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올해의 책’을 선정해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만 난감해지고 말았다. 무엇을 가리켜 ‘올해의 책’이라고 불러야 할지가 너무나 모호했기 때문이다. 2013년에 출간된 신간들 중에 한 권을 고르면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한국 내에서 출간된 것으로 한정해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무엇이 기준이 되어야 할까. 판매량? 내용의 수준? 시의성? 모든 신간을 읽어본 것이 아닌 나로서는 딱히 어느 한 가지 척도를 당당하게 제시할 수도 없었다.

때문에 나는 결국 어떤 타협의 지점을 만들어내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설마 이러한 선정 작업을 시도하는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닐 테니, 어느 정도의 주관이 개입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다 싶은 판단도 있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비약을 감수하고 ‘올해의 책’을 선정하려다 보니, 그와 같은 시도는 결국 그것이 2013년이라는 한 해를 얼마만큼 담아내고 있느냐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러한 판단이 곧 <2013 통계자료 백서> 같은 책을 선정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지표상의 변동이 어떤 커다란 의미를 만들어냈다면야 또 모르겠지만, 아둔한 내 기억으로는 적어도 2013년을 뒤흔든 수치상의 이슈란 기껏해야 ‘방사능수치’나 ‘초미세먼지’ 정도에 불과해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들에 대한 호들갑스러운 공포 뒤에는 그 이상의 압도적인 무관심이 내재되어 있었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올 한 해 동안의 사건들을 집약할만한 키워드를 제시하고, 그에 걸맞은 책을 물색해보는 방법.

그런데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터져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2013년을 포괄하는 키워드가 뾰족하게 떠오르지는 않았던 것이다. 비슷한 난처함을 토로했던 노정태(솔직히 털어놓자면, 나는 이번 ‘올해의 책’ 선정을 둘러싼 고민의 상당부분을 그에게 빚지고 있다)의 경우는 “2013년은 2013년의 책을 읽은 해가 아니”라는 진단으로 그것을 해명하고 있었으나, 그의 저 말이 지극히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따지고 보면 2013년이 우리에게 남긴 난처함의 근원은 비단 작년과 올해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런 식으로 소급해나간다고 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연이어 등장하는 ‘새로운 이슈’들은 지난 시대의 이론적 성취들에 의해 얼마든지 진단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빛나는 고전 한 편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는 일 역시도 그다지 마음이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고전들이 그 저작권이 만료되었고,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책 전체를 무료로 구할 수 있게 된 시대에, 그것이 새삼 한국에 번역·소개되거나 재출간된다는 것이 얼마만큼의 의미를 지니는지가 의문스러웠기 때문이다.

▲ 애플 아이패드

결국 내가 선정한 올해의 책은 다음과 같다: 당신의 PC, 태블릿, 스마트폰, 전자책 리더. 당신은 마음만 먹으면 저작권이 만료된 고전을 얼마든지 구해 읽을 수 있고, 우리의 시대는 여전히 그것의 문제의식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2013년의 파편화된 경향은 그것이 산산이 부서져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 하나하나의 조각들이 저마다 간과할 수 없는 주요한 사안들을 다루고 있었던 까닭에 하나의 총체적 담론을 낳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사안에 대해, 저마다의 소중한 고전을 거울삼아 지금 이 자리에 합당한 실천적 운동성을 이끌어내면 족하지 않을까.

▲ 삼성전자 갤럭시 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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