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사의 프로즌(Frozen). 겨울왕국은 개봉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던 영화입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이 만화를 평가하는 분위기가 디즈니 그 이상의 무언가였다는 점이죠. 마치 이름 있는 감독의 대작을 고대하는 분위기가 낯설기까지 했던 프로즌. 그도 그럴 것이 제게 동화 눈의 여왕은 가장 리메이크를 고대하는 고전이었고, 그럼에도 공개된 그림은 3D였으니까요. 어린 시절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미키마우스의 판타지아라고 답했고 생애 이루고 싶은 꿈이 디즈니랜드를 방문하는 것이었던 제게 디즈니는 제외할 수 없는 향수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2D가 아닌 3D의 디즈니는 참 받아들이기 괴로운 부분이더군요. 겨울왕국이 펼쳐지기 전 디즈니는, 2D와 3D를 넘나드는 미키 친구들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끈덕지게 보여줍니다. 마치 3D 포비아인 저를 위로하듯이 말이죠.

눈의 여왕, 이 아름다운 안데르센의 고전을 디즈니 2D 시절에 복원하지 못했음을 못내 아쉬워했습니다. 진작에 만들지 그랬느냐고 투덜거렸지만, 나름 디즈니에게도 고충의 역사를 거쳐온 리메이크였더군요. 무려 70년 치의 고충이 담긴 캐릭터, 눈의 여왕 즉 엘사는 1940년대부터 리메이크를 기획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디즈니가 이 동화의 리메이크를 망설이며 무려 62년을 저 깊은 눈 속으로 동면시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엘사의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많은 고심과 망설임 끝에 완성된 엘사, 눈의 여왕. 그것은 결국 이 캐릭터가 70년 치분의 공이 들어간 인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엘사는 그것이 충분히 수긍될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여동생 안나와 함께요. 엘사와 안나는 겔다였다가 어느 순간은 카이가 되기도 하며 눈발을 날리며 외로움, 그 안에서 살아가는 눈의 여왕의 모티프를 이어갑니다. 그녀들은 디즈니가 지난 80년 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시도하지 못했던 진정한 의미의 페미니즘을 실현한 공주님들이었습니다.

디즈니가 여태껏 이만큼의 공을 들인 적이 없었노라고 말할 만큼의 열의가 느껴지는 아렌델 왕국의 아름다움은, 배경이 된 노르웨이의 수려함을 환상적으로 리메이크했습니다. 풍부하고 부드러운 색감. 가슴이 아릿할 만큼 빛으로 물들어가는 계절의 색채. 푸른빛이 감도는 얼음 왕국의 청아함이나 주근깨가 콕콕 박힌 장밋빛 볼의 안나의 그 사무치는 사랑스러움이라니. 그것은 저의 3D 거부증마저 굴복시킬 만큼의 3D의 미학을 드러내는 장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눈의 왕국의 3D가 감동적이었던 것은 실사화에 집착한 것이 아니라 만화의 미덕을 그대로 살린 3D였다는 사실이죠.

하지만 무엇보다 이 만화가 위대한 것은, 디즈니 최초의 여성감독이 만들어낸 디즈니의 가치관을 뒤엎어버린 이야기였습니다. 이 만화는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벗어나지 못했던 디즈니 공주님의 '사랑'을 보다 포괄적인 의미의 '사랑'으로 확대한 작품입니다. 평단의 극찬이 쏟아진 것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마법을 푸는 주체를 향한 혁명 때문이었죠.

손끝으로 겨울을 불러내는 신비한 마법의 힘을 가진 공주님 엘사. "눈사람 만들기 놀이할래?" 사랑스러운 여동생, 안나를 위해 눈사람과 눈의 결정을 만들어주며 즐거워하는 그녀. 안나만큼이나 자신의 힘을 사랑하는 엘사였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여동생의 눈에 상처를 입히고 나선 그녀의 힘은 저주로 명명되고 맙니다. 부모님은 엘사를 향해 권고합니다. "내색하지 말고. 감정을 드러내지도 말고. 착한 아이로 있어야 해." 결국 엘사는,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 안나마저 트롤의 마법으로 잃어버린 채 감정을 감춘 외톨이로 살아가게 됩니다. 부모님이 건넨 장갑을 끼고 힘을 감추고 감정을 감추고 내색하지 않는 착한 아이로 그 오랜 기간을 살아가게 된 거죠. 엘사에겐 오히려 얼음으로 지어진 자신의 궁전보다 이 시기의 아렌델 성이 더욱 얼어붙은 눈의 왕국으로 느껴졌을 겁니다.

'착한 아이'로 살아가라는 아버지의 잔혹한 명령. 디즈니는 흥미롭게도 겔다와 카이 그리고 눈의 여왕을 자매들만의 이야기로 재창조해냈습니다. 얼음조각이 눈에 박힌 안나의 해프닝은 마치 트롤의 거울 조각이 눈에 박힌 카이와 닮아있지만 정작 세상을 차단하게 된 건 언니 엘사였죠. 엘사는 겔다를 상처 입히는 것이 두려운 카이이자 슬픈 눈의 여왕이었습니다. 초반 남녀의 로맨스가 아닌 자매의 서사만으로 벽 하나를 두고 등을 맞댄 채 서글픔을 이끌어내는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전율이 스며들 지경이었습니다.

이제껏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 속 여주인공들은 오드리 헵번의 프린세스 앤과 닮아있었죠. 무료한 성을 빠져나가 로마에서 아이스크림이라도 핥고 싶은 것이 여주인공이 외치는 혁명이었고 그것을 구원하는 주체는 주로 처음 만나는 왕자님 역할의 누군가 때문이었습니다. 얼핏 진취적으로 그려집니다만 해결해나가는 방식은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었죠. 명확히 말하면 여주인공이 주체가 되어 스토리를 이끄는 공주님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디즈니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에요. 동화의 서사가 그랬으니까요.

겨울왕국이 동화 눈의 여왕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인 듯하면서도 가장 완벽한 리메이크인 이유는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이 가진 미덕을 너무나도 제대로 해석해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이 눈의 여왕은 드물게도 여자가 기사가 되어 남자를 구하러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까요. 심지어 카이를 붙들어둔 존재 역시 동화 역사상 최고의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눈의 '여왕'입니다. 그 와중에 유일한 남자역인 카이는 성안에 갇혀 의식을 잃은 채 행동을 제한당하고 다른 누군가 마법을 풀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여태껏 수많은 동화 속에서 그리고 디즈니 속에서 공주님에게 맡겨진 역할이었죠.

사실 프린세스 안나 또한 여타의 공주님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습니다.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 것은 외톨이로 남은 엘사였고, 첫눈에 이웃 나라의 왕자님과 사랑에 빠져 사랑이 모든 것을 구원하리라를 노래하는 안나의 서사는 로마의 휴일에서 멈춰있는 걸로만 느껴졌었죠.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최후의 가치는 이 만화가 왜 디즈니의 혁명이라고 불리며 평단의 극찬을 받을 수 있었는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탑에서 머리칼을 늘어뜨리고 왕자님을 기다리며 저주를 풀어줄 것을 염원하는 수동적 공주님에서 벗어나 스스로 구원하는 존재로 거듭난다는 스토리는 디즈니의 혁명이자 공주님의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장면이었으니까요. 안나가 구차하리만큼 목숨을 구걸하는 장면이나 선택의 순간에 찰나의 망설임이 드러나는 얼굴은 이 만화가 얼마나 꼼꼼하게 서사를 그리려 노력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음 만난 남자와 결혼은 안 돼!" 심지어 이 만화에서 그려내는 이웃 나라 왕자님의 이야기는 일종의 블랙코미디로까지 느껴지기도 합니다.

눈의 여왕이 증명하는 스토리의 힘은 이런 만화에는 꼭 등장하는 참견쟁이 감초 캐릭터, 눈사람 울라프의 사랑스러움에서도 드러납니다. 사실 울라프는 외형적으로 그리 아름다운 캐릭터는 아닙니다. 귀엽지도 않고 사랑스럽지도 않죠. 오히려 첫인상은 다소 비호감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스토리가 거듭되면서 그의 천진할 정도로 순수한 마음을 알게 되면 그 어떤 캐릭터보다 사랑스러운 존재인가를 사무치게 깨닫게 됩니다. 이 만화를 보면서 세 번 울었는데 그 귀중한 한번은 너무나 서글픈 이야기를 웃으면서 말하는 월도프의 순수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디즈니의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눈의 여왕이 그의 안배를 정말 디즈니답게 마무리했음에도 상투적이라는 생각은커녕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될 정도더군요. 이게 바로 스토리의 힘이죠.

엘사의 마법은 우리의 신내림과도 닮아있었죠. 밀어내고 거부하고 내 것이 아니라고 외면하자 그녀를 괴롭히기만 했던 마법의 힘이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라 인정하며 받아들이고 사랑함으로써 축복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이 순간은 디즈니 만화가 공통적으로 제시했던 '사랑의 힘'의 규모가 얼마나 웅장해졌는가를 실현하는 장면이기도 했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겠노라고 부모님과 아렌델 왕국 그리고 자신에게 선전포고하는 듯한 엘사의 노래, let it go는 화면을 뚫고 나와 디즈니를 향한 다짐처럼 아로새겨집니다. 더 이상 완벽한 소녀는 존재하지 않아.

"난 더 이상 그들이 뭐라든 상관하지 않아. 폭풍아. 몰아쳐라. 완벽한 소녀는 사라졌고 난 여기 빛 속에 있어." 만약 제게 딸이 있다면 신데렐라나 라푼젤, 잠자는 숲 속의 미녀가 아닌 이 작품의 엘사와 안나를 소개해줄 것입니다. 내색해도 괜찮아. 감정을 드러내도 괜찮아. 완벽한 소녀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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