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서울고등법원은 2009년의 쌍용차 정리해고가 무효라고 판결한 바 있다. 하지만 5년간의 고생과 수십 명의 죽음 앞에서 이를 축하하기란 멋쩍은 상태다. 최종적으로 대법원 판결에서 어떤 결론이 날지도 기다려 보아야 한다. 최근에는 시민들이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에게 손해배상금으로 떠넘겨진 47억원의 ‘10만분의 1’을 부담하는 ‘노란봉투 프로젝트’가 생겨났고 가수 이효리씨도 동참하는 등 이슈가 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모인 금액은 2억원 정도다.
그런데 사회디자인연구소 김대호 소장은 18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칼럼에서 “자동차 산업과 인연이 깊고, 쌍용차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오랫동안 지켜 보아온 필자 역시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가슴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기뻐서가 아니었다. 판사의 따뜻한 마음과 결합한 ‘짧은 생각’이 일파만파 초래할 ‘진짜’ 사회적 약자들과 청년들의 피눈물이 눈에 밟혀서다”라며 이 법원 판결을 비판한다.
김대호 소장이 그간 대기업 노동조합과 여타 노동자의 ‘격차’를 한국의 사회문제의 근본으로 보고 전자에 책임을 지우는 주장을 일관되게 개진해온 상황을 인정한다 치더라도, 이 칼럼은 매우 고약하다. 김대호 소장은 2009년의 그 정리해고를 “쌍용차 자산 평가와 정리해고 적정규모 등 회계적 경영적 판단”이라 표현한다. 또 “결과에 상관없이 이 판결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는 우리나라 정리해고 요건을 더욱 까다롭게 만들었다”라면서, “현금도 바닥났고, 대주주(상하이 차)도 두 손 들었고, 자동차 산업의 특성으로 보나 쌍용차의 제품력, 영업력, 비용구조로 보나 환골탈태 없이는 돈 빌려줄 금융기관도, 인수할 기업도 있을 수 없는 상태인데, 청산을 피하고 해외 인수자를 모셔오기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단행한 정리해고가 무효라면, 합법적으로 해고할 수 있는 회사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쌍용자동차 문제’는 2012년 9월 쌍용자동차 청문회 당시 민주당 은수미 의원과 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처럼 기술유출, 회계부정, 기획부도, 부당 정리해고, 시위 과잉진압으로 이어지는 꽤나 복잡한 흐름을 가지고 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이 각각의 단계에서 피해자였고 시위 과잉진압 및 손배가압류는 트라우마가 되어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백번 양보해서 설령 김대호 소장의 소신이 ‘좀 더 자유로운 해고’라고 하더라도, 해고자들의 숨구멍을 다소 터준 것에 불과한 이번 판결을 두고 “피눈물을 봤다”고 말할 일이 아니다.
좀 더 따져보자면 애초에 쌍용자동차가 상하이차로 매각될 당시부터 기술유출이 우려되었고 그래서 처음부터 노동조합은 이에 반대했다. 기술유출이 완료된 이후 상하이차는 더 이상 투자를 하지 않았고 부실 과장된 회계감사보고서와 경영정상화보고서를 내면서 ‘기획부도’ 단계로 들어갔다. 이 보고서들의 부실함은 쌍용자동차 청문회 당시 새누리당 이종훈 의원조차 “2천646명의 정리해고가 필요하다는 보고서가 어찌 이리 부실하냐. 어떻게 숫자가 이런 식으로 딱 떨어지냐”라고 질타할 정도였다.
2심 판결에서 정리해고가 무효로 판결난 중대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보고서를 아무리 검토해 봐도 당시의 쌍용자동차가 해고가 불가피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당시의 경영 상황은 김대호 소장이 “자동차 산업과 인연이 깊다”는 ‘감’만 가지고 재단할 일이 아니다. 김대호 소장은 이 판결에 대해 “기업 완전 파산-해체 외에는 정리해고를 인정하지 않는 조 판사의 논리”라고 비판했지만, 한국의 정리해고는 그렇게 어려운 과업이 아니다. 외려 이렇게 부실한 사유로도 해고가 인정된다면 한국 사회에선 ‘불법 해고’라는 개념이 불가능해질 지경이다.
심지어 노동조합은 파업에 들어가기 전 자신들의 퇴직금을 담보로 삼아 대출을 하는 조건을 제시하는 등 회사를 회생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을 했다. 상하이차로 매각되는 단계에서도, 상하이차가 기술유출 후 철수하기 위해 회계부정 및 기획부도를 하는 단계에서도, 결국 공장점거 시위가 시작될 때에도 노동조합의 책임은 없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2천명이 넘는 사람이 해고당했고 공장 점거파업을 하던 노동자들은 고립된 채 77일만에 경찰특공대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고 끌려나왔다. ‘왜 불법파업을 했느냐’고 힐난하고 싶을지도 모르나, 한국에서 합법 파업의 어려움은 “우리 노동법 체계상 적법한 파업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란 제목의 논문까지 나왔을 정도다(김선수, <시민과 변호사 80호>(2000년 9월), 61쪽~66쪽).
김대호 소장은 “고용이 안정된 세금소득자 200만 명과 쌍용차, 한진중공업, 현대·기아차, 은행 등 몽땅 합쳐서 약 500만 명(경제활동인구의 20%)”과 “나머지 80%, 특히 대학 졸업하고 20% 안에 드는 직장을 찾아 헤매는 청년들”을 구별한다. 전자의 해고를 자유롭게 해야만이 사회문제가 풀린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를 ‘절망버스’라 불렀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김대호 소장의 논법은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공공기관 개혁을 말하고 공기업 노조의 저항을 분쇄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그것과 판박이다. 그러나 소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가 ‘대기업 노조 때리기’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 구조는 사실 대기업들에게도 위험하다. 대기업은 특정 세대의 정규직 노동자 이외의 노동자는 비정규직으로 관리하면서 위험을 전가한다. 물량이 늘면 비정규직을 늘리고 물량이 줄면 그들부터 자르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운영으로는 이 특정 세대 정규직 노동자가 우르르 퇴사하게 될 때 암묵지가 축적된 노동자 집단이 사라져 버리는 결말이 올 수가 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체제 재생산의 관점에서라도 정규직의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일자리를 추가적으로 만들어내고, 회사는 사원에 대한 회사복지를 줄이는 대신 세금을 더 내며, 국가는 복지정책을 늘려가는 식의 ‘계급 대타협’을 요구받고 있다. 되도록 고통이 덜한 방식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수행하면서 증세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고 복지를 늘려나가며 개혁의 충격을 해소해야 한다.
그야말로 ‘사회디자인’이 필요한 일이지만, 그 첫 단추가 ‘정규직 해고’가 되는 것은 무능·무책임·무식의 ‘3무 정책’이라 할 만하다. 김 소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극심한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는 기업과 노동의 부담·충격을 국가가 사회안전망(실업보험 등)으로 전향적으로 떠안아 기업과 노동을 가볍게 해줄 생각은 않고, 이를 오직 기업과 노동에 떠밀어 격렬한 갈등을 지속하게 만드는 우리 정치의 무능과 무책임의 산물”이라며 복지정책 확대에 대해 마지막에 슬쩍 언급해준다. 그러나 복지정책은 하루 아침에 건설되는 것이 아닌데, 쌍용과 한진 뿐만 아니라 현대기아차와 은행에서까지 ‘정규직과의 전쟁’을 벌이겠다면 사회적 갈등이 얼마나 극심해지겠는가.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산소득세의 강화가 필수적일텐데,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불로 자산소득에 대해선 한 칼로 못 빼어들면서 대기업 정규직부터 때려잡는 것이 그 갈등에 비해 얼마나 실익이 있는가.
이런 종류의 ‘뒤집어진 유연안정성에 대한 제안’에 대해 장하준은 정승일, 이종태와의 대담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부키, 2012)에서 “막말로 서커스에서 외줄타기를 할 때도 먼저 그 밑에 안전망부터 쳐 놓고 올려 보내지 않습니까. 그런데 밑에 아무런 안전망도 없는데 외줄 위에 올라가 뛰어다니며 연습하라고 하면 황당하죠”(p389)라고 일침을 놓는다. 복지국가는 수십년 간의 재정과 인력 확충, 그리고 근본적인 시스템 변혁이 필요한 일인 만큼 현재 한국 실정에서 고용 유연성을 먼저 받아들이면 복지국가를 만들어 주겠다는 식의 ‘딜’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그러니 김대호 소장은 본인이 보수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 외엔 하등 사회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회디자인’ 철학(?)을 그만 접으셨으면 한다. 혹은 그 ‘소신’을 유지하시더라도 적어도 쌍용자동차만큼은 내버려 두셨으면 한다. 이 문제는 “노동시장 수준보다 월등히 높은 근로조건을 누려왔기에 ‘해고가 살인’으로 되는 성(城) 안 사람 20%의 인권” 문제가 아닌 해고를 둘러싼 과정이 정말로 ‘살인’으로 작동한 현재진행형의 처절한 문제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