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 18화, 밀레니엄의 전날 신촌 하숙집에 나정이만 남겨지고 모든 하숙생들과 식구들이 외출하는 장면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꽃보다 누나>는 안 하려나? 벌써 10시가 되어가는데..’했는데, 중간 광고를 하는가 싶었더니 뜬금없이 화면은 <코미디 빅리그>의 한 코너로 옮겨진다.

그런데 이게 처음이 아니다. 다른 때 같으면 8시 40분이면 시작했을 <응답하라 1994>가 50분이 되도록 시작되지 않은 채, <코미디 빅리그>와 <렛츠고 시간 탐험대>, <레인이펙트>의 예고 방송이 이미 나왔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18화 편집이 지연되었기 때문 한다. 그간 <응답하라 1994>를 보아왔던 사람들이라면 20일의 이런 방송 사고가 짜증은 났겠지만 어쩌면 놀랍지는 않을 듯도 싶다. 이는 우연찮은 제작 지연이 아니었다. 어쩌면 <응답하라 1994>가 맞이할 필연적인 결과였는지 모른다.

전작의 인기를 등에 업은 데다, 시작하자마자 신드롬을 일으키기 시작한 <응답하라 1994>의 방영 시간은 말 그대로 '엿장수 마음대로'였다. 40분쯤 시작하겠거니 하고 텔레비전을 켜보면 벌써 하고 있을 때가 있거나, 이즈음엔 끝나겠지하고 다음 프로를 보려고 하면, 10시는 저리 가라 도무지 언제 끝날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채널을 돌릴 수조차 없다.

방송 사고가 발생한 20일 방영분에서 결국은 다시 나정이와 칠봉이를 밀레니엄을 빙자해 한 자리에 앉혔다. 여전히 감정이 사라지지 않은 듯한 시선이 오고가는 장면을 오랜 지연 뒤에 내보내고야 마는데, 시청자들이야 욕을 하면서 기다릴 밖에 무슨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덕분에 <응답하라 1994>의 방송 시간은 제작진만 아는 비밀이 되었고, 미니 시리즈 시간 72분 룰은 저리 가라, 종종 90분을 넘는 경우조차 빈번했다. 지상파 미니 시리즈 방영 시간이 최근에 72분에서 다시 67분으로 줄어들었다. 실제 광고를 빼면 순수 방송 시간으로 65분에서 59분으로 줄어든 것이다. 왜 이렇게 줄였을까? 일주일에 두 편 방영하는 미니 시리즈라면 결국 일주일에 영화 한 편 분량을 찍게 되는 셈이다. 제작진도, 연기자도, 작가도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구조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밤샘 촬영이요 쪽대본이라는 관행이었다.

더구나 조금이라도 시청자들의 촌각의 관심을 끌려는 꼼수로 인해 서로 조금씩 늦게 끝나다 보니 결국 자기가 자기 무덤을 파는 결과를 낳게 됐다. 그래서 이제 지상파는 서로 협정을 맺어 72분 룰이니, 67분 룰이니를 만들어낸 것이다. 케이블의 장점은 바로 방송 시간의 룰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응답하라 1994>는 마음대로 방영 시간을 늘였다 줄였다 하는 '만용'을 부렸다. 하지만 제 아무리 드림팀의 제작진이라 하더라도, 늘어난 방송 시간을 메우는 것은 제작진과 출연진의 몫이다. 그러니 결국 20일의 방송 사고는 예정된 셈이다. 이미 방송 사고가 나기 전 <응답하라 1994>의 방영 시간은 10시를 향하고 있었다. 다른 프로그램이 15분 정도 방영된 이후, 다시 <응답하라 1994>가 15분 정도 방영되었다. 여전히 과유불급이다.

그런데 그렇게 과욕을 부릴 만큼 <응답하라 1994>가 흥미진진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방송 사고가 나기 전 시간은 IMF의 여파와 특별했던 연인 나정이(고아라 분)와 쓰레기(유연석 분)의 특별하지 않은 짧은 이별과, 해태의 첫사랑 다시 만나기로 채워졌다. 그리고 누구나 다 예상했듯이 나정이와 칠봉이의 해후가 이루어졌다.

그렇다. 드라마에 깔리던 나정이의 내레이션처럼, 세상의 모든 연인들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만 특별하지 않다. 누구나 다 헤어질 수 있다. 하지만, 나정이의 입장에서 생각해서 결혼조차 미룰 수 있는 쓰레기(정우 분)를 그저 보통의 연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과정은 성의가 없어도 너무 없어 보인다. 마치 칠봉이와 재회를 마련하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인 것 마냥, 죽은 오빠로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끈끈한 인연이 단 2년 동안의 물리적 공간의 확장으로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건 그간 두 사람이 보여준 정신적 유대의 깊이에 비하면 작위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랄까?

2년 동안 안 본다고 헤어지는 나정이와 쓰레기 커플에 더 오랫동안 나정이를 잊지 못하는 칠봉이라, 이제 누가 나정이의 남편이 되어도 공감이 가지 않을 듯 싶다. 과연 이 제작진이 그려내고 싶은 것이 IMF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 휘말린 청춘의 이야기인지, 나정이 남편 떡밥 게임인지 그 순수성에 자꾸 의혹의 눈길이 보내진다.

부디 남은 몇 회 동안 시청자 낚기 게임 대신, 애초 하고자 했던 이야기에 충실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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