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천 지옥이다.

KBS 이사회는 끝내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안을 통과시켰다. 주목해야 하는 건 해임 제청안 통과가 아니다. 만장일치를 이룬 6명의 이사들도 아니다. 퇴장한 4명의 이사는 더더욱 아니다.

정말 중요하게 봐야 하는 점은 정연주 사장 해임이 이명박 정권의 첫 번째 웰메이드(wellmade) 작품이라는 점이다. 웰메이드는 잘 만들었음의 동의어가 아니다. 장르의 관습, 스타 시스템 등을 활용하여 감독의 개성적인 스타일과 문제의식을 담아내는데 성공했다는 의미이다.

▲ 이명박 대통령ⓒ여의도통신
이번 이사회는 철저히 사전 기획된 것이었다. 장르는 액션, 첩보, 스릴러쯤 될까, 70~80년대 유행했던 반공과 철권통치가 적절한 비율로 섞여 있어 조중동의 향수를 자극했다. 스타시스템 역시 완벽하게 작동했다. 한 마디로 철지난 신파 복고물이다.

이번 작품에서 주연 최시중의 연기는 물이 올랐다. 특히나 조연들의 연기가 탄탄했다. 신재민(문화부 차관)은 KBS 사장 해임권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사기를 시작하는 비열한 사기꾼 역할을 맡아 초반 바람잡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박재완(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은 KBS는 정부 산하기관이라는 그럴싸한 너스레를 떨며 상황을 전개해나갔다. 박형준(청와대 홍보기획관)은 점잖은 목소리로 KBS 사장 임면권이 청와대에 있다고 거드는 역할을 맡았는데, 본인의 그릇에 딱 걸맞은 역할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번 KBS 사장 해임제청안 통과에는 총연출을 담당한 이명박(대통령) 감독만의 개성적인 스타일이 너무나도 확연히 드러난다. 이번 작품은 향후 그의 통치를 예견하는 절대적인 교과서가 될 것이다.

이명박은 이번 작품을 통해 그의 통치가 80년 신군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번 작품은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언론 통폐합을 남겼던 전두환을 향한 오마주(hommage, 영화에서는 보통 후배 영화인이 선배 영화인의 기술적 재능이나 그 업적에 대한 공덕을 칭찬하여 기리면서 감명 깊은 주요 대사나 장면을 본떠 표현하는 행위)이다.

▲ 영화 '다찌마와리' 홈페이지 캡쳐
이번에도 여지없이 드러나는 ‘경찰국가’를 향한 그의 문제의식은 박정희, 전두환의 그것과 철저히 닮아있다. 그동안 이명박의 작품 세계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경찰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독재자의 슬픔과 비애’에 관한 강경함으로 채워졌던 것은 흥행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닌 그의 완벽한 의도였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의 대표적 습작이었던 ‘미국산 불량 쇠고기 졸속 합의 사건’에서 경찰은 이미 지난 10년간 지향해왔던 포돌이의 이미지를 버리고 과감하게 ‘정권의 사냥개’로 변신했었다. 이번 작품에서도 경찰은 80년 이후 처음이라는 설왕설래 속에 과감히 KBS 로비로 진출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이제 우리는 경찰을 이명박의 유일한 페르소나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자, 시동이 걸리고 있다.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

행선지는 지옥이고, 운행 방식은 급진이다.
운전사는 악인으로 악명 높은 다찌마와(액션)리이다.

쇠고기는 예고편이었다. MB천국! 국민지옥!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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