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준(김수현 분)이 천송이(전지현 분)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냐?’ 12년 전, 트럭에 치일 뻔한 교통사고로부터 목숨을 구한 소녀의 사진이 천송이의 지갑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도민준은 천송이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 그때의 그 소녀가, 자신을 커다란 눈망울로 바라보며 고맙다고 말하던 그 소녀가 아닐까 싶어서.

도민준에게 그 소녀는 매우 특별하다. 12년 전 뿐만 아니라, 400년 전에도 만났던 소녀였고, 그때도 역시 그녀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소녀를 12년 전에도 만났고, 400년 전에도 만났다. 사람의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인간 세계에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 도민준과 소녀 사이에서는 일어나고 만 것이다.

도민준은 아직도 소녀와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해한다. 첫눈이 오는 날만큼은 그 어떤 거짓말도 용서가 된다고 말하던 소녀. 그 소녀는 빨리 어른이 되어서 어엿한 여자로 도민준 앞에 다시 서고 싶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거짓말이었다고 함박웃음을 짓던 소녀 앞에서 도민준의 표정은 그리 편치만은 않았다. 소녀의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기를 그는 마음속으로 바라고 또 바랐기 때문이다.

천송이는 그 소녀와 무척이나 닮았다. 도민준은 천송이의 지갑 속 사진을 보면서 일종의 확신 같은 것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앞에 서 있는 천송이의 모습은 건방지고 오만하며 순수한 영혼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완벽한 현실주의자다. 천송이 역시 도민준의 진지한 눈빛을 껄떡대거나 수작을 거는 것의 하나라고만 여긴다. 수많은 남자들이 늘 같은 스타일, 같은 말로 자신에게 작업을 걸어왔던 것처럼.

그런데 천송이와 도민준에게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일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복통을 일으킨 천송이가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일이 생긴 것인데, 그녀를 병원까지 데려다 준 이가 바로 도민준이었던 것이다. 뛰어난 청력을 소유한 도민준은 전부터 천송이가 아파했음을 알고 있었다.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귀를 막아보려 했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결국 병원에 갈 일이 있다는 말로 둘러대면서 그녀를 병원 응급실로 데려다 준 것이다.

다급해진 천송이는 도민준을 자신의 매니저라고 거짓말을 한 후 자신의 곁에 있어달라는 부탁을 한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 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고 진지했다. ‘수술이 끝날 때까지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어 줘요’ 그녀의 한 마디는 결국 도민준을 수술실로부터 스무 발자국, 그 이상의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방귀가 나올 때까지 그녀를 산책시키는 일도 맡게 된 도민준. 언제나 마지못해 하지만 결과는 그 덕분에 모든 것이 호전된다. 이제는 만화책을 빌려 와 달라는 그녀의 부탁까지 해주는 신세가 됐다. 말로는 거부하고 극구 부인하지만, 도민준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곁에 있게 되고,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으로 되어가고 있다. 우연인 건지 필연인 건지 종잡을 수 없는 일들로 엮이면서 말이다.

도민준과 천송이의 케미는 이미 거세게 터지고 있는 중이다. 그 둘이 함께 있는 그림은 비주얼 측면에서도 뛰어나고, 어울리기로 치면 여느 드라마 커플보다도 완벽한 앙상블을 보여준다. 티격태격하는 상황에서 사랑의 묘한 기류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들의 관계 속에 환상의 비주얼을 뛰어 넘는 두 가지 비밀이 담겨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첫 번째는 영원한 사랑이라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같은 사람을 400년 전에 알게 되었고, 또 12년 전에 다시 만나게 되었으며, 현재는 숙녀로 변해버린 그 소녀와 인연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시대를 초월한 만남,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사랑이라는 측면을 판타지로 엮어 이들에게 영원이라는 요소를 심어 놨다.

이들의 케미가 돋보이는 두 번째 비밀은 운명적 사랑이라는 점 때문이다. 우연이 만나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면서 사랑을 키우는 평이함이 아닌, 오래 전부터 결정된 운명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었다는 설정.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꿈꾸고 있는 운명적인 사랑을 도민준과 천송이는 아름다운 상황과 사랑스러운 연기로 그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판타지로 버무려진 그들의 사랑 이야기다. 영원한 사랑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운명적인 사랑 또한 해 본적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묘한 상상과 더불어 미래에 대한 은근한 기대감을 불어 넣는, 그러나 어쩌면 황당해 보일 수도 있는 그런 사랑 이야기.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별에서 온 그대’가 3회 만에 20%의 시청률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기다리고 또 믿고 싶은 사람들이 여전히 세상에는 많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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