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는 소재의 선택이 너무도 단순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극 아니면 로코가 전부가 됐다. 과거에는 정치적 압력으로 그랬다지만 최근에는 그 성역에 다른 하나가 추가됐다. 한류는 정부와 미디어가 사랑해 마지않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 모든 일엔 빛이 있다면 그림자도 반드시 존재하는 법이다. 한류가 긍정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일본에 치우친 한류의 부작용은 드라마 소재를 억압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단적인 예로 2013년의 각시탈은 일본 활동을 염두에 둔 한류스타들의 고사로 파문이 일었다. 그 한류스타가 누군지는 끝내 알려지지 않았고 알려져서도 안 되겠지만, 거기에는 배우들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한류스타가 곧 최고 스타라는 공식이 정해진 한국 연예계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현재 방영되고 있는 감격시대에도 그 한류의 압력을 생각게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감격시대는 처음에 150억 원이라는 제작비에 놀랐지만 뚜껑이 열리자 보류된 흥행배우 김현중의 재발견이라는 흥미로운 결과를 낳고 있다. 그러나 초반의 뜨거운 반응과 달리 감격시대는 그 이상 뜨거워지지 않았다. 전지현, 김수현이라는 강적을 만난 것도 큰 이유가 되겠지만 그보다는 감격시대 스스로가 시청자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 탓이 더욱 크다. 급기야 제작사는 작가를 교체하는 강수를 두었지만 과연 그것이 감격시대의 딜레마를 풀 수 있는 묘책이 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일본 깡패가 마음껏 조센징이라는 단어를 쓰는데도 불구하고 드라마 분위기 자체가 일국회를 분명하게 평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감정의 혼란을 가져온다. 무협류의 드라마에서 선악이 불분명하다는 것은 치명적인 허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조선과 일본의 대립이라면 더 심각한 문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교체가 확정된 채승대 작가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애초에 기획의도부터가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드라마라면 자연스럽게 항일투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자연스럽다. 1930년대는 우리의 독립운동이 무력항쟁으로 전환되는 중요한 시기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것이 주인공 김현중을 위해서도 더 좋았을 것이겠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라면 단 하나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결국 작가 교체라는 위험한 도박까지 단행한 감격시대지만 이런 구도가 깨지지 않는 한 지금보다 아주 재미있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시대의 의미를 시청자가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신정태가 투신으로 성장하는 기대감은 그래도 유효하겠지만 역사의 핵심을 애써 비껴간 스토리에 완전히 몰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작가도 바꾼 김에 이제라도 투신이 아니라 항일투사의 탄생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은 어떨까.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