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까지 어느 매체에서도 적당히 타협해서 쓴 적이 없습니다. 언론 현장을 떠나본 적도 없습니다. 소위 제도권에서는 아무도 나를 기용하지 않았지요. 나는 오히려 그 사람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해요. 기자로서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는 게 자랑스런 나 자신의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로 언론인 정경희 선생은 인터뷰의 첫 마디를 이렇게 시작했다. 정 선생은 "어느 언론 매체도 이명박 정권의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명박 정부를) 정상적인 선거에 의해 선출된 민주적 정부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여론을 과점하고 지배하는 언론권력이 편파언론으로 국민을 최면상태로 만들어 이기도록 한, 다시 말해 언론독재하에 선출된 정권"이라는 설명이었다.

▲ 정경희 선생
칠순이 넘은 고령이지만 현 정부에 대한 비판과 지적은 날이 잘 든 칼처럼 매섭고 날카로웠다. 인터넷도, 바깥출입도 잘 하지 않는다는 정 선생이지만 촛불시위와 최근 대두되고 있는 언론에 대한 압력 행사 등에 대해 거침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모든 독재는 언론검열부터 시작했지요"

"모든 군사 독재는 언론 검열부터 시작됐었지요. 이명박 대통령이 독재정치를 하겠다면 언론 통제부터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입니다. 정연주 사장에게 법정 임기연한을 무시하고 윽박지르는 것은 법치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MBC PD수첩에 대한 법적인 책임 추궁은 말 그대로 '추궁'이 아니고 폭력적인 언론탄압입니다."

정 선생은 인터뷰 과정에서 "안타깝고 답답하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또 '이명박 정부의 행태가 독재정권과 같은 맥락'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이 유권자의 지지를 받지 않는 정부가 되었는데 이는 군사독재 정권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

정 선생은 지난 71년 유신독재 시절부터 23년간 중앙정보부로부터 도감청을 당했다. "밤이고 낮이고 전화가 걸려오는 통에 너무도 괴로웠다"고 회고했다. 수십년간 언론인 활동을 하던 정 선생에게 드리워진 군사독재 시절의 압박은 94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없어졌다. 그렇게 군사독재정권을 기억하는 정 선생은 군사독재정권과 이명박 정부를 '같은 맥락'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시위를 보면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무지막지한 경찰의 폭력에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쓰러져 있는 여성 하나가 군화에 짓밟히는 것을 보고 이건 문명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야만적인 테러이고, 또 동시에 이명박 정부는 결국 촛불의 저항 앞에 항복하게 되겠구나라는 확신을 했습니다다. 어느 군사 정권도, 어느 독재 권력도 폭력으로 민의를 꺾은 적은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거꾸로 가고 있다"며 탄식하던 정 선생은 "이러한 상황을 적어도 언론 구성원들이 제대로 인식을 하고 굴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고 현실을 제대로 알리는 작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것을 지키고 실천하는 단 한명의 언론 구성원만 있어도 희망이 있다고 믿고, 또 그러기를 희망한다고도 전했다.

"언론인이 어떻게 현장을 떠나나"

원내에 있는 언론인 출신 여당 정치인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들에 대한 정 선생의 비판은 서릿발 같았다.

"그 사람들은 더 이상 언론인이 아닙니다. 언론인은 평생 현장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물론 직업으로서 그만둘 수는 있겠지만 다른 권력 정치의 구성원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강하게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과연 그 사람들이 현장에 뛸 때 기자답게 끝까지 처신을 했는가에 대해서도 저는 믿지 않습니다. 아마 그 때에도 군사 독재 박정희의 졸개, 전두환의 졸개, 노태우의 졸개로서 돈 봉투를 받고 골프 치며 거드름을 피웠을 겁니다."

정 선생은 향후 언론의 전망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사실 별로 낙관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지금 제대로 된 언론이 어디 있나요?"라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촛불의 저항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걸 언론이 먼저 나서서 주장했어야 했는데 제대로 못했던 겁니다. 그러고 보면 참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있는가 하는 스스로 부끄러운 현실을 노출 시키고 있어요. 대단히 강경히 말하면 우리는 지금 언론권력의 노예입니다. 언론권력이 검다면 검고 희다면 희다는 독재에 살고 있습니다. 결국은 결말이 어떻게 되느냐하면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정부가 나타난 것이지요."

정 선생은 "제가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속단하는 것이길 차라리 희망한다. 과연 내가 그런 낙관적인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답변해야 하는 자리이지만 오히려 내가 물어보고 싶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정 선생은 "기자들의 직업윤리와 지적인 권위가 오늘날 조중동에 의해 짓밟힌 이상에 (언론탄압은) 자업자득일 수도 있다"고 언론계에 쓴 소리를 던지기도 했다.

정 선생은 "이명박 정부가 제대로 정치적 수명을 누리고 싶다면 독재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의 정치적 선회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또한 언론 구성원들에게 "한국의 민주주의는 파탄직전에 있다"면서 "이걸 구하는 길은 언론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미디어스 기사제휴 / 여의도통신 권경희 기자 moren7905@ytongs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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