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의 무리한 <PD수첩> 일부 정정 및 반론보도 판결을 규탄한다 -

이명박 정권의 추악한 언론장악 음모에 이제는 법원까지 나선 듯하다. 이명박 정권은 KBS 정연주 사장을 몰아내고 MBC <PD수첩>에 광우병 사태의 책임을 뒤집어씌우기 위해 검찰, 감사원, 국세청 등 갖은 공권력을 부당하게 동원해왔다. 그런데 이번 <PD수첩>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보면, 사법부마저 정권에 동원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씁쓸하다 못해 대한민국이 과연 법치국가가 맞는지 자괴감마저 든다. 정권이 제아무리 망나니 칼춤을 춰도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만큼은 올바른 판단으로 이를 제어할 것으로 많은 시민들은 믿어왔을 터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 15부(김성곤 재판장)가 31일 내린 판결 내용을 뜯어보면, 법원이 얼마나 무리수를 뒀는지 알 수 있다. 재판부는 농수산식품부가 <PD수첩>을 상대로 청구한 7가지 정정 및 반론보도 요구 가운데 ‘주저앉은 소를 광우병에 걸렸거나 걸렸을 가능성이 큰 소로 보도한 부분’과 ‘유전자형 때문에 한국인의 광우병 발병 위험성이 높다고 보도한 부분’ 등 2가지에 대해 정정보도를 하라고 판결했다. 또 ‘정부가 특정위험물질(SRM) 5가지의 수입을 허용한 것처럼 보도한 부분’에 대해서는 반론보도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언론의 책무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도 배제된 몰상식한 판결이다. “주저앉은 소가 광우병 위험이 높다”는 건 상식적인 얘기다. 조금의 위험성이라도 있으면 지적해야 하는 게 언론의 책무다.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위험 가능성을 제기한 언론에게 정정보도 판결을 내린 것은 언론의 감시기능 위축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 한국인 유전자형 관련 보도도 <PD수첩>이 7월 15일 후속보도를 통해 이미 정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정정보도를 하라는 것은 “후속보도로 정정했으면 정정보도가 필요없다”는 대법원 판례마저 무시한 것이다.

재판부가 반론보도를 요구한 부분도 <PD수첩>이 당시 정부 규정에 따라 보도한 것으로, 정부 규정이 바뀐 것은 보도 이후의 일이다. <PD수첩>의 보도가 있었기에 정부가 뒤늦게나마 잘못을 인정하고 규정을 바꾼 것으로 보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그럼에도 당시의 사실보도에 대해 나중에 뒤바뀐 규정을 근거로 반론보도를 하라는 건 앞뒤가 뒤바뀌어도 한참 뒤바뀐 판결이다.

이처럼 법원이 앞뒤가 안 맞고 무리한 판결을 내린 데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상재, 이하 언론노조)은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이명박 정권이 자신의 잘못과 실정을 언론에 뒤집어씌우려는 더러운 음모에 법원이 일조한 꼴이기 때문이다. 이날 판결 이후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하는 검찰은 <PD수첩>을 더욱 압박하고 정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중동은 사나운 사냥개처럼 <PD수첩>을 마구 씹어댈 것이 눈에 선하다.

법원이 정권의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은 이것만이 아니다. KBS 이사직에서 부당하게 쫓겨난 신태섭 교수가 얼마 전 청구한 강성철 KBS 보궐이사 임명무효 소송 처리에 미적대는 것도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요즘 언론계에선 이명박 정권이 8월에 KBS 정연주 사장을 몰아내려 한다는 시나리오가 떠돌고 있다. 여기엔 KBS 이사회가 주도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이사회 구성원이 자격과 관련된 소송에 휘말렸다면,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 언론노조는 법원이 정권 눈치 보기를 그만두고 지극히 상식적이고 원칙에 맞는 판단을 내려줄 것을 거듭 촉구한다.

2008년 7월 31일
전국언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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