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4일 오후 2시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15층에서 '철도파업 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를 열었다. (미디어스)

박근혜 정부의 철도 민영화 추진에 반대하는 철도노조의 파업이 3주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주요 언론은 ‘공기업 개혁에 대한 저항’, ‘기득권 지키기’, ‘불법파업’, ‘명분 없는 파업’ 등 정부의 논리를 비판 없이 반복 전달하는 대변인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지상파 3사·조중동·종편 채널들이 이 같은 보도에 앞장섰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4일 오후 2시,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15층에서 <철도파업 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를 열었다. 발제를 맡은 유민지 민언련 모니터 활동가는 “아침에는 조중동 신문들이, 낮에는 종편 채널이, 저녁에는 지상파에서 정부의 주장을 반복 보도한다”며 “(이들 언론은) 정부 대변인으로서 역할하고 있다”고 정리했다.

우선, KBS·MBC·SBS 지상파 3사는 철도파업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방식을 썼다. 민언련이 철도파업 돌입 하루 전인 지난 8일부터 19일까지 방송3사 메인뉴스 리포트를 분석한 결과, 파업의 부당성과 이에 따른 불편을 주장하는 인터뷰는 전체 138건 중 104건으로 75%에 달했지만 철도노조 목소리를 담은 인터뷰는 30건으로 22%에 그쳤다. 파업 후유증을 강조하기 위해 화물대란, 시민 불편 전달에 초점을 맞추면서, 열차 운행량이 실제보다 더 떨어진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다.

▲ 지상파 3사는 '화물대란' 등의 표현을 사용해 파업 후유증을 부각시켰다. KBS의 경우 화물열차 운행량이 47% 수준이었는데도 1/3 수준이라며 과장 보도하기도 했다. (민언련 자료집)

사상 초유의 민주노총 급습이 벌어졌던 지난 22일 이후, 지상파 3사의 정부 입장 대변은 더욱더 노골화됐다. KBS는 경찰의 무리한 연행과정을 부각시키지 않는 드라이한 보도를 내놨고, 무리한 진입에 항의하는 목소리는 전혀 전달하지 않았다. MBC는 ‘체포 작전’이라는 표현을 쓰고 마포경찰서를 현장 연결하며 경찰의 진압을 중요한 작전인 양 강조했다. SBS는 분열이 일어나 노조가 요구를 포기해야 파업을 접을 수 있다는 리포트를 하기도 했다.

보수언론 가운데 <조선일보>는 ‘조합원들의 민영화 반대 의지가 높아서가 아니라, 집행부가 파업 불참자들을 따돌리는 분위기라서 업무 복귀율이 낮다’면서 적극적으로 파업 참가 노조원들을 폄훼했다. 유민지 활동가는 코레일 보도자료와 조선일보 보도 내용이 동일하다는 것을 들어, “코레일이 18일 배포한 자료는 11일 <조선일보> 보도와 같고, <조선일보는 또 다시 그 내용을 받아쓰며 ‘핑퐁 보도’를 했다”고 지적했다. 소위 ‘철도 전문가’라는 익명의 취재원들이 철도노조 파업을 ‘흔드는’ 멘트를 하는 소스로 동원되고 있다는 점도 주요 특징으로 거론됐다.

<동아일보>는 9~23일까지(신문발행일수 13일) 6건의 사설을 내놓으며 적극적으로 철도노조 파업을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철도노조 파업은 불법이며 공기혁 개혁 시도가 기득권 저항에 밀리고 있다’는 주장을 반복했고, 21일자 보도에서는 ‘수서발 KTX 운영회사 설립은 효과가 바로 나타날지는 불투명하지만 노조의 행태를 바꾸게 될 것’이라며 노조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중앙일보>는 중도인 척 가장했으나 사실상 정부와 코레일을 대변하는 ‘기만적인 보도’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찰의 민주노총 침입을 뉴스특보와 저녁뉴스로 소화하며 ‘생중계’한 TV조선도 분석 대상이 됐다. 유민지 활동가는 “공기업 개혁 반대, 박근혜 정부 흔들기라는 내용을 반복해 보도 프로그램으로서의 최소한의 공정성, 객관성조차 완전히 무시했다”고 말했다.

유민지 활동가는 “방송 3사, 보수 일간지, 종편 보도에서는 철도파업을 지지하고 민영화를 우려하는 시민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됐고, 파업은 정부의 양보와 타협으로 풀어지는 게 아니라 ‘여론 악화’, ‘공권력 투입’, ‘손해배상 청구’ 등을 통해 굴복시킴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며 “이런 보도는 더 큰 갈등과 파국을 불러온다”고 꼬집었다.

정부와 노조를 ‘선’과 ‘악’으로 보도하는 언론

송호준 철도노조 정책팀장은 “오늘 발제를 듣고 이렇게 황당하고 악의적인 보도도 있었구나, 하는 걸 알게 됐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국민여론이 철도파업 정당성을 지지하며 많은 성원을 보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파업처럼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이 광범위화게 확산됐던 파업이 없었다”고 말했다.

송호준 철도노조 정책팀장은 언론의 철도파업 보도에서 3가지 종류의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선 송호준 정책팀장은 △철도노조가 노동법 상의 쟁의발생 요건을 정확하게 거쳤다는 점을 코레일, 노동부, 국토부도 부정하지 않는 점 △대법원 판결이 나와야 파업의 합법·불법을 따질 수 있는데 ‘권한 없는’ 정부가 불법이라고 말하는 점 등을 들어 언론의 ‘불법파업’ 프레임을 비판했다.

또한 ‘기습 파업으로 사측이 대비할 수 없을 때만 손해배상을 한정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는데도 언론은 코레일이 노조에 77억 손배 청구를 했다는 ‘사실’만을 강조하는 점, KTX 노선 분리의 성격을 어떻게 볼 지가 쟁점이지만 ‘민영화 안 하겠다는 정부의 말을 왜 안 믿느냐’는 주장만 되풀이되는 점도 문제라고 짚었다.

이용마 MBC 해직기자는 “정부를 ‘선’을 대표하는 집단으로, 노조를 정부에 이의제기하는 기득권 세력이라는 ‘악’으로 해 선악대비를 통해 파업보도를 하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언론은 왜 파업이 발생했는지 보다 이 파업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용마 기자는 “언론은 철도노조 파업이라는 이슈가 부각됐을 때 정부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먼저 따졌고, 민영화 반대에 대한 국민 여론이 높다 보니 철도노조 파업 이슈를 ‘죽이는 데’ 많이 노력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조중동의 철도파업 보도량은 <한겨레>, <경향신문>보다 낮고, 방송뉴스도 22일 경찰의 민주노총 침입 전까지는 보도량이 하루 1~2개꼴로 적었다.

이용마 기자는 “이명박근혜 정부가 거짓말을 해 와서 사람들이 정부가 하는 말을 믿지 못한다는 점, 정부가 스스로 불신을 자초했다는 점은 언론 보도를 통해서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부실·왜곡보도’가 일어나는 것에 대해 이용마 기자는 “철도파업 같은 대형사건이 났을 때 기자 한 사람이 맡는 보도는 굉장히 일부분”이라며 “예를 들어 국철, 지하철 운행 차질이나 산업 차질이 일어난 건 사실이지 않느냐며 리포트를 시키지만, ‘왜 파업하는지’를 리포트하라고 하지는 않는다. 기자들이 조직의 부품, 나사처럼 되다 보니 저항하는 데에도 기본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용마 기자는 “메인뉴스 리포트하는 기자가 100명 정도인데 작년 파업 이후 50명 이상이 새로 충원돼, 말 잘 듣는 기자들로 바뀌었다. 이 선수들이 리포트하다 보니 전혀 문제의식, 저항의식이 없다”며 “지난해 방송사 파업이 성공했다면 이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 '민영화 우려는 허구'라는 정부의 입장을 부각한 KBS 뉴스9 22일자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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