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2년을 맞이할 즈음, 1년을 맞이할 때보다는 적었지만 마찬가지로 여러 책이 나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잊혀 가던 기억을 되살렸다. 시차 때문인지 사태 자체보다는 사태 이후를 전망하고 성찰하는 책이 중심이었고, ‘그날’은 ‘그곳’처럼 사람이 찾지 않는 희미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곳’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삶에 대한 의지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음을 전해준 한 권의 책이 때마침 도착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오오타 야스스케가 기록한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이다.

‘사태’ 이후 경계구역으로 지정된 원전 반경 20킬로미터 이내 지역에서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 사람은 떠났고, 동물은 남겨졌다. 목줄을 풀지 못해 제 집에서 그대로 굶어죽은 개, 왜 죽어 가는지도 알지 못한 채 이미 온기가 가신 가족 곁에서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돼지, 물을 찾아 축사 바깥에 나왔다가 농수로에 빠져 선 채로 죽어가는 젖소. ‘남겨졌다’는 말보다 ‘버려졌다’ 혹은 ‘잊혔다’가 적합하지 않을까. 이렇듯 이 책에는 남겨진, 버려진, 잊힌 동물을 돌보기 위해 경계구역에 들어가 구조 활동을 벌이며 기록한 사진, 그들로부터 감각한 삶과 생명, 그들의 모습에 비친 인간의 부조리가 가득하다.
저자는 누굴 탓하거나 사태 해결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고 부르짖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그곳에서 생을 이어가는,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 동물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그저 그들이 좀 더 견뎌주길, 살아내길 기원할 뿐이다. 함께 살던 닭을 지키려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개, 먹이보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철없는 강아지, 속박되지 않은 너른 공간에서 새롭게 잉태되는 생명들. 이 사태를 만든 인간이 저들의 삶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아직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인간은 탄생하지 않은 듯싶다.
그럼에도 우리는 같은 생명으로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의 생명을 확장하고 지키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그 과정에서 놓치고 지나친 게 무엇인지, 돌아가 되짚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말이다. 여기에는 어떤 무게가 있다. 생선 먹는 일을 줄이고, 일본 여행을 삼가는 것과는 다른, ‘생명’을 공유하는 존재가 나눠 갖는 생명에 대한 책임이라고 해야 할까. 이 책이 아니었다면, 원전을 피해 죽음을 미루려는 태도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을 거라 확신한다. 이 책을 만남으로써, 비로소 이 사태를 조금 더 온전하게 느끼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고, 죽음을 미루려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삶을 살리려는 적극적 태도만이 가능한 희망임을 깨달았다.
후쿠시마 사태 3년이 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게 분명하다. 방사능이라는 피할 수 없는 악취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삶에 관여할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한 발짝이라도 앞서 이 책이 전하는 감각을 우리 삶에 관여시켜야 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에게는 더 많이 알기보다 더 많이 느끼는 게 절실하다. 이 책이 그 각성의 여지를 한국 사회에 열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올해 이보다 중요한 공감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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