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그대’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다. 상투적이었다면 천송이(전지현 분)가 400년 전 자신이 구해준 조선낭자라는 것을, 그리고 또 12년 전 목숨을 구해준 소녀라는 것을 도민준(김수현 분)이 알아가는 데 오랜 시간을 끌었을 테다. 그런데 불과 2회 만에 도민준은 천송이가 누구인지를, 그녀가 바로 지구인들이 말하는 운명의 여인임을 알게 된다.

이는 천송이에 대한 도민준의 사랑이 시작됨을 의미하고, 그렇게 됨으로써 이들이 초반부터 불꽃같은 케미를 맹렬하게 터트릴 것을 예상하게 만든다. 전지현과 김수현은 연상연하지만 은근히 어울리는 비주얼을 선보인다. 이제 그들은 그림 같은 비주얼과 더불어 그보다 환한 러브스토리를 엮어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의 승패여부는 누가 뭐래도 주인공들의 사랑이 얼마나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지, 그들의 케미가 얼마나 동경심을 유발하는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별에서 온 그대’는 벌써부터 백 점 가까이에 근접해 있는 듯하다. 2회 마지막 장면에서 ‘넌 누구냐?’라고 묻는 김수현의 표정과 이를 바라보는 전지현의 표정이 그 다음 주를 기다리게 만들고, 이들의 아찔하고도 짜릿한 사랑을 고대하게 만들고 있다.

‘별에서 온 그대’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만이 아님을 보여주는 또 하나는 천송이를 통해 여배우의 삶을 코믹하면서도 생생하고 현실감 있게 풍자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박지은 작가는 꽤나 노골적으로 여배우를 둘러싼 여러 가지 논란과 스캔들을 천송이라는 캐릭터를 빌어 들추어내기 시작한다.

천송이는 매니저로부터 ‘천송이 스페셜’이라는 프로그램 섭외가 들어왔다는 말을 듣지만 처음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그런 것 안 해도 누구나 다 자신을 스페셜하게 생각한다고 코를 들면서 말이다. 그런데 ‘언니가 안 하면 ‘한유라 스페셜’로 간다고 하네요’라는 코디의 말 한 마디에 생각을 고쳐먹는다. 탐탁지 않은 프로그램이었지만 경쟁 배우인 한유라(유인영 분)에게 프로그램이 가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는 여배우들의 시샘이 이 정도로 치열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이렇게까지 경쟁을 벌이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충분히 있을 법도 한 얘기다. 실제로 여배우들이 마음에 드는 작품의 타이틀롤을 맡기 위해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인다는 것쯤은 이제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결국 천송이는 ‘천송이 스페셜’을 찍게 된다. 수많은 카메라와 스텝들에게 둘러싸여 하루의 일상을 시작한다. 한 번도 타지 않은 자전거로 등교하는 컨셉을 잡으면서, 이미 제작진과 어느 정도는 말을 맞추면서 말이다. 스타의 일상을 리얼하게 담은 다큐 형식의 프로그램이었지만, 실상은 리얼이 아닌 대본 있는 페이크로 진행이 되고 말았다.

천송이는 맨 얼굴도 어쩜 그렇게 아름답냐는 질문에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세수만 했을 뿐인데 라고 부끄러운 듯 답한다. 쌩얼로 보여야 한다며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겁박을 주면서 세심한 메이크업을 받은 사실을 감쪽같이 숨긴 채. 이로써 대중에게 그녀는 그저 별 다른 화장도 하지 않은, 관리도 받지 않은 타고난 피부 미인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목화를 모카로 착각하고, 갈릭과 마늘을 다른 말로 알았던 데 이어, 이번에는 프로폴리스를 프로포폴로 둔갑시켜 버리는 천송이다. 무식한 여배우의 단면으로 웃음을 유발하려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실제로 프로포폴 투여로 법적 처벌을 받은 일부 여배우들의 행각을 꼬집은 영특한 풍자가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예전 여배우들이 제출했던 허위 논문에 관한 문제를 떠올리게 만든 장면도 있었다. 천송이는 이미 발표된 이 논문 저 논문을 짜깁기하여 자신의 이름을 붙여 레포트를 제출했다. 도민준은 잠시 훑어보고는 짜깁기한 논문임을 금세 알아차렸고, 그 자리에서 바로 천송이에게 망신을 주었다. 이 장면 역시 천송이를 통해 여배우를 둘러싼 이런 저런 논란들 중 하나를 떠올리게 만든 장면이었다.

톱스타 여배우의 부모들이 사치행각을 벌이거나 섣불리 사업에 뛰어들어 도산한 경우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빈번이 일어나는 일이다. 천송이의 엄마도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천송이가 준 돈으로 하는 일마다 족족 말아 먹고, 천송이의 이름으로 된 카드로 쇼핑을 하는 것이 낙인 엄마. 그녀를 보며 연예인인 자식을 방송을 통해 비난하고 그것도 모자라 고소까지 한 어느 부모가 생각이 나기도 했다.

천송이는 방송가의 고질적인 딜레마를 들추어내기도 했다. 웰메이드라는 평을 받았지만 시청률 4% 밖에 나오지 않은 드라마 때문에 결국 제작사 사장은 결국 알거지가 되었다는 드라마계의 실태를 말이다. 증권가 찌라시는 증권가 스스로가 아니라 어쩌면 나와 같은 일을 하는 경쟁 상대의 입에서 나오는 뜬소문일지도 모른다는 암시까지 던져가면서.

거침없이 욕지거리를 해대는 여배우, 책이랑은 담을 쌓아 기본적인 상식조차 잘 모르는 여배우, 끊임없이 경쟁 상대를 의식해야 하고 전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는 여배우, 대학은 들어갔지만 논문은 써낼 줄 모르는 여배우, 가족에게 등골을 빼 먹히는 여배우, 시청률과 증권가 찌라시에 오늘도 마음을 졸여야 하는 여배우.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는 그런 여배우였다.

어쩌면 전지현은 대한민국의 여배우들을 대표하여 자신의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연기하고 것인지도 모른다. 제법 적나라하게 파헤쳐진 여배우의 삶을 덤덤하게 고백이라도 하듯 말이다. ‘별에서 온 그대’는 로맨틱 코미디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진정한 묘미는 달달한 솜사탕 같은 사랑이야기가 전부는 아닐 것이다. 거기엔 분명 여배우를 까뒤집은 용기와 그로 인한 대중과의 관계 회복이라는 묘미도 함께 들어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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