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 며칠 안 남았다고 하니 스포츠 얘기로 시작해 보자.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전 프랑스 대 세네갈 경기는 1-0, 세네갈의 승리로 끝났다. 4년 전 우승팀이자 피파 순위 1위 팀이 월드컵 첫 출전팀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렇다면 개막전을 앞두고 프랑스의 낙승을 예상한 언론 보도는 ‘허위’인가?

나는 이 질문을 지금 서울남부지법 민사15부(김성곤 부장판사)에 던지고 있다. MBC <PD수첩>이 미국인 아레사 빈슨의 사망 원인을 인간광우병(vCJD)로 추정한 것에 대해 ‘허위 보도’라고 판결한 그 재판부 말이다. (재판부는 “이미 두 차례 후속보도를 내보냈으므로 정정보도 청구를 기각했을 뿐, 보도 자체는 허위 보도”라고 밝혔다.)

▲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전문가 자문위원회가 7월30일, 전날 검찰의 < PD수첩> 수사 중간발표 내용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은경
광우병대책위 전문가 자문위는 지난 30일 “아레사 빈슨 사망 원인과 관련한 PD수첩의 보도는 과학적으로 정당하다”며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했다.

첫째, vCJD는 CJD의 4가지 하위개념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CJD를 vCJD라고 왜곡했다”는 주장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두 번째, 빈슨의 MRI를 보고 vCJD를 추정한 것은 부검 전 가장 의학적인 임상 소견이다. 셋째, 빈슨이 죽기 석 달 전 위 절제 수술을 받은 사실을 보도하지 않은 것은 CJD가 최소 잠복기 12개월에 일반수술로 전염되지 않기 때문에 정당하다.

나는 빈슨의 어머니가 딸의 사망 원인을 ‘CJD'라고 발음한 것을 PD수첩이 ‘vCJD’라고 자막 처리한 것은 정당하다고 몇 차례 글로 주장한 적이 있다. 그녀가 딸의 사망 원인을 ‘vCJD'라고 믿었으므로, 그건 친절한 번역이지 결코 왜곡일 수 없다. 거듭 말하지만, 혀 짧은 훈장님이 “내가 ‘바담풍’ 해도 너희들은 ‘바담풍’ 해라”고 하면 소년은 “바람풍” 하는 게 옳다.

“vCJD가 아니라고 곧 CJD는 아니다…새 변종 가능성”

그리고, 그녀의 사망 원인은 부검이 끝난 지금까지도 확정 발표되지 않고 있다. 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는 “미국 질병통제센터는 빈슨의 사망 원인이 vCJD가 아니라고만 했을 뿐 CJD라고 하지도 않았다”며 “아직도 사망 원인을 못 밝히는 걸로 미뤄 광우병의 새로운 변종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한다. (“프랑스가 세네갈을 이기지 못했다”와 “프랑스가 세네갈에 졌다”는 분명 다르다.)

보건 당국의 발표가 있기 전 ‘합리적 의심’을 했을 뿐인 PD수첩의 보도가 허위 보도라면 “미국 질병통제센터가 빈슨의 사망 원인을 CJD라고 확정했다”고 보도하고 있는 조·중·동은 허위 보도인가 아닌가? (혹시 그새 잊었는지 모르겠는데, 내 질문은 여전히 서울남부지법 민사15부(김성곤 부장판사)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개막전을 앞두고 프랑스의 낙승을 예상한 언론 보도는 아직도 허위 보도인가? 참고로, 2002년 당시 경기 결과는 이렇다. 프랑스-세네갈 / 득점 0-1 / 슈팅 15-6 / 구석차기 10-0 / 반칙 18-22 / 경고 1-1 / 퇴장 0-0 / 골대 맞춤 5-0. 프랑스가 골대를 다섯 번이나 맞추고도 득점을 못했다. 이 정도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보도는 허위 보도인지, 아니면 결과가 나오기 전 예상·추정 기사는 예외없이 허위 보도인지, 재판부에 묻는다.

판사가 검사보다는 조금 낫다

나는 대한민국 사법시험의 변별력을 불신하지만, 이번 판결을 보고 판사가 검사보다 사법연수원 성적이 좀 낫다는 통설만큼은 믿게 됐다. 검찰은 지난 29일 PD수첩 수사 중간발표를 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영어몰입교육 정책에 당위성을 실어주기 위한 기획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다우너 수준의 번역 실력을 보여주었다.

PD수첩의 영어 실력을 수사하겠다며 삼성특검보다 한 명 더 많은 5명의 검사를 투입하고도 어느 여성 번역자 한 사람의 대서소 노릇도 제대로 못한 검찰에게 아륀지 한 상자와 성문종합영어를 선물로 보내고 싶다. 이거 먹고 힘내서 공부하시라고. (참고 기사 : “PD수첩 수사 검찰은 영어공부 새로 하라”)

그나마 법원은 드물게 사리를 분별했다. “광우병이 발병해도 한국정부의 독자 조치가 어렵다”는 PD수첩의 보도 내용에 대해 “언론이 제기할 수 있는 의견 표명”이라는 이유로 농림수산부의 정정청구를 기각한 것을 비롯해 △라면 수프나 화장품, 약도 위험 △미국 도축시스템 허술 등의 보도에 대해 같은 이유로 기각 결정을 내린 걸 보면, 다우너 수준은 아닌 것 같다.

▲ 조선일보 8월1일치 1면
나는 똑같은 시험을 치러 견제 관계에 있는 행정부(검찰)와 사법부(법원)의 소요 인력을 동시에 공급하는 대한민국 사법시험을 불신한다. 검사 시험은 판사 시험이 아니라 조·중·동 입사시험과 묶어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1일치 일부 신문 지면을 보면 이들 신문은 확실히 검사, 즉 다우너에 가깝다. 박정희·전두환 시대 치안본부(현 경찰청)의 간첩단 사건 발표를 보도하듯 이번 검찰 발표를 ‘계보도’까지 그려가며 보도했던 이들 신문은, 검찰 발표와는 드문드문 다른 부분이 있는 법원 판결을 검찰 발표 때와 똑같이 보도했다.

‘법원, “PD수첩, 광우병 허위보도”’(<조선일보> 1면) “바담풍은 바담풍일 뿐 바람풍이 아니다”며 한사코 정확한 표현을 강조한 신문의 제목치고는 이상하다. 법원이 PD수첩의 광우병 관련 보도 모두를 허위 보도라고 판결했다는 말인가? 제목은 압축적으로, 상징적으로 다는 거라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과연 그럴까? ‘법원, “피디수첩 일부 정정·반론보도 하라”’(<한겨레> 1면) 뭐가 다른지 알겠나? (지금은 다우너에게 묻고 있다.)

▲ 한겨레 8월1일치 1면

‘법원은 “사실관계를 단정적으로 보도한 적이 없다”는 PD수첩 측 주장에 대해 “…사회적 흐름 및 시청자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조선일보 5면 “방송, 시청자에 주는 전체적 인상 고려해야”) 조선일보는 PD수첩 전체를 허위 보도로 판결했다고 단정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적 흐름 및 독자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아직 내 질문은 법원에도 던져지고 있다.) 법원은 뭐 하나? 자기들 판결 기사를 허위 보도한 이 신문은 그냥 놔둘 건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식의 이런 보도는 “월드컵 개막전 예상기사를 허위 보도라고 판결한 걸 보면 나머지 판결도 보나마나 다우너 수준”이라고 보도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난 결코 그렇게 보도한 적이 없다.)

동아일보 기사, 눈에 띄네

‘“판결 내용 왈가왈부 바람직 안해…정정보도할 때 코멘트하지 말라” 재판부, MBC에 이례적 주문’(동아일보 1면) ‘‘잘못 일부 시인하며 역공’ 행태에 일침’(동아일보 6면) 이날 모든 신문을 통틀어 서울남부지법 민사15부(김성곤 부장판사)의 판결 기사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기사였다. 해당 본문은 사실 보도를 하려면 이쯤은 해야 한다고 보여주려는 듯 재판장의 말은 물론 몸짓까지 자세히 옮기고 있다.

▲ 동아일보 8월1일치 1면
‘재판장이 판결문을 내려놓고 두손을 깍지 낀 채 방청객을 응시했다. “(PD수첩으로선) 일부 승소 판결이 난 셈이다. 언론사인 피고는 언론의 비판적 기능에 비추어 이번 판결에 대해 비판하거나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피고가 정정 및 반론보도를 할 때 판결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 이를테면 실질적으로 진 부분도 이겼다고 한다든지 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정정보도에 의한 피해자 권리구제 기능이 매우 약화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정정이나 반론보도를 할 경우 가급적 판결 내용에 대한 코멘트를 하지 말 것이며 전해야 할 내용이 있다면 다른 기회에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이런 주문은 그동안 방송통신심의위원회나 언론중재위원회 등에서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결정이 날 때마다 반박보도로 일관해온 PD수첩에 대한 엄중경고로 해석된다.’

그런데 난 동아일보와는 영 다른 대목에 눈길이 간다. 재판장 말마따나, PD수첩이 언론의 비판적 기능에 비추어 이번 판결에 대해 비판하거나 평가할 수 있다. 나는 판결에 대해 비판하거나 평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판사는 판결로 말하고 기자(피디)는 기사(프로그램)으로 말하는 것이다.

“PD수첩 일부 승소” 평가에 더 눈이 간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PD수첩으로선 일부 승소 판결이 난 셈”이라는 재판장의 ‘자체 평가’다. ‘법원 “PD수첩, 광우병 허위보도’라는 조선일보 제목과 배치되지 않는가? “방송(신문)은 시청자(독자)에게 주는 전체적 인상을 고려해야 한다”는 재판장의 말(조선일보)에 비춰보면 동아일보는 독자에게 줄 전체적 인상을 충분히 고려했는가?

이거야 원, 주저앉다가 자기들끼리 깔아뭉개는 다우너 같지 않은가. 아니면 월드컵에서 자살골 넣는 꼴이든지. 자신의 언어로 자신을 공격하는 맹목은 도대체 언제까지 되풀이하려는지. 조금 참았다가 올림픽 경기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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