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키>, 윌리엄 S. 버로스, 펭귄클래식코리아.) (<퀴어>, 윌리엄 S. 버로스, 펭귄클래식코리아.)

작가 주: 가끔씩 나는 내가 미친 것은 아닌 가 불안해한다. “활자를 박멸하려는 외계인에게 서평을 보고서로 보내는 소설가”가 미친 게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나는 정당하다—정상이 아니라—그러나 사실을 숨기고 얌전한 소시민으로 행동한다. 도대체 정상은 누가 정한단 말인가? 정상은 끊임없이 진동하는 아메바의 무게중심처럼 역동적으로 변한다. 인식의 경계선을 끊임없이 침식해대면 정상은 상상도 못할 곳으로 이동해버리고 신기루처럼 가까이 가면 갈수록 가는 만큼 멀어지는 법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적사병의 가면> 속 귀족들처럼 성 안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는 사람이라면 눈을 돌리고 싶은 외부라는 적사병이 언제든 성 안으로 파고든다…….

또 내가 엉뚱한 말을 늘어놓고 말았다. 직업병이니 용서해주길 바란다. 나는 이번에 두 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미처 해보지 못한 정신의 암흑면을 탐험하고 돌아온 남자가 남긴 기록이다.
에이전트 S009
---(이하 보고서)---
범은하활자박멸운동위원회 정기 보고서
작 성 자: 9급 에이전트 S009
문서번호: 20131125SMCHS402-17GNM00003
시행일자: 201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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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1) 정키
2) 퀴어
저 자: 윌리엄 S. 버로스
출 판 사: 펭귄클래식코리아
보고내용:
마약과 동성애라는 엔진을 단 우주선을 타고 지구인의 의식과 상식의 한계를 넘어선 공간을 탐험한 윌리엄 S. 버로스는 모든 것에 반대하며 산 기록을 소설로 남겼다. 그 중에서도 초창기에 쓴 소설 두 권 <정키>와 <퀴어>의 주인공인 윌리엄 리는 그의 분신이자 또 다른 소설 <네이키드 런치>의 영화판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사실 두 이야기는 느슨하게 이어지는 하나의 이야기이며 한 남자의 두 면을 다룬다. <정키>는 1953년 출간된 그의 데뷔작이자 마약중독자로써의 고백이고, <퀴어>는 <정키>의 자매편이면서도 30년 늦은 1985년에 출간된 동성애자로써의 고백이다. 고백은 한 가지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윌리엄 S. 버로스는 같은 마약중독자였던 아내를 쏘아 죽였다. 하지 말라고 금지된 일만 골라서 하던 끝에 일어난 사고였다. 사고의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이를 영원히 상기하고 싶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그 일 때문에 작가가 되었다고 <정키>의 프롤로그에서 고백한다.
나는 왜 당신들에게 이 책을 소개하는 가? 지구인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지구인은 모순적이고 역설적이다. 하고 싶기 때문에 금지한다. 하기 싫기 때문에 장려한다. 당신들로써는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도 죽어본 사람은 없다.
윌리엄 S. 버로스는 금기의 저편 너머에 있는 한 없이 죽음에 가까운 공간에서 살아왔다. 그는 말 그대로 정키에 퀴어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정키도 퀴어도 아니었다. 그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A Man Within>에서 그 못지않게 금기의 영역에서 산 영화감독 존 워터스는 말한다.
“(게이 운동에 대해) 그는 초월했어요. 어떤 규칙도 전혀 존중하지 않았고 지키지도 않았어요. 게이들 사이의 규칙과 관습도 마찬가지였어요. 게이 운동에 나선 사람들을 매우 싫어했지요. 그들의 게이 사회에는 이성애자 사회만큼이나 상당히 많은 규칙이 있었고, 그는 규칙이라면 죄다 싫어했거든요. 정키 세계의 규칙마저 어길 정도였어요.”
모든 규칙을 어긴 그가 발견한 것은 삶의 본질이었다. 그 누구와도 유대를 맺지 못했고 자기 자신과도 자기 자신의 육체와도 육체가 원하는 욕망과도 친해지지 못한 그는 왜 사람이 살고자 하고 무언가를 원하는 지 금단현상으로 아파하고 상실감으로 괴로워하며 깨달았다. 외로움, 고독, 영원한 상실감이 곧 인간의 삶이기에 다른 이와 다른 물질과 다른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을.
인터뷰에서 그는 사랑을 원하냐는 질문에 “아니요” 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일 사랑이란 고립된 두 마음이 만나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라 정의한다면, 그는 평생 “사랑”을 원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계속 실패했다. 그가 경험했던 텔레파시조차 절대적인 명령과 복종, 발신자와 수신자의 관계였을 뿐이었다고 말한다. 마약도 섹스도 언어도 텔레파시마저도 그의 고독을 ‘치료’하지 못했다.
아마 평생 동안 실험을 거듭했던 모양이다. 그는 1914년에 태어나 1997년에 죽었다. 자기 자신을 파괴한 오랜 세월동안에도 그는 죽지 않았다. 그가 죽은 것은 그의 오랜 친구이자 복잡한 관계였던 또 다른 문인 알렌 긴즈버그가 죽고 난 뒤 몇 개월 뒤였다. 그는 더 이상의 상실감을 원치 않은 모양이다.

나는 당신들에게 이 글을 읽기를 권한다. 그의 다른 책은 너무도 복잡하고 어지러워 당신들을 소외시켜 이해시키려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상 한 권인 이 두 권의 소설이 인간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을 이해시켜 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읽어보라.
끝.
범은하활자박멸운동위원회 지구지부 서울파출소

손지상

소설가이며 번역가이다. 미디어스에서는 범은하활자박멸운동위원회에 정기 보고서를 제출하는 '9급 에이전트 S009'를 자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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