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계미가 익살스러움이나 풍자가 주는 아름다움이고, 숭고미가 숭고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움이라면, ‘nerd美’는 nerd(너드)가 주는 아름다움이다. ‘nerd美’라는 단어는 영화 <소셜네트워크>에 출연했던 제시 아이젠버그, <스타트렉>의 스팍, 007 시리즈에서 새로운 Q를 맡은 벤 휘쇼를 찬양하는 포스팅에서 접할 수 있다.

너드의 특성
▲ 너드(NERD) (세상의 비웃음을 받던 아웃사이더 세상을 비웃다) 외르크 치틀라우 지음 | 유영미 옮김| 작은씨앗 펴냄 | 2013.11.13 발간
외르크 처틀라우의 <너드>에 따르면, 너드는 이성을 중시하며 똑똑하다. 똑똑함의 기준은 아이큐가 높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영국 심리학자 리암 허드슨은 언젠가 한 그룹의 학생들에게 벽돌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모든 쓰임새를 열거해 보라고 했다. 아무런 전제도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학생들은 자신의 재량껏 자유롭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집을 짓는다”, “지붕을 만든다”와 같이 뻔한 대답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한 학생-너드 타입-은 이렇게 대답했다. “창문 넘어 집에 몰래 들어갈 때 사용한다. 집을 지탱한다.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면서 아울러 살도 빼고 싶을 때 사용한다(열 걸음 전진한 다음 몸을 돌려 던진다, 피하는 건 허락되어 있지 않다), 침대 모서리에 벽돌 한 개를 놓아 이불을 고정시킨다. 빈 콜라병을 막아두는 용도로 쓴다.”(p.36-p.37)
다른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지 않는 것에 발견해 몰두하고, 세속적인 욕망에는 연연하지 않으며, 권력에 호락호락하지 않기에 괴짜라는 인상을 줄 때가 많다. 자신이 몰입한 것 이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기에 눈치 없는 행동을 할 때가 있고, 심지어 사회성이 결여돼 보일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변호사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창밖을 보며 느닷없이 "비가 오네요"라고 말한다든지, 세상을 제패한 왕의 면전에서 대고 꺼져주면 고맙겠다고 한다든지, 전쟁 상황에서 군인이 자신이 바닥에 적은 수식을 지웠다고 성질부리다가 명을 단축한다든지….
최근 IT업계에서 너드들이 경제적으로(빌 게이크, 마크 주커버그, 스티브 잡스 등) 혹은 정치 ⦁사회적으로(줄리안 어산지) 두각을 나타낸 덕분인지, 현대 미국에서 ‘너드’는 일종의 트렌드가 됐다고 한다. 예전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너드기질을 가진 인물들은 우스꽝스러운 조연이거나 신경질적이고 실패한 주인공 등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사로잡힌 이들이었다면, 최근 너드는 매력 있고 입체적인 캐릭터로 묘사된다. 앞서 언급한 <소셜네트워크>, <스타트렉>이 그 예다. <킥애스>나 <슈퍼배드>에 나오는 너드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너드 악세사리도 상품화되고 있다. 너드 중에는 근시가 많고 멋을 내지 않고 단순한 옷차림을 선호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를 본 뜬 스타일의 안경, 셔츠, 후드 스웨터, 바지, 구두, 게다가 ‘너드 룩’의 바비인형까지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고 한다.
親(친)너드적 시대
너드가 트렌디해진 건 최근이지만, 이들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선사시대에도 너드들이 있었을 것이다. 사냥에는 별 관심이 없고, 벽에다 별자리나 그리고, 곤충이나 수집하고 분류하는 일을 좋아했던 사람들, 당시에는 먹고 살고 종족을 보존시키는 필요에 따르는 대신, 이런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었을 따름이다. 그리하여 태고적 너드들은 억지로 생존을 위한 노동을 해야 했거나, 부족의 방랑에서 뒤처져 남겨졌을 것이다.(p.21)
너드의 특성을 가진 사람들은 계속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나, 이들이 재능을 꽃피울 수 있고 두각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적절한 시대를 만난 덕분이라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와 같이 의견의 자유와 관용이 충분하거나 18세기 19세기 같이 철학과 과학이 두각을 내는 시기(저자에 따르면 세계에 구속력 있는 구조들을 부여하는 하는 철학과 과학은 너드의 결정적인 본질과 상당히 부합하는 일이다)가 그렇다. 여기에 1970년대 퍼스널 컴퓨터가 등장하며 ‘너드 현상’은 점점 가시적이 됐다.
컴퓨터의 세계는 너드가 피어나고 번성할 수 있는, 너드의 자연스런 서식권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여기서 확실히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컴퓨터가 너드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너드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으니까. 언론학자 메르텐스는 “컴퓨터가 너드를 배출시킨 것이 아니다”라고 분석한다. “오히려 컴퓨터가 많은 너드를 끌어당겨 그들을 특정 인간형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하였는데, 다만 환유적인 혼동 때문에 컴퓨터가 너드를 탄생시킨 것처럼 이해되었다.” (p.26)
저자는 너드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해서 존재했다는 것을 설명하고, 헤라클레이토스, 아리스토텔레스, 디오게네스, 임마누엘 칸트, 프리드리히 니체,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아이작 뉴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과거의 유명한 인물에서부터 줄리안 어샌지, 애플, 워즈 &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 등 현대 IT계의 신화적 인물에 이르기까지, 여러 인물들의 너드적 기질을 소개한다. ‘역사적 너드’를 소개하는 것을 통해 너드의 특성을 설명하고 너드가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주장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아쉬운 점은 이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가십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읽는 재미는 있었지만 단편적이고 얕은 정보의 나열 같아 아쉬웠다.
▲ <소셜 네트워크>에서 마크 주커버그의 역할을 맡은 제시 아이젠버그의 모습
내 여자에게 따뜻한 너드를 찾습니다
한국에서도 너드 기질이 있는 인물의 팬층이 상당히 두터운 것 같다. 너드를 연애대상으로 매력 있게 생각하는 사람들(특히 여성들)도 늘어난 것 같다. “smart is the new sexy"는 이들의 구호이다. 사실 나도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너랑 자고 싶어"라고 말하는 듯한 이글이글한 눈빛의 마초 남성이 주는 긴장감보다 (이성에 대해 별 관심이 없기에) 담백한 태도를 가진 NERD 남성이 주는 편안함을 선호하는 것 같다. 지적 자극을 주며 말 잘 통하는 상대를 좋아한다는 성향 역시 NERD 남성에 부합한다.
하지만 너드美에 끌리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부분도 염두에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너드에게 사람들은 기능의 단위일 뿐, 자신의 삶에 특정 시간 동안 특정 역할을 수행하고는 사라져 버리는 존재다, 사업 파트너든 섹스 파트너든 상관없다. 그는 사람들이 오고 감에 대해 시큰둥하게 반응하고, 누가 그를 떠나도 괴로워하지 않으며 누가 와도 환호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기능적인 세계상을 숨기고자 노력하지도 않아, 누군가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때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극명하게 그 사실을 느끼도록 한다. (중략)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너드의 가슴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상대적으로 적다. 그의 열정은 오히려 프로젝트, 아이디어, 조직, 여타 사람과 관계없거나 사람을 초월한 것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으로 말미암아 그에게서 더 많은 것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오해를 하거나 실망을 한다. 그러므로 너드가 종종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p.236)
결국 너드는 역사의 진보에 상당한 역할을 할 때가 많고 멀리서 보기에는 훌륭해 보이지만 가까이 두면 별로라는 얘기일까. 그래도 <빅뱅이론>의 쉘든도 자기 여자친구는 아끼고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도 10년 가까이 한 여성분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보며 희망을 갖는다. ‘내 여자에게는 따뜻한’ 너드님들은 monthlyingyeo@tistory.com으로 메일을….

잉집장

<월간 잉여>는 잉여를 위한 잉여에 의한 잡지입니다. 14호까지 발간됐습니다. 이름만 월간 잉여임. 갈수록 발행텀이 길어지고 있음. 발행인 겸 편집인이 개털인데다 게으른 탓입니다. 그 발행인 겸 편집인이 저임. 최근 이상한 웹진 커뮤니티 사이트도 만들었는데 놀러 오세요. http://ingch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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