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 만에 현직 기자에서 청와대 대변인으로 자리를 갈아타 논란이 일었던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 사태를 계기로 언론의 공정성 및 공공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언론인이 현직에서 바로 정부기관으로 들어가는 것을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20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장악 체제에서 나타난 현상고발: MBC 사장 선임, KBS 민경욱 사태로 본 공영방송의 정체성과 저널리즘> 토론회에서 “정계입문 직전까지 언론활동을 수행하는 것은 언론인의 직업윤리를 저버리는 행위로 관행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언론인들의 정계 진출에 대한 구체적인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이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대변인 임명 당일에도 KBS 출근했던 민경욱 대변인

민경욱 대변인은 청와대에서 임명되기 하루 전인 4일, 문화부장으로 KBS <뉴스9>에 직접 출연해 문화재 복원에 대한 ‘데스크 분석’을 방송했다. 임명 당일인 5일에도 아침 8시30분 KBS 뉴스의 방향과 논조를 결정하는 편집회의에 참석했으며, 오전 11시20분에는 평기자의 리포트 기사를 수정하고 승인했다. 그리고 두 시간 뒤인 낮 1시30분. 청와대는 민경욱 KBS 문화부장을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더욱이 민경욱 대변인은 KBS 내부 윤리강령까지 어기고 청와대로 간 것으로 드러났다.

▲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가 20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장악 체제에서 나타난 현상고발: MBC 사장 선임, KBS 민경욱 사태로 본 공영방송의 정체성과 저널리즘> 토론회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미디어스
물론 현직 언론인이 청와대 행을 택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지난 1993년 김영삼 정부 때에는 △주돈식 당시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정무수석으로, 지난 2002년 김대중 정부 때에는 △ 조순용 당시 KBS 보도국 편집주간이 정무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때에는 △김은혜 당시 MBC 보도국 뉴스편집센터 차장이 청와대 부대변인으로 △ 유성식 당시 <한국일보> 정치부장이 정무수석실로 △김두우 당시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이 정무2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SBS 출신인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과 △하금열 비서실장 역시 언론인으로써 현직에 있다가 바로 청와대로 직행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이남기 SBS 미디어홀딩스 사장은 박 대통령이 홍보수석으로 내정을 발표한 당일에도 SBS 지주회사인 SBS 미디어홀딩스 사장실에 정상적으로 출근한 바 있다.

“언론인들의 정치참여를 엄격히 금지해야”

최진봉 교수는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며 “만약 정부기관 진출에 뜻이 있는 언론인이라면 미리 언론사를 떠나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도와 당선 시키고 정계에 입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며, 언론사 퇴직 후 1년 이상의 정부기관 진출 유예기간을 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언론사 내부에 언론인들의 정치참여와 관련된 윤리규정을 만들어 언론인들의 정치참여를 엄격히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즉시 모든 방송제작과 취재 및 보도 현장에서 퇴출시키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공직선거법 제53조(공무원 등의 입후보)는 언론인들의 정계진출을 규제하고 있다. 선거 90일전까지 직을 그만둬야 출마가 가능한 직업군을 정하고 있는 이 조항은 선거에 나서려는 언론인은 선거 90일 전까지 언론사를 그만둬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출마 자체가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선출직 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민경욱 대변인처럼 현직에서 곧 바로 청와대 등으로 가는 이들을 징계할 수 있는 없다. 현직에서 곧 바로 정부기관에 들어가는 방법으로 사실상 정계에 진출하는 이들을 막을 수 있는 규정은 아직까지 없다.

최 교수는 이와 관련해서도 “언론인은 언론매체를 통해 유권자에게 늘 다가가는 존재로 유권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현행 선거법에 규정된 사퇴시한 90일을 최소 1년 이상으로 연장시킬 필요가 있다”며 “언론인으로 현직에 있으면서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유리한 보도를 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고, 이럴 경우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1년이라는 기간이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라고 제언했다.

정홍규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도 민경욱 사태를 언급하며 KBS 내부 윤리강령이 있음에도 퇴사한 사람을 제재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데 안타까움을 표했다.

정홍규 간사는 “민경욱 건은 KBS 입사 이래 보도본부 내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일”이라며 “후배 기자들에게 치욕적 상황을 안겨준 사람에 대해 제재 할 수 있나 고민해보고 알아봤지만 퇴직하고 간 사람에 대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KBS가 윤리강령을 두고 있지만 윤리위원회를 운영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처벌받은 사례가 거의 없었던 걸로 알고 있다”며 “KBS 조직이 (민경욱 대변인이) 윤리강령을 위반했음에도 옹호하고 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게 현 KBS의 수준이라는 데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는 언론개혁시민연대, 신경민 민주당 의원 주최로 진행됐으며, 노영란 매비우스 사무국장, 정홍규 KBS새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 이영만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 홍성일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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