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수 사태를 자초한 빙상연맹은 이번 소치올림픽이 괴로울 뿐일 것이다. 특히나 올림픽이 끝나면 문체부의 집중감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부패한 그들은 지금 당장 집중해야 할 올림픽보다 감사 대비에 더 힘을 쏟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일까? 전 세계의 언론이 나서서 분한 한국인, 억울한 김연아의 심정을 쏟아내는 동안에도 내내 침묵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심판에 대해서 항의하는 국외 청원사이트에 서명이 100만 명을 넘길 때까지도 그 침묵과 무대응은 이어졌다. 보다 못한 대한체육회가 먼저 나서서 IOC에 강력 항의하겠다고 나서자 그때서야 마지못한 듯 사례를 찾아보고 있다는 궁색한 답변을 내놓았다. 사례를 찾아볼 것이 뭐가 있는가. 그리 멀지 않은 솔트레이크 사태가 있고, 그 정도는 빙상과 전혀 무관한 일반 국민들도 다 아는 내용이다. 게다가 해외언론이 앞 다퉈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도대체 상식으로도 알 만한 내용을 빙상연맹은 왜 모르고, 또 몰랐다고 하더라도 몇 시간이면 찾아낼 것들을 하루가 다 돼가도록 찾지 못하고 결국 상위단체인 대한체육회가 먼저 나서게 했는지는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대처다. 이 정도면 무기력, 무능을 떠나 무기능을 의미한다. 그것이 한 사람의 전횡에 의해 이끌려온 시스템의 맹점이 드러난 것이라 할지라도 너무 심하다.

그러더니 빙상연맹은 믿을 수 없는 발표를 했다. 심사위원의 점수에 대해서는 제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여론이 발끈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ISU 친콴타 회장을 만나 규정에 맞게 잘 치러졌나 확인해달라고 정중히 요청했다고 알려왔다. 참으로 점잖고 느긋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짜로 요청이나마 했을지도 의심스럽다. 아니 거기까지는 믿어준다고 하더라도 정말 몰라서 ‘정중한 요청’ 따위나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런 요청은 IOC에 먹히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IOC대변인의 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사자인 빙상연맹이 침묵하고, 무기능하는 동안 세계 언론들은 차분하지 못했다. 한국빙상연맹보다 먼저 IOC에 이 사태의 입장을 요구했다. 그러나 IOC로서도 답답한 노릇이었다. IOC 애덤스 대변인은 "사람들이 너무 앞서 나가는 것 같다. 먼저 판정 시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려면 국제빙상연맹(ISU)을 통한 공식 항의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러한 절차를 밟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 김연아가 여자 피겨스케이팅 싱글 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뒤 태극기를 두른 채 링크를 돌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변인의 말에는 중요한 단서가 있다. 공식 항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IOC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정중한 요청이 아니라 공식 항의만이 유효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알아보는 중이다, 하지 않겠다고 하다가 결국엔 고작 ISU회장에게 정중하게 요청했다로 진행된 한국빙상연맹의 태도는 IOC에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법을 알려줬지만 빙상연맹은 무슨 이유인지 외면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빙상연맹이 그것을 몰랐을까? 알고 그랬다면 대단히 심각한 일이겠지만 몰랐다고 하더라도 용서 못할 직무유기다. 분명한 것은 현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그저 여론무마용 제스추어에 불과한 것이라는 의혹이 짙다는 것이다. 안현수를 러시아에 빼앗긴 것만도 씻지 못할 대역죄를 저지른 빙상연맹이 끝까지 이런 속임수나 다름없는 태도를 취하는 것에는 분노가 치밀 수밖에는 없다.

한국빙상연맹이 이러는 동안 해외에서는 한국보다 더 열심히 소치 스캔들을 파헤치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운 상황이다. 21일 USA TODAY는 익명을 요구한 올림픽 피겨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폭로했다.

"(심판들의 국적 구성이) 분명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덧붙여 말했다. "이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을 겁니다(said the geographic makeup of the judging panel "was clearly slanted towards (Olympic gold medalist) Adelina Sotnikova," adding "this is what they can do."

▲ 소치 스캔들의 진실은 소트니코바 1위 확정 후 심판과 선수가 뜨겁게 포옹하는 장면에 있다
그런가 하면 bleacher report의 기사 말미에 붙인 여론조사에서는 85%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소트니코바의 금메달이 잘못됐다는 결과를 보이고 있다. 사실 해외언론의 반응을 더 찾아볼 것도 없이 소치 스캔들은 결코 ISU회장에게 개인적으로 정중한 요청을 할 사안이 아니다. 이미 솔트레이크 스캔들로 인해 피겨는 IOC로부터 퇴출위기에 처해 있다. 과연 ISU회장이 단지 정중한 요청일 뿐인 한국빙상연맹의 점잖은 바람대로 움직여줄 거라 믿는다면 순진해도 너무 순진한 것이다. 그러나 빙상연맹이 그렇게 순진하지는 않을 것은 분명하다.

지금 빙상연맹이 반드시 해야만 일은 IOC대변인이 말한 것처럼 공식항의뿐이다. 그것을 모르지 않을 빙상연맹이 한가하게 정중한 요청이나 하는 속내가 피겨 판정만큼이나 의심스럽지 않은가. 참 수상한 일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