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인 ‘올해의 책’을 꼽으라면 단연 《서천석의 마음 읽는 시간》이다. 한 번 잘 읽고 꽂아두기엔 아깝고, 평소 오가는 거실 한곳에 두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가며 드문 드문 읽으면 좋을 책이다. 읽어보고 다짐 삼아 외워 놓아도 좋고, 친구에게 이야기 해 주어도 좋고, 가족과 같이 읽어보고 ‘이거 신기하다’, ‘이렇게 하면 정말 될까?’ 궁리도 해보면 좋겠다. 이야기 한 꼭지 당 3~5 페이지에다, 시집처럼 짤막짤막한 줄글로 편집돼 있으니 한 번에 한 가지씩 읽기 부담도 없다.

시대가 얼마나 가혹하고 그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힘든지는 서술하기도 우울하고 읽기도 우울하니 생략하자. 이런 시대의 하소연 앞에 흔히 놓이는 조언은 두 가지다. ‘네 잘못 아니다, 사회구조가 모순돼 있으니 바꾸자.’ ‘사회 탓 하지마라, 네가 이 악물고 노력하고 눈높이를 바꾸면 살길을 열 수 있다.’ 하나 더 있다. ‘지금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라.’ 첫 번째는 위로가 될지 모르나 당장 바뀌는 게 없고 바꾸자니 막막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결국 ‘다 네 탓이고 네 팔자다’ 하는 것 같아 안 그래도 힘든 사람들에게 자괴감을 부추기거나 열 받게 한다. 솔직한 진단이라면 ‘사회구조가 모순돼 있다, 그런데 어떻게 바꾸어야 좋을지, 바뀌기는 할지 잘 모르겠다’ 여야겠지만, 이것은 그 자체로 힘빠지는 절망이다. 이 와중에, ‘힘든 시기를 덜 힘들게 버틸 수 있는 방법’을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리고 더불어 그 조언이 ‘자기 삶에서 효능감을 체감할만한 변화’를 유도한다면, 이것이 개중 제일 고를만한 조언이 되지 않을까.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크고 구조적인 것은 바꾸기도 어렵거니와 바뀌어도 당장 개인의 삶을 바꿔주진 않는다. 하지만 구조만이 괴로움의 전부는 아니고, 사람은 주로 일상적인 생활 속 일들을 가지고 지지고 볶으며 그날그날의 기분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과 자기 주변의 손닿는 범위 안의 작은 일들에서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즐거운 일이 늘어난다면, 내가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예를 들면, 작심삼일을 그저 매년 반복하고 장난스레 체념하는 대신 흐지부지해진 내 마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추슬러야 할지를 알고, 지키지 못했던 계획표를 두고 나태함과 의지부족을 탓하는 대신 계획을 어떻게 짜야 지금의 내가 큰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멀고 추상적이라 치부하던 ‘행복’을 구체적인 방법으로 일상에 끼워넣을 수 있다면, 위로를 해야 할 순간에 어색하고 불편해 쩔쩔매는 대신 어떤 위로가 가장 좋은지 알고 있다면 어떨까. 아무도 진지하게 가르쳐주지 않고 경쟁 시스템도 요구하지 않아 간과하기 쉬운 부분에서, 개인은 작은 도움으로도 예상 밖의 자기 효능감을 키울 수 있다.

내가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사람들이 그런 함정에 빠지기 쉽다는 걸 알면 함정을 경계하고 나에게 쉬 실망하지 않을 수 있다. 옳고 그름만 가지고 밀어붙이는 대신 사람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을 고려하면 사람과 얽힌 일은 더 잘 풀린다. 받는 이가 어떤 선물에 행복해하는지를 알면 선물을 주고도 실패하는 일이 줄어든다. 그 외에도 짜증을 유발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주변인들은 어떻게 대하는 게 내 마음의 건강을 위해 최선인지, 참지 않아야 하는 순간이라면 어떤 식으로 맞서는 게 좋을지, 《서천석의 마음 읽는 시간》에는 이런 미시적 삶에서 필요한 팁들을 알려주며 개인을 응원한다. 내 주변의 작은 세계에서라도, 상황에 휩쓸려가며 무력감을 느끼는 대신 상황을 조절하고 적절히 반응할 수 있을 때 사람은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는 안정감을 얻는다. 그래야 힘든 시기에도 소소한 행복과 함께 버틸 힘을 얻을 수 있다.

더불어 이 책의 제일 큰 장점은, 다양한 실험과 연구 결과를 곳곳에 심어 놓았다는 것이다. 요즘의 심리학은 더없이 과학적인 학문이 되어서, 인간 심리에 대해서도 실험과 통계로 객관성을 갖추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험과 그 결과와 해석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소개해 주지 않으면 알기가 참 어렵다. 논문들도 다 영어일 테고. 공부해서 남 주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인 법인데,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언급되는 각종 연구 결과들이 독자로서 아주 소중하다. 이것이 그냥 반 종교적인 긍정적 설교글과의 결정적인 차이이다. 이 실험 결과들을 기억해 두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기만 해도 모두들 신기해하고 재밌어한다. 사람은 이런 법이다 저런 법이다, 속담처럼 퍼진 고정관념들 사이에서 실험으로 뒷받침 된 인간 심리의 특징들은 ‘두드린 돌다리’와 같다. 거기를 딛고 걸어가야 마음이 나를 배신하지 않고 한 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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