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316일 만에 첫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번 기자회견이 ‘불통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소통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70분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남은 것은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유행어뿐이었다. 기자회견 내내 사전 조율된 질문과 답이 오가 사실상 ‘자유질문’은 없었고, 산재한 현안을 제치고 ‘취임 2년 소회’가 질문의 첫 머리를 차지했다.

‘사전 조율’된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화기애애한 현장

▲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열린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방송, 신문, 통신, 외신, 지역지 등 총 12개 매체로 구성된 기자단에서 기자회견 질문을 준비했고, 박근혜 대통령이 그에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기자들은 저마다 손을 들어 마치 그 자리에서 생각난 듯 질문을 했지만 사실 이미 작성된 질문지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읽는 형식이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질문 기회를 얻은 언론사는 연합뉴스, YTN, 동아일보, 매일경제, 대구일보, 뉴데일리, 채널A, 로이터, 세계일보, 중부일보, MBC, 중국 CCTV 총 12곳이다. 이날 공교롭게도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 이른바 진보매체에게 할당된 몫은 없었다.

질문 내용도 한가로웠다. 취임 1년이 다 되도록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밝히는 데 소극적이었던 대통령의 심기를 배려한 듯, ‘대통령으로서 보낸 지난 1년의 소회와 정부 2년차를 맞는 각오’가 첫 질문으로 올라왔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관련 질문은 3번째로 나왔고, 현재 주요 사회 갈등 상황 원인으로 ‘대통령의 불통’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6번째 질문에서야 등장했다. 채널A의 경우, 대통령에게 퇴근 후 관저에서 무엇을 하는지 사생활을 묻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예상된 시나리오…기삿거리도 소통도 없었다”

이번 기자회견에 대해 언론 현업인은 질문을 사전에 조율하는 것은 관행적으로 있어왔던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300여일만에 기자회견이라는 점과 질문의 배치와 구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출입을 했던 한 기자는 “기자단을 구성해 기자회견을 준비한 것은 노무현, 이명박 정부 때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며 “그것만 보고 첫 기자회견을 권위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첫 기자회견을 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점과, 전체적인 기자회견 분위기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 기자는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한 지 18일 만에, 이명박 대통령도 50일 안에 했는데 300일이 지나 하니까 질문하는 권리가 굉장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전 정부도 질문 사전 조율을 했지만 (지금과 달리) 질문 기회 자체가 굉장히 많았고, 지금처럼 제약이 많거나 완전히 짜인 모양새로 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 방송사 기자는 “사전에 접수된 질문에 대해 답을 준비하는 건, 대통령이 충실히 답하기 위한 측면이 있어 그 과정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첫 질문이 1년 소회 밝혀 달라, 두 번째 질문이 남북 문제였다. 정작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들에 대한 질문은 뒤로 밀렸다. 제일 중요한 문제를 가장 먼저 배열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자유질문이 없어 불통 논란을 해소하기 위한 기자회견이라고 보기 어렵지 않느냐’고 묻자 “불통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한 게 아닌 것 같다. 하도 불통, 불통 하니까 기자회견을 했다는 식으로 넘어가려는 것으로 보였다”며 “예상되는 시나리오대로 흘러갔는데, 애초에 기대가 없어서 실망도 없다”고 답했다.

한 신문사 기자는 이날 기자회견에 대해 “새로운 뉴스거리도 별로 없고 박 대통령이 이제까지 간접적으로 전했던 말을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기자회견을 통한 소통은 없다는 점을 보여준 장면”이라고 평했다.

이 기자는 특히 기자회견의 질문 구성과 질문 내용에 대해 지적했다. 이 기자는 “미리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았고 질문자 순서까지 정해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현장에서 질문자를 고르는 듯, 이정현 홍보수석이 ‘질문하실 기자들은 손을 들라’고 한 것은 기자회견이 하나의 ‘쇼’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또한 “‘퇴근 후 관저에서 도대체 뭐하시냐’는 질문이 있었다. 불통 대통령이라는 여론이 일고 있는 대통령과 기자회견을 가지는 자리에서 소중한 12번의 기회 중 하나의 질문이 이런 수준에 불과했다는 것은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전반적으로 질문 수준이 박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하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 이날 기자회견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취재진의 모습 (청와대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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