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뽑은 올해의 책은 현암사에서 출간한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입니다. 2016년 나쓰메 소세키 사후 100년을 기념하기 위해 올해부터 시작해 차차 차례로 펴낼 계획인 이 전집 시리즈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풀베개>, <태풍>까지 4권이 출간되었으며 앞으로 10권의 책이 근간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고심하여 번역했고 표지와 본문 모두 디자인이 예쁘고 꼼꼼한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나쓰메 소세키의 팬인데, 고등학교 때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은 뒤로 한때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포함한 일본소설에 흥미를 붙여 많이 읽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재밌어 보이는 일본 소설이 많이 나오기도 했고요. 한국 출판 시장에서 일본소설이 붐을 일으켰던 때였거든요. 그러다 대학교 때 접한 가라타니 고진의 책에서 고진이 소세키를 높이 평가하는 것을 두고 더욱 그의 소설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다니는 출판사에서 출간한 일본 소설의 작가가 담당 편집자와 함께 방한하여 행사를 꾸린 일이 있습니다. 저는 이와나미쇼텐의 유명 편집자가 쓴 책인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와 사전 편집부의 이야기를 다룬 미우라 시온의 장편소설 <배를 엮다> 같은 책을 통해서 지적인 엘리트에 가까운 일본 편집자를 선망하는 마음을 지녔던 터라, 사실 작가보다도 그 편집자에게 말을 더 붙여보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그분은 작가를 수행하는 편집자가 으레 그렇듯이 ‘심심’해 보였습니다. 서점에서 작가가 사인회를 하는 동안 그 편집자는 근처에서 서가의 책을 들춰보거나 줄 선 사람들을 쳐다보거나 하고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한글을 전혀 모를 텐데, 자기가 지금 일본소설 매대 앞에서 서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하는 생각마저 슬그머니 들어 일본어도 영어도 제대로 못 하는 저라도 말을 걸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겁니다.

그렇게 히가시노 게이고라든가, 마쓰모토 세이초라든가 이름을 발음하면 그분이 알아들을 만한 소설을 여럿 가리키다가 나쓰메 소세키의 이름까지 꺼내게 되었습니다. 더듬더듬 최근 어느 출판사가 그의 책을 전부 새로 출간하려고 한다고도 얘기했지요. 그분은 놀라워하면서 ‘요즘 일본 젊은 사람들은 그의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을 하더군요.

이렇게 한국에는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하는 독자도 많고 그의 책을 전집으로 출간하는 출판사도 있는데 정작 ‘일본의 젊은이들은 그의 소설을 읽지 않는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생각이나 사상이 본래 흘러나온 곳보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더욱 부흥하거나 인기를 얻는 일은 종종 있었습니다만, 이 경우에는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검증된 텍스트인 ‘고전’을 계속 시장에 내놓는 한국 출판계의 모습이 보이는 듯해서 좀 슬펐습니다.

최근 출판계에선 단행본 출판사에서 전집이나 시리즈를 내는 것도 유행의 하나여서, 예쁜 책을 좋아하는 편집자인 저로서는 시리즈 디자인 같은 것도 눈여겨보곤 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선호하는, 그러니까 ‘안전’하다고 여기는 책은 때가 잘 타지 않고 모양이 우그러들 경우가 적은 표지 종이를 사용하거나 튼튼하게 후가공을 한 책이다 보니, 디자인은 좀 독특할 순 있어도 소재나 제본은 딱히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소세키 전집은 좀 독특합니다. 이 때문에 출간 당시 출판계 사람들의 SNS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처음 만지면 천으로 책을 감싼 것인가 싶을 정도로 재질이 느껴지는 종이를 표지로 썼고 각양장으로 장정했습니다. 표지에 전혀 코팅하지 않아서 까슬까슬한 종이를 쓴 것만으로도 천으로 감싼 책처럼 느껴졌던 것이지만, 이렇게 아무런 후가공이 없어서는 이리저리 유통하는 과정에서 책이 금방 상하게 됩니다. 제가 가진 책도 가방에 넣어 며칠 들고 다녔더니 모퉁이가 하얗게 닳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모서리가 해지고 바랜 것처럼 처음부터 표지 디자인한 전집 시리즈도 있는데, 이게 뭐 대수냐 싶었습니다.

분명 책이 쉽게 상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을 텐데도 이렇게 만들어 내놓은 출판사의 마음을 알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손바닥으로 책을 한번 쓸어보면 느낄 수 있는, 옛날 책 같은 느낌, 마치 100여 년 전에 출간된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책을 받아들고 있는 듯한 느낌을 위해서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물론 진짜 비단 같은 천을 표지로 썼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랬다간 이윤이 안 남지요...)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 책의 물성을 생각하는 편집자의 애틋한 마음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지금 아주 감상적이고 비할 데 없이 쓸데없는 ‘동지’ 의식으로, 이번 해 우리 출판계의 모습은 딱히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들 열심히 했다고 스스로 위로하는 마음으로, 이러한 감상이 일치하는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을 올해의 책으로 꼽는 것입니다. 물론 제 취향도 반영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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