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일일드라마 ‘잘 키운 딸 하나’는 오래 전부터 하나의 당연한 가치관으로 자리잡았던 남아선호사상을 비꼬고 있다. 아들을 낳지 못하면 소박맞던 시절, 아들을 낳을 때까지 계속해서 아이를 생산해내야 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무모하며 편협한 윤리인지를 실감케 하고 있다.

시대적 배경은 2013년이지만 주인공들이 끌고 가는 이야기는 조선시대를 연상케 한다. 조강지처는 쫓겨났고, 그 자리에 첩이 들어가 버젓이 조강지처 행세를 하고 있다. 조강지처는 자신이 낳은 딸 중 한 명을 아들로 둔갑시켜 본가에 들인다. 딸이 아닌 아들이어야만 자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딸로 태어난 장은성(박한별 분)이 아들로 위장을 한 순간, 할아버지가 키운 기업 황소 간장의 손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녀는 황소 간장 집안에서 첩의 자식들과 함께 손녀가 아닌 손주로 살아가게 된다. 당연히 온갖 구박과 편애를 당하면서, 그리고 그것을 꿋꿋하게 이겨내면서 말이다.

장은성은 첩의 두 자식들 중 남자인 장라공(김주영 분)과 끊임없이 경쟁을 치른다. 장라공이 전교 1등을 하면, 장은성은 국제 창조올림피아드에서 대상을 거머쥔다. 이들은 학교에서도 경쟁 상대이며, 집안에서도 할아버지에 의해 비교 평가를 받게 된다. 가업을 이어 받을 이는 반드시 여자가 아닌 남자여야만 하고, 이들이 그 후보들이라서 그렇다.

남자로 태어나야만 가업을 물려받을 수 있고, 여자는 그저 콩고물만 주워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 딸을 아들로 둔갑을 시켜야만 자식 대우를 받을 수 있었던 시절을 ‘잘 키운 딸 하나’는 2013년을 배경으로 그려나가고 있다. 시대의 가치관을 거스르는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선호사상이 잔존하고 있음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잘 키운 딸 하나’는 바로 그 사고의 찌꺼기를 꼬집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풍자함에 있어서 표현 방법이나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아쉬운 부분이 많다. 딸에게 아들 행세를 하게 만든다는 내용은 무척이나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며, 또한 이를 위해 여배우가 남장 연기를 한다는 설정도 매우 진부하고 식상하다. 무엇보다 남장 연기를 맡은 박한별의 캐릭터 소화 상태가 꽤나 거슬린다.

과감하게 자신의 머리를 자른 것에 대해서는 나름대로의 노력과 각오를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남자다운, 혹은 남자 같은 구석이 전혀 느껴지지가 않는다. 진하지 않지만 메이크업을 한 얼굴임이 여실히 드러나며, 머리를 잘랐지만 여자들이 분위기를 바꾸고 싶을 때 자주 하는 헤어스타일 정도다.

여배우가 남장을 했을 때, 분명 한계는 있을 것이라고 본다. 완전한 남장으로의 변신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시청자들은 이미 박한별임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장은성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남장으로 속이는 일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여배우의 연기력이 중요해진다. 목소리 톤이라던가, 제스쳐, 분위기, 말투 등으로 딸이 아닌 아들을, 손녀가 아닌 손주를, 여자가 아닌 남자를 연기해 내야만 한다. 하지만 박한별에게는 남장만 있었을 뿐, 남장 연기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남자 흉내를 내려는 시도만으로는 장은성이라는 캐릭터를 그려낼 수가 없는데 말이다.

그동안 많은 여배우들이 남장연기를 했다. 어쩌면 남장연기를 제법 잘 소화해낸 배우들이 있다 보니 박한별의 남장 연기가 상대적으로 비교가 되면서 부족함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설픈 남장 연기를 칭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이쉬한 여배우의 매력을 발산하는 역할이 아닌,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자신의 성을 꽁꽁 숨기고 살아야 하는 아슬아슬한 남장 여자의 역할이지 않은가.

박한별의 연기력도 문제지만, 요즘 들어 남장 여자 캐릭터가 부쩍 늘어나고 있는 트렌드도 문제다. 작품의 내용상 필요한 것이라면 남장 여자든 여장 남자든 무슨 대수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트렌드화가 된다거나, 작품의 내용상 캐릭터에 대한 당위성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이는 분명 재고해 볼 일이다. 어설픈 남장 여자 캐릭터, 이제는 그만 봐도 그다지 아쉬울 건 없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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