 돈 이천만 원을 빌려달라는 선배 전상국의 부탁 앞에서 산산조각난다.

   
▲ 사진제공 한강아트컴퍼니
이는 남건이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노동운동을 함께했다는 동지애와 맞바꾼 결과에서 비롯된다. 남건이란 캐릭터는 돈에 경도된 인물이면서, 성인 연극 기획자다. <헤르메스>는 성인 연극 기획자라는 남건의 캐릭터 때문에 자칫 19금 외설 연극으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연극은 되레 외설 연극을 풍자하고 있다.

실제 모 외설 연극에 출연한 여배우의 남동생이, 누나가 외설 연극에 출연하는 배우인 줄 모르고 외설 연극을 찾았다가 누나가 벗는 모습에 경악을 하고는 불같이 화를 내며 공연장을 떠난 적이 있다고 한다. <헤르메스>는 이를 영리하게 비꼰다. 극 중에서 누나가 벗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하는 게 아니라 자살을 하는 소심한 남동생의 설정으로, 실제 외설 연극을 공연하다 벌어진 여배우의 남동생 해프닝을 비꼬고 풍자한다.

그럼에도 <헤르메스>는 돈으로 승승장구하는 남건의 자본주의 성공기에만 안착하지 않는다. 반대로 자본주의에서 승자로 살아남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영혼에는 생채기를 입는 가련한 인간 군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건이 여성 안마사와 성미에게 대소변을 자기 몸에 싸달라고 요청하는 건 분비물 페티시로 보일 법하다. 하지만 이는 돈을 추구하느라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남건 자신을 대소변과 동일시하는 자기 학대다.

한 달에 9천만 원 가까운 거액을 벌지만 남건의 주위 사람들 모두 돈으로 말미암아 나락으로 떨어지는 설정 역시 남건뿐만 아니라 극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이 돈에서 자유롭지 못함과 동시에 자본으로부터 생채기를 입는 가련한 이들임을 보여준다. ‘기브 앤 테이크’처럼 돈을 벌면 다른 중요한 걸 잃을 수 있다는 걸 외설 연극 제작자라는 설정을 빌어 관객에게 보여준다.

그 중에서 단 한 명, 유가인을 대신해서 성인 연극에 뛰어드는 김성미는 다른 여타 캐릭터와는 달리 자본의 생채기에서 자유로운 인물이다. 영혼의 구원을 바라는 남건에게 한 줄기 빛 같은 존재는 여성 안마사 유정숙이다. 남건은 고립된 인물이다. 남건은 물신주의로 말미암아 인간관계가 고립되고 단절된 남자다. 이런 남건에게 유정숙은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남건으로 하여금 광장의 촛불 집회에 관심이 가도록 이끄는 인물이다.

   
▲ 사진제공 한강아트컴퍼니
유정숙은 물신주의와 노동운동을 맞바꾼 남건으로 하여금 방 안의 촛불이라는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넓디넓은 광장이라는 집단적인 차원으로 끌어 올린다. 동지들과 어울려 더 나은 세상을 도모하던 남건이 일신의 영달을 위하는 개인적인 차원으로 축소된 자아정체성을 다시 집단으로 환기하게 만들고 집단에 소속되도록 유정숙이 유도한다는 건 자본으로 말미암아 폐쇄적이 되어버린 남건의 자아정체성을 다시금 집단으로 이끈다는 의미와 맞닿는다.

남건 혼자만을 위해 살아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주위를 돌아보며 살라는 선각자적 메시지를 던지는 이가 유정숙이다. 여성 안마사가 자본주의에 천착한 남자의 영혼을 정화하고 예전의 정체성인 집단으로 소환한다. 돈에 찌든 한 남자의 영혼을 건사하는 건 자본주의적인 관점으로 볼 때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여성 안마사 덕분이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박정환  js7kei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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