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물리학이라는 말은 낯선 느낌을 자아낸다. 물리학이라면 다른 자연과학이 그러하듯이 물질 세계를 대상으로 각종 크고 작은 대상과 자연현상의 원리를 연구하고 법칙을 찾아내는 학문일진 데 앞에 사회라는 말이 붙으니 당혹감을 느끼는 것도 놀랄 것 없다. 혹자는 그 단어에 함축되어 있을 지도 모를 환원주의적 혹은 기계론적 접근에 불편함이나 반감이 들지도 모른다.

사실 사회나 인간에 대한 자연과학적 접근이나 설명은 많은 경우 이러한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이는 과학의 속성상 어느 정도 불가피한 면이 있기도 하다. 얼마 전 유행했던 사회생물학에 기반한 통섭 역시 그러한 비판의 예외가 아니었다. 이상과 같은 감정 혹은 선입견 때문에 사회물리학이라는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를 설명한다는 소개에 생소함 그리고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면서 책을 펼쳐 들었다.
▲ <사회적 원자> (마크 뷰캐넌, 사이언스 북스)
책 문두에서 소개하는 바와 이 책은 인간 그리고 그에 의하여 유발되고 전개되는 사회현상들에 대하여 물리학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다양한 사례를 들어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건들이 자연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거나 비슷한 결과로 귀결되는 점들을 보여주면서 그러한 접근이 유용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주된 초점은 인간의 개체적 특성보다는 집단적 행동의 양상 패턴과 조직화에 주목하고 이를 기반으로 인간행동의 사회적 양상과 결과를 분석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제시되는 인간은 흔히들 합리적이고 독립적이며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만물의 영장으로 불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로써 다른 생물과 같은 특성과 행동 양식을 가지고 우발적이며 종종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실수를 왕왕 저지르기도 그런 존재로 나타나며 그러한 불완전한 인간들이 서로간 얽히면서 상호작용을 주고 받으며 적응하면서 사회가 움직인다.
그러한 적응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이 복잡하게 얽히고 증폭되어가며 사회현상이 나타나고 이는 종종 예상치 못했던 의도하지 못했던 결과를 낳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개별적인 인간이 아닌 패턴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중요한 특성으로 적응과 모방을 들면서 그러한 요소들이 결합하여 일어나는 사회현상을 패턴을 통해 설명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드는 사례는 실로 다양하여 거주지역의 인종분리에서 시작하여 보스니아 내전의 민족학살, 금융시장의 흐름, 도시 우범 구역의 정화와 국가와 기업의 흥망성쇠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으며 여러 사례들은 나름대로 설득력과 명료함을 지니고 있다.
또한 그러한 사례들에서 제시된 사회현상이 물리학적 법칙으로 분석한 자연현상과 유사한 양상을 보여주는 대목은 꽤 눈길을 끌기도 한다. 인종의 주거분리가 동전의 색깔분리 같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든지 핸드폰 보급률이 자기장에 의한 원자의 배열과 같은 패턴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저자가 언급하는 데로 사회현상과 자연법칙과의 공명이 존재할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여기서 제시되는 관점이 흥미로운 점은 인간을 처음부터 완전무결하게 지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고 때로는 감정적으로 행동하고 오류를 저지르면서도 거기서 배우고 적응해나간다는 데서이다. 실수를 저지르면서도 이를 시정해나가며 또 한 서로 작용을 주고 받고 되먹임을 거치면서 사회가 움직이고 현상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모방과 협력이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인간상은 분명 본문에서 비판하고 있는 바와 같이 경제학에서 전제하고 있는 합리적인 개인의 고립된 행위보다 우리의 일상에서 체험하는 인간의 모습이나 양태에 더 가깝다. 또한 그러한 과정에서 협력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단순하고 상투적인 '생존경쟁'을 넘어서는 이타성의 의미가 중요하게 제시되는 것 역시 그렇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는 최근의 진화론에서 성과를 수렴한 것으로 보이며 책에서 제시되는 수학적 패턴을 통한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방식과 함께 이 책의 주장이 더욱 의미를 가지고 설득력을 가지는 데 기여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본문에서 주장되고 있는 패턴을 통한 사회현상의 접근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라면 의도와 분리된 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유력한 시각을 제시하는 데 있다고 생각된다. 특정 주장이나 정책 혹은 행위가 원래 의도와 관련 없는 현상을 불러일으키나 혹은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 것은 역사적 사례에서나 혹은 일상에서도 종종 목격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이러한 접근은 개별적 구성원의 성격이나 특성을 넘어서는 집합적 행위나 결과에 대하여 집단이 작용하는 방식이나 유형에 대하여 변화의 과정에서 내재적으로 작용하는 복잡한 연관관계와 과정에 대한 통찰을 제시함으로써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변화 과정에서 행위자들이 어떻게 엮이고 그로 인한 역동성이 어떻게 변화의 결과를 낳는지를 제시함으로써 어떤 사유나 사고가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퍼지거나 혹은 왜곡되는 사회적 메카니즘을 보다 정밀하게 생각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나아가 이는 이러한 바가 어떤 목적을 성취하는 데 있어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할 점이라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본문에서 제시된 항공산업에 대한 규제완화 정책이 가진 맹점이나 뉴욕시의 타임스 스퀘어 부흥은 이러한 측면에서 설득력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에 대한 섣부른 찬사와 열광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고, 인간에 대한 비현실적인 가정을 버리고, 전체적인 패턴을 통하여 사회에 대하여 접근하는 방식이 가지는 설득력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동안 떨쳐버릴 수 없는 의문점도 있었다. 분명 패턴을 통한 방식은 유용하고 현상이 전개되는 역동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지만 이를 추동하고 서로 얽혀져서 결과적으로 패턴을 만들도록 하는 각 인간의 개별적인 행위를 선택하게 하는 동인과 그 상황에 대한 설명이나 고찰이 다소 부족하지 않나 하는 의문이 아른거렸다. 저자는 그러한 중요한 동인으로 인간 행위에 있어 모방과 적응을 들지만 그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은 여백이 있지 않을까 한다.
주식 거래의 양상과 술집에 손님이 적은 날을 찾는 행위 (그리고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교통 체증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가급적 차가 덜 몰리는 경로를 선택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속할 수 있다.)는 비록 각기 다른 상황과 설정이라도 기본적으로 원하는 바나 이를 이루기 위한 선택의 범위가 단순하다는 점 그리고 모방 행동이 비교적 용이하다는 점에서 선택지가 한정되어 있는 조건이라는 점을 볼 때 패턴을 낳게 하는 행위의 조건에 대하여 보다 면밀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선택지를 한정 짓게 하는 것은 결국 행위의 조건과 환경적 압력에 달린 것이고 그러한 조건이 강하게 작용하는 상태에서는 비슷한 행위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한다.
책 후반부에 논하고 있는 민족학살은 그러한 조건에 의한 행위에 대한 압력이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난 상황이며 특히 정상적인 사회질서나 기타 사회작용이 마비된 상태에서 특정 조건이 압도적으로 힘을 발휘하여 영향을 미치는 사례로 볼 수도 있다.
결국 이는 패턴 중심의 접근법이 기반하고 있는 단순화의 원리가 양날의 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화에 의하여 개별적 요소나 상황을 무시하고 패턴을 통한 고찰은 분명 새로운 던져주지만 역으로 그러한 단순화에 의하여 배제된 것들이 미칠 수 있는 영향, 그리고 모방 행동 자체에서의 각종 변용가능성과 작은 차이들과 그들이 미칠 파급 같은 요소들을 제외함으로써 변화의 다양한 양상과 그 과정에서 역동성을 고려치 않는 맹점도 있다. 이는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여러 사례들이 변화 과정의 인간 행위의 다양한 상호관계를 통하여 나타난 결과라는 것을 생각하면 해당 방식의 설득력과 타당성이 보다 넓은 범위에서 검증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사회현상을 물리학적 방법론에 따라 분석하고 패턴에 따른 접근법을 통하여 사회과학을 재구축하고 이를 확장하여 자연법칙에 상응하는 법칙을 사회와 역사 속에서 구축할 가능성, 어떤 통섭의 상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야심 찬 시도는 인문이나 종교 등 다른 영역과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에서 암시되는 환원주의적 관점과 그 한계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이러한 사회물리학의 접근법을 다른 분야에서 어떻게 수용하고 어떤 점에서 기여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특히 이런 접근법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운동하고 진화하는 계를 상정하고 있다는 것을 볼 때 사건의 관점, 혹은 끊임없는 차이와 운동의 관점에서 철학을 사유하는 것과 연관 지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내비추어 본다.
결코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없지만 분명 유용하고 통찰을 주는 부분이 있으면 그러한 점을 끌어안을 필요도 있고 그러한 과정이 두 문화간의 대화를 촉진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한 바는 저자가 말미에 언급한 세계에 대하여 보다 가까워져 나가는 과정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비록 책에서 시사되는 바와 같은 전체적이고 환원적인 형태로는 아니지만 다른 형태로 통섭의 실마리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선량민

늘 오해받지만 평범한 일반인 맞습니다. 업계 진입 희망자지만 현재 실행될지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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