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다니는 회사는 최소한 영화가 그려 낸 그런 괴물은 절대로 아닙니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근무하다 2007년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 씨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 대한 삼성 쪽의 첫 입장이 나왔다.

삼성전자 김선범 부장(DS부문 커뮤니케이션팀)은 23일 삼성전자 공식 블로그 (삼성 투모로우)에 “영화가 만들어 낸 오해가 안타깝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또 하나의 약속>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해당 글은 삼성전자 쪽에서 공식 입장으로 낸 글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 개봉을 둘러싼 숱한 논란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삼성에서 홍보 담당자를 통해 나온 ‘첫’ 입장인 점을 감안하면, 해당 글은 사실상 삼성의 공식 입장인 셈이다.

▲ 삼성전자 블로그 화면 캡처
“영화가 일으킬 오해가 너무나 크다”

김선범 부장은 먼저 “20년 동안 자랑스럽게 일해온 회사가 영화에서는 진실을 숨기기 위해 돈으로 유가족을 회유하고 심지어 증인을 바꿔 치기해 재판의 결과를 조작하려 하는 나쁜 집단으로 묘사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일반 관객들이 저의 회사에 대해 느낄 불신과 공분을 생각하면 사회와의 소통을 담당하는 홍보인으로서 마음이 무겁다”면서도 “그저 영화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엔 영화가 일으킬 오해가 너무나 큰 것 같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근거 없는 외압설”이 퍼질 때에도 묵묵히 지켜봐야 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영화는 기획부터 제작, 상영에 이르기까지 여러 수단을 동원해서 홍보를 펼쳤지만 회사가 그에 대해 한마디 입장도 밝히지 않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며 “허구의 이야기를 사실처럼 포장해, 제가 다니는 직장을 범죄집단처럼 그리고 있는데도 말 한마디 못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답답했다. 영화 속의 가공된 장면들이 사실인 것처럼 인터넷에 유포될 때도 침묵을 유지하고, 심지어 근거 없는 ‘외압설’이 퍼지는 것도 묵묵히 지켜봐야만 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직원과 사업장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회사와 직원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정부의 환경 기준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하는지 잘 알고 있기에 제가 근무하는 일터의 안전에 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고 영화 속 삼성과 실제 일하고 있는 삼성의 모습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 영화, '또하나의 약속'
김선범 부장은‘ <또 하나의 약속>이 단순한 영화가 아닌 투쟁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는 “영화는 영화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예술의 포장을 덧씌워 일방적으로 상대를 매도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일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더구나 외압설까지 유포하며 관객을 동원하고 80년대에나 있었던 단체관람이 줄을 잇는 것을 보면서 이 영화가 단순한 영화가 아닌 투쟁 수단으로 변질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삼성에 대해 “설명이 부족하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에 서툰 것도 사실이지만 제가 다니는 회사는 최소한 영화가 그려 낸 그런 괴물은 절대로 아니다”라면서 “저는 제가 속한 이 회사에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다”고 단언했다.

반올림 “삼성, 여전히 반성 안 해” 비판

해당 글에 대한 반응은 매섭다. 해당 글에 달린 3백여개가 넘는 댓글 대다수는 삼성 쪽의 태도를 문제 삼으며, 동시에 김선범 부장의 글을 ‘호되게’ 꾸짖고 있다.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기업이 되지 않는 길은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입니다. 같은 공장에서 일했던 동료들의 증언이 줄줄이 나왔는데 이런 얼토당토 않은 해명이라니, 국민을 바보로 아나요? 정말 불쾌하군요. 수준 이하네요.”

“보이는것만 믿지말고 믿어야 보입니다. 진실을 왜곡하지 마세요.”

“더이상 세상을 속이려 하지맙시다. 그들도 당신과 같은 소중한 생명입니다”

- 삼성 투모로우에 달린 댓글 중 일부

해당 글에 대해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이종란 노무사도 “누구 때문에 이 영화가 나오게 되었는지 삼성은 곰곰이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종란 노무사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홍보 담당자 이름으로 마치 삼성의 공식 입장이 아닌 것처럼 포장했지만 결국 홍보 담당자의 입을 빌려 직접적으로 (공식 입장을) 낸 거나 마찬가지”라며 “삼성이 안전문제에 소홀했다는 증거가 너무나 많이 있고, 과거 뿐 아니라 작년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불산 누출사고 때에도 은폐했고 이곳에서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가 2천 여건에 달했는데 글은 ‘안전조치 등 최선을 다했는데 영화가 매도하고 있다’고 한다”고 해당 글을 비판했다.

그는 “글을 보고 현장에서 일하는 (삼성) 노동자들이 걱정됐다. 여전히 거짓말을 일삼고 있어서 안타깝다”며 “예를 들어 삼성 쪽에서 피해자들을 회유하려는 것도 많이 알려졌고, 이는 실제로 <추적60분> 방송을 통해서도 드러났는데 사실이 아닌 것처럼 밝혔다”고 지적했다.

그는 삼성을 향해서도 “왜 이 영화에 대해 (사람들이) 공분을 하는지 이제라도 자기 성찰을 해서 돌아봤으면 좋겠는데 부끄러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도대체 언제까지 삼성이 이 문제에 대해 이런 식으로 나올 것인지 답답하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