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태(주원 분)의 매복 수사에 제동이 걸렸다. 연쇄살인범을 쫓기 위해 용의자가 나타날 만한 곳에 형사들을 매복시켜 놓았는데, 누군가가 이호태가 다 지어놓은 밥에 소금을 뿌린다. 누군가 연쇄살인범을 뺑소니한 것도 모자라 후진까지 하는 바람에 연쇄살인의 유력 용의자의 목소리를 듣는 건 불가능하게 된다.

이호태의 다 된 밥, 수사에 재를 뿌린 장본인은 윤진숙(김아중 분)이다. 하지만 이호태는 윤진숙이 뺑소니범이라는 걸 알아도 그를 검거할 수 없다. ‘변형된’ 스톡홀름 증후군이 이호태에게 나타나서다. 윤진숙은 이호태의 첫사랑이다. 버스에서 험상궂은 남자들이 따라올까 무서워 옆에 앉은 이호태에게 함께 내려줄 것을 요청한 윤진숙에게 한눈에 반한 이가 이호태고, 도움을 청한 윤진숙은 이호태의 첫사랑이 된다.

통상적인 스톡홀름 증후군은 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위해를 입힐 강자인 인질범에게 약자인 인질이 감정이입하는 현상이 스톡홀름 증후군이다. 이호태와 윤진숙의 관계를 변형된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표현한 건 전통적인 스톡홀름 증후군의 관계를 바꾸어놓기 때문이다.

이호태와 윤진숙의 관계만으로 보면 윤진숙은 약자다. 뺑소니에 후진까지 함으로 확인 사살하고, 이도 모자라 무면허 운전자라는 가중처벌까지 받을 위기에 직면한 현행범이다. 반면에 이호태는 윤진숙을 체포해야 할 강자다. 수사를 함에 있어 프로파일러로 범인 검거에 일조하는 수사 요원이다. 윤진숙이 첫사랑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홑태가 윤진숙 체포를 머뭇거린다는 건 스톡홀름 증후군과는 거꾸로 강자가 약자에게 감정이입을 한 탓이다.

이호태가 용의자 윤진숙에게 감정이입하면서부터 영화는 약자인 범인이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프로파일러가 첫사랑 용의자를 검거하는 걸 거리끼게 만든다. 한 술 더 떠 이호태는 윤진숙이 검거되지 않게끔 적극적으로 도와주기까지 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호태가 윤진숙에게 베푸는 호의가 어떤 심리에서 출발하는가에 대해서는 무성의한 태도를 보인다. 단지 그녀, 윤진숙이 이호태의 첫사랑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범인을 은닉하고 수사망이 좁혀질 때 그녀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무한으로 퍼주기 바쁠 뿐이다.

그렇다고 영화는 이호태의 첫사랑이 가슴 아린 아련함이라든가 혹은 휘황찬란함에 눈이 먼 아름다움을 복기하지도 못한다. 이호태의 추억은 안드로메다 저편으로 귀양 보낸 채 단지 첫사랑이었다는, 키스 한 번 했다는 추억 하나만으로 변형된 스톡홀름 증후군을 양산하기에 이른다.

첫사랑이라는 ‘결과’는 두 사람에게 있지만 어떤 아름다움이 간직된 첫사랑인가에 관해서는 영화 속 시나리오가 너무나도 모르쇠로 일관하기에 첫사랑의 ‘과정’은 생략되고 만다. 이로 인해 이호태의 윤진숙 살리기 프로젝트는 우왕좌왕 설레발로밖에 다가오지 않는다. 뮤지컬 <고스트>로 한창 주가를 올리는 주원에게 <캐치미>는 뼈아픈 추억으로 간직될 영화가 될 공산이 커 보인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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