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광복절'을 '건국절'로 개명하겠다고 한다. 이에 대해 역사학자인 한홍구 교수(성공회대 교양학부)는 최근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 <"건국절? 차라리 8·29를 '문명절'이라 해라">에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작은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광복절의 명칭을 버리고, 그 날을 건국절로 하겠단다. 1919년(기미년)부터 민국 연호를 셈하기 시작하겠다고 말했던 이승만도 놀랄 만한 일"이라고 개탄했다.

'광복'과 '건국'은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다

한 교수의 설명을 좀 더 인용한다.

"광복과 건국은 절대로 서로 경쟁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이승만이 왜 하필 8월 10일도 아니고, 20일도 아니고, 8월 15일을 정부 수립일로 정했겠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 민족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이 된 8월 15일의 의미를 이어받아 정부 수립을 더욱 뜻 깊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건국 60주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임시정부를 완전히 부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임시정부도 대한민국을 완전히 '건국'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임시정부가 '건국 강령'을 채택한 것 아니겠는가. 건국은 해방 또는 광복의 마무리 작업이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광복과 건국은 절대로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왜 굳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 할까?

'건국절' 채택,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법통을 부인하는 행위

다시 한 교수의 해석을 들어보자.

"그런데, 왜 저들은 수십 년간 아무 탈 없이 잘 사용해온 광복절의 명칭을 바꾸자며 황당한 일을 벌이고 있을까. 우리 민족 대다수에게 건국과 광복은 대립되는 개념일 수가 없지만, 몇몇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생물학적 또는 정치적 후예들에게는 해방이나 광복의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광복'하면 누가 떠오르겠는가. 이승만 정부가 제정한 광복절 노래에도 나와 있듯이,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즉 독립운동 과정에서 스러져간 선열들을 떠올리게 됨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순국선열들을 떠올리게 되면, 그 반대편에는 당연히 친일파가 어른거리게 마련이다.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빠트릴 수 없는 광복절은 당연히 친일파를 떠올리게 되는 날이다. 악질 친일파들에게 우리가 광복절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하고 있는 1945년 8월 15일은 정말 죽을 뻔했던, 기분 나쁜 날이다. 민족 구성원의 대다수는 일제의 압박에서부터 벗어났지만, 극소수의 친일 세력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박탈당했을 뿐만 아니라 생사가 어찌될 지를 가늠할 수 없는 불안의 구렁텅이로 빠진 날이었다.

그들에게는 참으로 '다행히'-민족 전체에게는 엄청난 불행이었지만 분단이 됐고, 외세가 들어왔다. 그런 혼란 속에서 친일파는 살아남았다! 그냥 살아남은 게 아니다. 보통 친일파가 아니라 친일파 중에서도 가장 악질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 반역자들이 일제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민족적 양심을 가진 세력을 거꾸로 청산하고 살아남은 것이다.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그래서 그들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일을 건국절이라는 이름 아래 기념하려고 한다."

이명박 정부가 광복절을 '건국절'이란 이름으로 바꾸려는 것이 한 교수의 표현대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작은 소동’으로 그칠까?

▲ 동아일보 7월 3일자 26면
기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서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바로 개헌이다. 원내 절대과반수를 차지한 한나라당이 중심이 되어 사실상 개헌작업에 돌입한 상태임은 앞의 기사들에서 자세히 소개한 바 있다.

'건국절' 채택 시도는 헌법 전문 개정을 위한 전초작업?

건국절로 바꾸려는 기도는,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수구반동 세력이 추진하고 있는 개헌 작업을 통해 헌법 전문과 경제민주화 조항인 헌법 119조 2항을 바꾸기 위한 '전초작업'이라는 것이 기자의 판단이다.

우리 헌법 전문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는데 이를 바꾸려는 것이다. 이는 바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꾸려는 것이고, 반민특위 해체와 김구 선생의 암살 등을 통해 대한민국을 다시 지배하게 된 악질적인 친일부역 세력의 매국 행위를 헌법적으로 정당화하려는 무서운 작업인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한 교수는 "‘건국절’이라는 용어가 해괴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속셈이 참으로 해괴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다시 읽어 보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수구반동, 친일세력의 ‘국가 정체성’의 기초는 바로 ‘국가보안법’

한 교수는 말한다.

"솔직히 저자들(저사람들)이 대한민국 제헌 헌법이나 제대로 읽어보고 국가 정체성을 떠벌이는지 의문이다.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의 뿌리를 우리가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제헌 헌법이 아니겠는가... (중략)... 그리고 경제면에서는 지금 뉴라이트들이 떠들어대는 시장 만능주의 내지는 민영화 지상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적 통제 경제에 가까운 경제 민주주의를 원칙으로 삼았다. 중요 산업 국유화, 토지 국유화, 무상 교육, 무상 치료와 같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건국 강령, 가령 임시정부 뿐 아니라 해방 전야 모든 민족 해방 운동 세력의 공통된 약속 등을 골자로 한 것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좌파는 물론이고 백범 김구 선생과 같은 중간파(남북협상파)가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진보적인 내용을 헌법에 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다.

이 정체성에 입각할 때 광복과 건국은 절대로 대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수립된 대한민국의 첫 번째 과제는 역시 친일 반민족 행위자의 청산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건국' 1년이 채 안 된 1949년 5월과 6월, 남노당 프락치 사건, 반미특위 해산,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 등 반민족 행위자들이 주축이 된 친위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핵심 과제였던 친일 잔재 청산을 좌절시켰다. 그리고 이들이 장악한 대한민국에서 국가보안법은 초헌법적 지위를 차지하게 됐다. 저들이 입만 열면 떠들어대는 국가 정체성이란 제헌 헌법에 기초한 정체성이 아니라 바로 '국가보안법 정체성'이다."

▲ 한겨레 7월 10일자 25면
여기서 광복 이후 제헌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자.

한겨레신문 7월 10일자에 보도된 안수찬 기자의 글에 따르면, "오늘날의 헌법에 정초 구실을 한 것은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채택한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그해 9월 제정한 ‘대한민국 임시헌법’이다. (중략) 광복 이후 여러 정치세력들이 헌법 초안 마련에 매달리게 만든 직접 원인은 모스크바 삼상회의(1945년 12월)였다. 여기서 한국의 정당 및 사회단체와 협의해 정부 수립에 필요한 법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 정해졌다. 헌법 초안들이 1946년 1~4월에 집중적으로 작성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1948년 공포된 제헌 헌법의 두 축은 신익희가 주도한 행정연구위원회의 ‘한국 헌법안’과 유진오가 작성한 ‘헌법기초위원회안’이다."

이와 관련, 박명림 교수(연세대 대학원 지역학)는 제헌 헌법의 4대 주역으로 조소앙·신익희·유진오·이승만을 꼽는다. 조소앙은 임정 헌법의 기초를 마련했고, 상해(上海)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신익희가 이를 제헌 헌법에 반영했으며, 유진오가 여러 구상을 수렴해 그 구체 조항을 작성했고, 최고 권력자 이승만이 최종 승인했다는 것이다.

9차례 헌법 개정에서 단 한번도 건국헌법 정신 부인된 적 없어

김성호 교수(연세대 정치학)가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2008년 7월 3일자)에서 지적한 것처럼 지금까지 제헌 이래 총 9차례에 걸친 헌법 개정 과정에 헌법수난사의 성격이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지만, 그 어떤 개헌도 건국헌법의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한 적은 없었다.

"오늘의 관점에서는 왜곡이었을지언정, 지나간 개헌들은 건국헌법을 세대마다의 현실 속에서 구현하려고 노력한 나름대로의 결과였다. 각 개헌에 대한 시시비비를 넘어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촛불세대가 하나일 수 있는 것은 바로 건국헌법 전문(前文)에 나오는 ‘우리들 대한국민’ 덕분이다."

그 제헌헌법의 정신을 토대로 작성한 87년 헌법 전문을 이명박 정권이 뜯어고쳐 ‘친일부역헌법’과 ‘재벌헌법,’ ‘수구반동 헌법’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건국절' 채택 기도, 이명박 정권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

이에 대해 미디어스의 안영춘 기자는 <'건국'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는 기사에서 이명박 정부에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태초에 국가가 있지 않았다. 국가가 있기 전에 국민 될 사람이 먼저 있었다. '민주주의 공화국'이란 바로 그 사람들이 스스로 국가를 구성한 주인(민주주의)이며, 국가는 그 사람들이 스스로를 다스리기 위해 만든 협의체(공화국)임을 명시한 개념이다. 촛불집회 주제가인 <헌법 1조>는 이같은 국가의 설립 과정과 의미를 법전 밖 거리에서 새삼 상기시킨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외치는 촛불시민을 짓밟는 공권력의 행위는 미친개가 밥 주는 주인을 무는 꼴과 같다.

그 의도가 무엇이든, 이번 기도는 한국사회의 국가주의 신화를 깨뜨리는 데도 한 숟가락 보탤 것이 분명하다. 국가는 먼저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뒤에 ‘건설’된 것이라고, 이를테면 불도저로 만드는 대운하 같은 것이라고 스스로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건국절 개명을 관철하기에 앞서 자신의 행위가 자칫 촛불의 계승처럼 비칠 수 있음을, 그리하여 마침내 제 발등을 찍을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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