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길이 있다》(한겨레출판)는 김두식 교수가 인터뷰어로 나서서 서른 명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모아 수록한 인터뷰집이다. 정답대로 살아가기를 권하는 모범생들의 사회 속에서 다른 길을 찾는 시도는 지속적으로 있어 왔고, 대체로 ‘다른 길로 가보자’는 맥락에서였다. 사회나 기성세대가 제시하는 모범생으로서의 길 이외의 다른 길이 있고, 그 삶도 얼마든지 멋있으니, 다른 길을 꿈꾸고, 시도하고, 도전하자는 메시지, 혹은 입시위주의 교육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다른 길을 안내하고 독려하는 메시지였다.

그런 것을 예상하다 《다른 길이 있다》를 읽으면 당황스러울 것이다. 나는 이게 한겨레 토요일판에 연재되던 때 각기 따로 읽었음에도, 같은 인터뷰를 책에서 두 번째 읽고도 처음처럼 당황스러웠다. 이것은 ‘내가 가지 않는 길’ 이자 ‘내가 갈 엄두를 못내는 길’ 혹은 어쩌면 ‘가고 싶지 않은 길’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의든 타의든 누구나 ‘갈 수도 있는 길’ 이고, 내가 그 길을 가는 사람으로서 살았다면, 몰이해 속에서 내쳐지기보다는 이해받기를 바랐을 길이다. 쉽게 말해 직접 귀 기울여 들은 적 없이 밖에서만 본다면 편견이 덕지덕지 붙었을 사람들이 어떤 다른 길을 걸었는지 보여주는 인터뷰들이다.
첫 인터뷰부터 강하다. 정혜신, 이명수 부부. 각자 가정을 꾸려가다 만나 각기 이혼하고 재혼한 정신과 의사와 심리기획자 부부. 섹스 이야기도 거리낌 없다. 두 번째 박경신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발기한 성기 사진은 음란한가 맥락에 따라 그렇지 않은가, 미국시민권을 획득해 병역을 기피한 교수가 한국 사회의 개혁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떤가. 편견이 붙을 부분을 말하자면 그렇다.
하지만 인터뷰는 선정적 화두에 천착하지 않고 가볍게 넘어 그들의 생각과 삶을 묻는다. 정혜신, 이명수 부부가 사회의 부조리에 의해 집단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을 어떻게 치유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박경신이 운동권 누이와 탄압으로 망한 가족사를 통과하면서 편견과 공포에 어떻게 맞서기로 했는지 같은 것 말이다. 장밋빛 미화를 덧붙여 ‘너도 갈 수 있는 다른 길’이라는 공감을 유도하지 않고, ‘너는 안 갈 남의 신기한 길’을 구경하라고 하지 않고, ‘내 친구가 가고 있는 특이한 길’을 우호적으로 소개하는 인터뷰였다.
‘제3자 효과(third-person effect)’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대중매체의 영향에 대중, 즉 남들이 좌우될 것을 걱정하되 자기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믿는 이중 잣대를 가지는데 이를 제3자 효과라 한다. 특히 부정적인 것에 남들이 악영향을 받는 정도를 높게 평가하고, 자기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특징이 있다. 나는 인터뷰집 읽는 내내 제3자 효과를 겪고 있었다. ‘나는 이들을 이해하고 긍정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못 받아들이고 거부하고 비난하지 않을까?’를 걱정했다는 이야기다.
우스운 일이다. 다들 읽으면서 인터뷰어 김두식의 시선에 빙의되어 ‘이 친구가 이러저러한 사유로 편견에 시달리거나 비판을 듣고 있지만, 그래도 이러이러한 뜻은 귀담아 들어둘 만하니 다들 들어주었으면 좋겠는데’를 소심하게 걱정하며 읽지 않을까? 그게 딱 인터뷰어 김두식이 글 속에서 드러내는 태도이기도 하다. 조심하고, 소심하고, 겸손하고, 우호적이고, 강하게 설득하지 않지만,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럼에도 여전히 제3자 효과가 떨쳐지지는 않아서, 내가 사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학생들에게 이 책을 주어 읽혔을 땐 내 안의 꼰대가 내 안의 김두식과 싸웠더랬다. 학생들에게 평소 곧잘 내가 읽는 책을 건네주어 그 자리에서 챕터 일부를 골라 읽어보도록 하는데, 굳이 이 책만 안 읽히려 든다면 그게 바로 이 길들을 부정하는 꼰대가 아닌가? 아니면 학생들을 너무 미성숙하다 단정하는 꼰대거나. 미생의 만화가 윤태호, 피아니스트 교육자 김대진, 영화감독이자 동성애자인 김조광수, 사교육 없는 세상을 위해 활동하는 송인수의 인터뷰는 좋은 간접 경험이 될 거라며 주저없이 읽으라고 주면서, 첫 두 인터뷰나 성노동자 김연희, 정치의 비루함을 말하는 유시민, ‘주주들의 사유권을 몰수해야 한다’ 고 말하는 박노자의 인터뷰 앞에서는 보여줄지 말지 망설이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학생이 이해할까? 오해하지 않을까? 동경하면 어쩌나? 냉소하면 어쩌나? 편견을 더 가질까 아니면 편견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까? 이런 생각은 해보는 것 자체로는 나쁠 것 없겠으나, 이런 생각의 결과가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고’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그래가지고야 검열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이런 질문들은 그저 내가 가진 편견의 모양새와 크기와 방향을 보여줄 뿐이다. 김조광수는 ‘꼰대가 될 수 없어 행복하다’는데, 사교육이라도 ‘선생’의 직업을 가지고 사는 나같은 사람은 아차 하면 꼰대가 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조광수가 부럽다.)
그래도 교육자로서 교육적 효과에 대해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는 나는 다소 조마조마해 하며 겉으로만 태연한 모양으로 건네주었고, 인터뷰를 랜덤하게 이것 저것 읽은 학생들은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좋은 배우자 만나서 결혼하라는 단선적인 미래 이외의 삶을 이렇게 자세히 보고 들은 경험 자체가 이게 처음이라는 것이다. 그 자체를 매우 신기해하고 있었다. 이게 좋고 싫고 따져서 편견이 들고 말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도 남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있지 않다는 게 먼저였다. 공동체의 앞세대가 자신의 경험을 뒷세대에게 전달하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는 부모나 어른들이 말하는 그 단선적인 길조차, 구체적으로 그 안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떤 생각과 감정을 겪으며 사는지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목표로서 제시되는 형태였다. 아이들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또래가 현재 자신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것 외엔 ‘다른 사람들’ 이 어떻게 사는지를 아예 모르고 있어서, 모델과 모델후보가 될 ‘남의 길’에 꽤나 목말라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인터뷰들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건 알아보지만, 누군가가 구체적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가고 말하는 광경을 보는 것 자체로 충족되고 있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인터뷰어가 되어보라고 권해주었다. 연말과 신년에 걸쳐 친척들이 속속 모여드는 시즌이다. 원치 않는 어른들의 잔소리를 어떻게 하면 피할까 하는 것이 학생들의 공통적인 고민이었는데, 차라리 물으라 했다. 어른들은 너희에게 할 말이 없어서 제일 안정적인 삶의 기준을 늘어놓을 뿐이니, 너희가 인터뷰어가 되어 김두식처럼 그들의 삶에 대해 질문을 하나 둘 던져 놓으라고. 그러면 아마 모두들 자기 삶의 궤적을 실감나게 묘사해주느라 잔소리 따윈 할 여유가 없을 것이라고. 그걸 들어 놓으면, ‘아하 이모는 중학교 때 이랬고 고교 때 이런 고민을 했고 대학 때 이런 일들이 있었고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구나’, ‘할머니는 20대 중반에 이런 문제로 이런 고민을 하다가 저런 선택을 하셨구나’, ‘삼촌은 전공이 그거였구나, 거기선 그런 걸 배우고, 그래도 모두 전공따라 직업을 가질 수는 없구나’, 이런 구체적인 남들의 삶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책 한 권에 든 인터뷰와는 상대도 안 될 정도로 구체적이고 길고 방대한 정보일 것이다.
남들의 삶에 대해 피부로 와 닿을 정도로 자세히 듣고 알수록,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내치기보다는 이해하고 공감하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인다. 원래 모를수록 색안경이 빨리 장착되니까. 다른 길은커녕 어떤 길을 걸으며 사는지도 모르는 학생들에겐 이 길들이 ‘어떤 표준적인 길과 다른 길’ 이 아니라 ‘그냥 여러 길 중 하나이자 조금 독특한 길’ 정도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독자라면 이 책을 읽는 경험이 내안의 꼰대와 싸우는 나보다 되려 나을 수도 있겠다.
여담으로 두 가지만 덧붙이자면, 김홍신의 인터뷰가 최고로 재미있었다. ‘건달 보스 출신 소설가 국회의원의 인터뷰인데 볼래?’ 라고 물으면 학생들도 눈빛부터 달라진다. 그리고 각 인터뷰 마무리마다 붙는 김두식 교수의 마무리말이 너무나도 담백하고 훈훈하다. 이런 시선으로 묻고 듣는 인터뷰어니까 인터뷰이 목록이 이렇게 독특하게 화려하지 않나 싶다.

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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