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돌아갈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나는 어쩌면 이곳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머지않아… 죽게 되겠지.’

도민준(김수현 분)의 일기장에 적혀있는 마지막 글에 천송이(전지현 분)는 그저 하염없는 눈물만 흘릴 뿐이다. 떠나지 않아도 괜찮은 거냐고 물었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아무 말 없이 떠나 홀로 남게 될 자신이 두려워, 연한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그의 한 마디를 바보처럼 믿어버리고 말았다.

천송이는 장변호사(김창완 분)로부터 도민준의 진심을 듣게 된다. 도민준의 일기를 모두 읽은 그녀이지만, 적혀있는 모든 글들은 도무지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혼란스러운 그녀에게 장변호사는 일기장 내용의 사실 여부를 애써 밝히려 하지 않았다. 그동안 천송이를 바라본 도민준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그 한 가지만 일러주는 것이야말로 모든 혼란을 멈출 유일한 답이었으니까.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면서 내 옆에 있겠다고 한 거였냐는 천송이의 물음에 장변호사는 안타까운 마음을 삼키며 도민준의 마음을 전한다. ‘그만큼 천송이 씨를 많이 좋아하시니까요. 천송이 씨가 선생님 좋아하기 훨씬 그 이전부터 많이 좋아하셨어요. 천송이 씨가 아는 것 훨씬 그 이상으로 많이 좋아하셨구요. 천송이 씨 마음 다치는 거 싫어서 이렇게 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셨습니다.’

이제 알게 됐다. 도민준이 왜 그동안 그렇게 무뚝뚝하기만 했는지, 사랑한다는 말을 왜 그렇게 아껴야만 했는지, 그러면서도 왜 언제나 자신 곁에 머물면서 지켜주려 애썼는지, 천송이는 그제서야 그의 진심을, 오래 전부터 품어왔던 그의 속사랑을 깨닫고 만 것이다. 제 목숨까지 바쳐서라도 자신을 사랑하기를 원했던 그의 미친 듯한 순애보를 말이다.

사랑에는 반드시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라고 했던가. 도민준은 쉽게는 말하지만 도저히 지키기는 힘든 이 사랑에 대한 정의를 온전히 따르고 실천하려 했다. 사랑함에 있어서 목숨을 내어주면서까지 그 사랑을 지키려는 마음보다 더 귀하고 절절한 것이 있을까. 천송이는 도민준의 속사랑에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감히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다며 투정을 부릴 수가 없다. 아니 이제 그것은 도민준의 마음을 도려내는 죄악에 가까운 것임을 천송이는 알아차리고 말았다.

이재경(신성록 분)의 모략에 천송이는 또 다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도민준이 불러낸 것처럼 꾸민 후, 독극물이 들어간 와인을 마시게 한 것이다. 다행히도 도민준은 공간이동을 통해 천송이를 병원으로 옮기고, 스스로 응급처치를 취해 천송이 몸속의 독극물을 빼내어 다시 한번 그녀를 살려낸다. 이렇듯 천송이에게 도민준은 사랑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몇 번이나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다.

이제 천송이는 도민준의 속사랑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도 자신을 죽음에서 건져준 이가 그라는 사실도 똑똑히 알고 있다. 아무도 없는 호젓한 섬으로 공간이동을 한 도민준과 천송이. 그곳에서 천송이는 지금까지 여자가 남자에게 한 고백 중에 가장 묵직하고 진중한 사랑 고백을 한다. 남자도 하기 힘든, 웬만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이렇게까지 절절하게 나올 수 없는 사랑 고백을.

‘시간을 멈출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팔고 싶지만, 가끔은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생각도 하지만, 그대로 시간을 되돌려도 난 당신을 다시 만날 거고, 그렇게 뚝딱거리면서 싸울 거고, 당신한테 반했을 거고, 사랑할거야.’ 사랑해로 시작한 그녀의 고백은 아름다웠고 눈물겨웠다. 여자의 입에서 먼저 나온 고백이라고 하기에는, 무척이나 비장하고 찬란해 보이기까지 했다. 도민준의 대답은 ‘그래’였고, 그 마음을 말로 다 할 수 없어 진한 키스로 대신했다. 40도가 넘는 고열이 일어날 것임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렇게 그녀의 고백은 또 한 번의 희생을 감수케 할 만큼 컸다.

그들은 미래를 그렸다. 자녀는 7명을 낳기로 했고, 아파트가 아닌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에서 살기로 했다. 개도 몇 마리 키울까 하기도 했다. 그 많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려면 부지런히 벌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천송이는 조연이든 단역이든 닥치는 대로 한다고 했고, 도민준은 강의를 지금보다 더 많이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아기자기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을 꾸듯 이야기하는 그들이었다.

그러다 천송이는 모닥불이 피워져 있는 푸른 바닷가 앞에서 그토록 고대하던 프로포즈를 받게 된다. ‘천송이, 니가 듣고 싶은 말들 다 해줄 순 없지만, 니가 그리는 미래에 내가 함께하고 싶은 건 사실이야.’ 도민준의 짧은 프로포즈가 끝난 후, 오랫동안 도민준의 주머니에 숨겨져 있던 반지가 드디어 천송이의 손가락에 끼워지게 된다. 그 순간 천송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완벽하게 행복하다’

그녀는 정말로 행복했다. 마치 꿈인가 싶을 정도로 기뻤다. 그러나 그 뒤에는 또 한 번의 쓰라린 고백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잠시 하늘을 바라본 이유는 바로 이 고백을 위한 서글픈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서였다. ‘도민준, 내가 사랑하는 도민준, 우리 이제 꿈에서 깰 시간이야!’ 그녀는 이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신은 날 위해서 어딘가에 존재해 줘. 날 위해서 죽지 말고 어딘가에 존재해 줘. 그러니까 내 말은… 가! 당신이 있었던 곳으로.’ 천송이는 이별을 고했다. 떠나라고 말한 것이었고 보내준다 고백한 것이었다. 그녀야말로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는 대신, 그의 목숨을 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만 것이다. 이제 희생은 그녀의 차례가 되고 말았다.

도민준의 죽음에 대한 암시가 비극을 예상케 하지만, 아마도 그들은 인간의 평균 수명을 다하면서 사랑하는 것으로 끝나는 해피엔딩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이 한 번 태어나 죽게 되는 것은 당연한데, 도민준이 그런 사람들 중 하나가 된다는 것이 비극일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은 그보다 천송이의 눈물 어린 고백이 주는 감흥에 흠뻑 빠질 때다. 도민준의 속사랑을 넘어선 천송이의 사랑이 더 깊고 오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으니 말이다. ‘별에서 온 그대’ 19회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것, 도민준의 사랑에 반응한 천송이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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