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전 조선으로 날아든 미확인비행물체의 탑승객 도민준(김수현 분)은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혹은 틸다 스윈튼이 주연을 맡은 <올란도>, 틴에이지 뱀파이어 무비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떠올리기에 충분한 캐릭터다.
400년 전에 살았던 인물이라면 지금은 이미 흙이 되어야 할 사람. 하지만 도민준은 외계에서 조선으로 불시착한 인물인지라 나이를 먹어도 늙지 않는 불로불사의 존재다. 나이를 먹어도 지구인처럼 늙지 않는다는 드라마의 설정은 도리언이나 올란도를, 도민준이 49년 동안이나 전쟁에 참여한다는 설정은 엑스맨의 히로인 울버린을, 도민준이 수많은 세월을 보내며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점은 트와일라잇 속 컬렌 가문이 부를 쌓을 수 있었던 것과 명맥을 같이 한다. 사람의 몸짓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도민준의 민첩함 역시 컬렌 가문 뱀파이어의 강하고도 재빠른 몸놀림과 궤를 같이 하기에 충분하다.
지식만 축적한 게 다가 아니다. 조선을 거쳐 일제시대를 관통하는 장구한 세월을 보내며 부를 축적했단 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임종의 순간에 한 발자국씩 다가서는 서글픈 개념이 아니라 삶의 경륜과 지혜가 쌓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나이먹음에 대한 긍정적인 성찰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삶의 지혜를 축적해온 도민준도 모르는 게 있다. 그건 400년 전 지구에 떨어진 도민준에게 그림을 처음으로 선물해 준 조선시대 여인과 똑 닮은 아가씨가 400년 후 어린 천송이(전지현 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400년 전 도민준에게 그림을 건네준 조선시대 아가씨가 천송이로 환생한 걸까. 다음 생이 이어지는 환생이 <별에서 온 그대> 안에서 펼쳐진다면 이는 400년 동안 지구의 풍습을 익힌 외계인조차 몰랐던 신비함이 아닐 수 없다.
천송이 역시 12년 전 트럭에 치일 뻔한 자신을 구한 것이 도민준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엘리베이터 안에서 혹은 강의실에서 도민준에게 추태를 벌이지 않았을 것임에 분명하다. 첫 회에서 티격태격하던 톰과 제리 같은 두 남녀, 천송이와 도민준의 사랑이 활짝 피길 바란다면 환생의 애틋함이, 세월을 넘어선 사랑의 영롱함이 시청자에게 영민하게 다가서야 재미를 더할 것이다. 불구대천지의 원수처럼 서로 보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천송이와 도민준을 묶어줄 끈은 세월을 관통하는 환생의 끈이 아닐까 싶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