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사랑하던 여인이 20년 전 그 모습 그대로 늙지 않고 눈앞에 나타난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마도 십중팔구는 <시네마 천국>의 토토처럼 사랑하던 여인의 딸이나 혈육이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젊은 시절 사랑하던 여자의 환영을 본 것이 아닐까하고 회상에 잠길 것이다. 김광석의 노래를 뮤지컬로 아우를 때 정서적인 접근에 있어서만큼은 <디셈버>가 <그날들>보다 한 수 위인 듯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김광석의 노래는 서정성에 근간을 둔 노래가 많다. 그런데 <그날들>은 서정성과는 다른 방향인 경호원 이야기로 꼭지를 잡았다. 개막 전에는 경호원 이야기와 김광석 노래의 서정성의 화학작용이 부적합 판정을 받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였다. 그럼에도 뮤지컬 <그날들>은 경호원의 이야기에 ‘사랑’을 덧붙임으로 왜 경호원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당위성을 타당하게 설명할 수 있었고, 그 안에 김광석 노래의 서정성이 자리할 여지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는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창작뮤지컬상으로 보상받기에 이른다.

▲ 사진제공 NEW
<디셈버>의 접근 방향은 적어도 <그날들>보다 김광석 노래의 서정성과 가까워보였다. 하지만 이게 웬걸, 사랑이야기를 하는 마당에 맨 첫 장면이 시위 진압 장면이다. 주인공의 20년 전은 1992년이지만 이 당시는 시위가 격렬하던 때가 아니었다. 강경대 열사가 희생되던 1991년 봄을 기점으로 점차 학생운동은 퇴화했고 1992년은 백골단이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던 80년대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는 시기다. 그럼에도 <디셈버>는 첫 장면을 과격한 시위 장면으로 시작하면서 김광석의 서정성과 괴리를 보이기 시작한다.

첫사랑과 닮은 여인이 20년 뒤에 똑같이 나타난다는 설정은 <디셈버>가 90년대 사랑의 정서를 21세기에 이식하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시네마 천국>은 첫사랑과 똑같은 외모의 아가씨가 실은 사랑하던 여인의 딸이라는 연결고리로 말미암아, 예전에 사랑하던 여인과 지금 판박이 외모로 똑같은 아가씨가 별개의 인물이 아니라 토토의 추억과 연결되는 데 있어 무리수가 따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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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디셈버>는 90년대 사랑했던 여자와 똑같은 외모의 아가씨를 설정함에 있어 별개의 인물로 치부하고 만다. 외모만으로 사랑하던 여인의 기시감만 불러일으킬 뿐, 90년대 사랑하던 여자와의 정서적인 접점을 찾는 데에 있어 <디셈버>는 철저하게 실패한다.

뮤지컬은 넘버도 중요하지만 이야기 구조가 중요하다. 이야기 구조가 긴밀하지 못한 채로 넘버를 이어간다면 자칫 뮤지컬을 빙자한 김광석 노래의 메들리 공연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일찍이 조승우는 <닥터 지바고>에 긴급 투입됨으로 다 죽어가던 뮤지컬을 기사회생시킨 선례가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디셈버>는 김준수도 되살리지 못한 유일한 뮤지컬이 되지 않을까 싶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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