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동성애는 여전히 어색하고 껄끄럽다. 아무리 그럴싸하게 표현한다고 해도, 그것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이성애자들에게는 생경한 풍경이고 불편한 감정이다. 이해한다기보다는 세상엔 그런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정도이다.

처음부터 짐작은 했었다. 빙그레(바로 분)가 쓰레기(정우 분)의 방에 들어갔을 때, 마치 여자친구의 방을 구경하듯 신기해하고 좋아하며 빙그레 미소를 지은 장면이나, 때때로 쓰레기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수줍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면서 혹시 빙그레가 동성애자가 아닐까 하는 얘기가 돌았었다.

이에 ‘응답하라 1994’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빙그레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다. 빙그레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결국 그것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천만 가지 감정 중에 하나였음을 묘사해 나간다.

부산에 내려가 있는 쓰레기를 찾아온 후배 빙그레의 표정이 여느 때와는 사뭇 다르다. 엷게 미소를 띤 그의 얼굴에는 어떤 결의가 차 있다. ‘설마 니 부산까지 내 보러 왔어?’ 쓰레기는 자신 앞에 우뚝 서 있는 빙그레가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쓰레기의 질문에 빙그레의 대답은 더없이 짧았다. ‘네, 밥 사주세요. 선배님.’ 이상하게도 밥을 사달라는 이 흔한 말이 무척이나 애처롭게 들려왔다.

‘다음에는 미리 전화하고 온나. 형이 부산에 좋은 횟집 많이 알고 있으니까 다음에는 형이 더 비싸고 더 맛있는 거 사주꾸마.’ 허름한 국밥집에 데려온 것이 쓰레기는 미안하기만 하다. 그런데 빙그레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국밥 그릇에 얼굴을 파묻을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는 숟가락으로 국밥을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기만 한다.

젓가락질 소리와 숟가락으로 국밥을 긁는 소리,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소리 말고는, 그들의 식사에 대화라는 것은 없었다. 한참 동안이나 묘한 정적이 흐르고, 이때쯤은 누군가가 말을 하겠지 하는 그 시간마저 지날 때, 마침내 빙그레의 입에서 한 마디가 툭 하고 뱉어져 나온다. ‘선배님 저 이제 밥 안 사주셔도 돼요.’

쓰레기의 얼굴이 묘해지기 시작한다. ‘이게 무슨 말이지? 무슨 뜻이지?’ 하는 표정이다. 갑자기 빙그레의 눈이 슬퍼지기 시작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떠나보낸다는 흔한 유행가 가사를 불현듯 떠오르게 하는 눈빛이다. 빙그레는 쓰레기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저 오늘 마지막으로 밥 얻어먹으려고 선배님한테 온 거에요. 다음엔 그냥 술 사주세요.’ 그리고 차마 하지 못했던, 지금까지 꺼내본 적 없었던 말을 이어나간다. ‘선배님이 있어서 참 좋아요… 형!’

단 한번도 빙그레는 쓰레기에게 형이라고 말을 한 적이 없다. 같은 하숙집에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살았으면서도, 쓰레기가 그냥 형이라고 부르라고 누누이 일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쓰레기를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그런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형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쓰레기는 자신도 모르게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빙그레가 쓰레기에게 형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응답하라 1994’는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띄운다. 어느새 우리에게 첫사랑을 대변하는 노래, 첫사랑을 기억하게 만드는 노래, 첫사랑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노래가 되어버린 음악 말이다. 이는 빙그레의 첫사랑이 쓰레기였음을 아주 특별하고 세련되게 그려내는 ‘응답하라 1994’ 만의 기막힌 연출력이 아닐까 싶다.

빙그레에게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긴장되고 떨리는 순간이었으며, 가슴 벅찬 고백이었다. ‘선배님을 참 많이 좋아해요’라는 말을 ‘선배님이 있어서 참 좋아요.’로 바꿔 말한 것이니까. 그런데 희한하다. 빙그레의 고백을 들은 쓰레기의 눈에 슬며시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마치 오래 전부터 빙그레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럼에도 그의 바람대로 대해주지 못함을 원망이라도 하는 듯이.

현재 빙그레의 아내는 학과 선배였던 윤진이(윤진이 분)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확인시켜준 여자이며, 그 확인으로 빙그레의 혼란은 끝나버린 셈이다. 동성애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역시 얼토당토아니하다. 한 번의 이성교제로 동성애자가 이성애자로 뒤바뀐다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며, 동성애를 다룬 여느 드라마와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런데 ‘응답하다 1994’가 동성애에 접근하는 방식을 몰상식하다고 보긴 어렵다. 제작진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동성애자가 이성애자로 혹은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로 쉽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의 학창시절에 한 번쯤 가져 봄직한 선배에 대한 동경, 존경, 호감, 연민, 애정이라는 이름의 감정들을 살포시 그려나가면서, 이 또한 동성애로 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어쩌면 동성애라 하는 것이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자그마한 카데고리일 뿐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었을 테니까.

‘응답하라 1994’ 역시 동성애를 애써 미화하지 않았다. 쓰레기와 빙그레의 관계에 자극적으로 비쳐질 만한 그 어떤 에피소드도 첨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빙그레의 첫사랑은 무척이나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애틋하고 아련하며 나중에라도 좋은 추억으로 떠올릴만한 그런 사랑이다. 지금까지 이성애자까지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동성애가 있었던가. 빙그레의 첫사랑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응답하라 1994’만이 생각해 낸 아주 특별한 접근방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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