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주: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을 비롯한 이 책의 자매편 <캐릭터 메이커>, 그리고 이후로도 계속된 작법서 시리즈인 <이야기의 명제(物語の命題)>, <영화식 만화가 입문(映画式まんが家入門)>을 번역하고 싶어 2013년 초반, 여기저기 책과 기획서를 가지고 다니며 타진해 보았다. 그러나 내 행동력 부족, 인맥 결여, 능력 부족 등의 이유로 불발되고 말았다. 다행히 <스토리 메이커>는 북바이북에서 일본문화 전문가인 선정우 씨에 의해, 그 당시 번역이 진행되고 있었고, 무사히 출판되었다.

2009년, 나는 이 책을 원판으로 구입해 읽었고, 이 책에 포함되어 있는 워크시트를 바탕으로 온라인 워크숍을 진행한 적도 있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 책에는 몇 가지 보안점과 부족한 점이 분명히 있으며, 이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자매편이나 이번에 <스토리메이커>와 같이 출시된 전작 <캐릭터 소설 쓰는 법 개정판(キャラクタ小説の書き方-改訂版)>을 참고하는 것만으로도 보안이 부족하다. (나는 이를 보안한 개인적인 모델이나 가설을 계속 연구했고, 최근에는 이를 정리하여 서책화하려는 개인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만으로도 우리나라에는 상당히 소중한 자료다.

이 책이 비록 엔터테인먼트에 사용되는 스토리를 설계하는 실용적인 이론서임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소설이나 만화에 관계된 업계 사람에게만 소중한 자료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스토리의 구조는 지엽적으로는 프레젠테이션용 발표자료의 틀을 짜는 데에도, 더 크게는 사업에서 셀프 프로모팅이나 상대를 설득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실제로, 이 책이 참고한 헐리우드 시나리오 작법을 바탕으로 한 비즈니스 서, <성공하는 사람은 스토리로 말한다> (피터 구버, 청림출판)라는 책도 있다.

물론 평론가이기도 한 오오츠카 에이지(大塚英二)인 만큼, 조금은 현학적이고 집요한 문체로 일본 만화 업계와 소설 업계의 뿌리와 헐리우드 영화를 분석하는 평론서로써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이 책을 접한 여러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스토리의 형태로 풀어내는 작업이 심리적인 안정감을 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범용성이 높은, 제법 괜찮은 모델을 소개한다. 이 좋은 도구를 당신이 이용하지 않으면, 글쎄, 당신 손해다.
(에이전트 S009)
---(이하 보고서)---
범은하활자박멸운동위원회 정기 보고서
작 성 자: 9급 에이전트 S009
문서번호: 20140114SMCHS402-17GNM00006
시행일자: 2014/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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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스토리메이커
저 자: 오츠카 에이지
출 판 사: 북바이북
보고내용:
1. 지구의 활자매체는 크게 ‘스토리’를 함유하고 있는 가, 아닌 가로 나뉜다.
스토리는 어떤 지구인이 다른 지구인과의 상호작용으로 겪은 변화의 과정을 시간 순으로, 혹은 특정한 순서로 배열한 것이다. 지구인은 이 스토리를 특히 좋아한다. 왜냐면 지구인의 기억 중 하나가 그 자체로 스토리의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를 일화기억(Episodic Memory)라고 한다.
나는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는 심리학이라는 지구인의 사고와 행동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학문의 영역이고, 비록 내가 이 학문을 공부하기는 했으나, 본 보고서의 취지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 스토리가 특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이를 추출해내 스토리를 생성할 수 있다는 ‘스토리 공학’이 가능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2. 당신들은 이러한 생각에 별다른 거부감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선입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지구인들이 이 생각에 거부감을 보인다.
위에서도 이야기했듯, 지구인이 가지고 있는 기억 중에서도 ‘자기 자신에 대한 고유한 기억’, 즉 ‘자아’가 일종의 스토리기 때문이다. 지구인은 일부를 제외하고 이 고유성에 중독되어 있고, 당신들 파흐레느헤이트451인들과 지구인의 가장 큰 차이다.
거부감을 가지는 지구인들에게 있어, 스토리가 공학적으로 추출하고 생성하고 개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자신들의 자아도 고유하지 않고 공학적으로 추출하고 개조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리는 모양이다. (당신들은 이게 왜 공포인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외려 축복이라 생각하겠지.)
특히 스토리를 생성하는 기술을 가진 것을 자신의 자아로 여기는 자들, 지구인의 용어로 작가라 불리는 자들 중에서도 자신의 개인적인 기억을 스토리로 옮겨온 사람들은 이러한 시도 자체를 ‘사악한 것’으로 여기기까지 한다. 고유한 개성이 말살된 판에 박힌 스토리를 양산할 뿐이고, 이는 스토리를 말살=자아의 파괴=죽음이라고 여긴다.
3. 나 또한 스토리를 생성하는 기능을 직업으로 삼는 자로써, 이 생각에는 반대한다. 저자는 스토리를 구성하는 기술이란 타인과 나의 자아를 공유하기 위한 방편이라 말한다. 그리고 동시에, 자기 자신의 고유함을 얻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 책의 의의를 이렇게 말한다.
당신 고유의 ‘스토리’를 손에 넣기 위해
이에 대한 모든 이유는 당신들이 이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그러니 이 책을 ‘소멸’시키지 말아 달라. 직접 읽어라.
4. 이 책은 2부 구성이다. 1부에서는 이론을 설명하고 2부에서는 이를 워크시트로 만들어 구체적인 예시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나는 당신들에게 이 방법대로 당신들의 스토리를 만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당신들은 지구인을 이해하고 싶어한다. 그럼 지구인의 스토리를 만들어보라. 당신은 지구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끝.
범은하활자박멸운동위원회 지구지부 서울파출소

손지상

소설가이자 번역가이다. 미디어스에서는 범은하활자박멸운동위원회에 정기 보고서를 제출하는 '9급 에이전트 S009'를 자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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