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안전한가' 편의 중징계를 결정하고도 회의록이나 녹취록을 남기지 않아 '밀실담합'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명진) 회의에 대해 적법성과 효력을 검증하려던 내부 시도가 무산됐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명진)는 지난 16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 19층 대회의실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MBC < PD수첩>에 '시청자 사과' 결정을 내렸다. ⓒ송선영
방통심의위는 지난 16일 < PD수첩>이 공정성·객관성·오보정정 등의 조항을 어겼다며 최종 제재조치로 '시청자 사과'를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엄주웅·이윤덕·백미숙 위원이 퇴장한 상태에서 나머지 6인 위원이 비공개 간담회에서 중징계를 결정했고, 논의 과정도 외부에 공개하지 않으면서 언론계 안팎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따라서 당시 회의장에서 "방통심의위 회의가 충분한 논의 과정도 없이 표 대결로 진행되고 있다"며 퇴장했던 야당 추천 위원 3명은 심의 결정의 적법성과 효력 여부를 외부 기관에 질의할 것을 요청하며 이를 30일 안건으로 상정했다.

야당 추천 3인 위원 "파행적 회의 진행…적법한 지 외부 기관에 묻자"

▲ 엄주웅 위원
엄주웅 방통심의위원은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할 시 엄격하게 사유가 제한돼야 하는데 회의록도 작성하지 아니한 채 장시간 회의가 운영됐기 때문에 파행적으로 운영됐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며 회의 공개· 회의록 작성 등에 관한 내용이 담긴 '방통위 설치법 제22조 2항'과 '방통심의위 회의 공개 등에 관한 규칙 제3조와 제6조'를 들어 "지난 16일 < PD수첩> 중징계를 결정한 회의와 심의 결정의 적법성과 효력에 관해 외부 기관에 질의를 요청하자"는 안건을 이윤덕·백미숙 위원과 함께 올렸다.

하지만 30일 오후 3시부터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제13차 방통심의위 전체회의에서는 < PD수첩> 중징계 결정 회의의 적법성·효력을 외부 기관에 질의하자는 안건을 논의하기도 전에 '안건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친정부 성향 3인 위원의 반발에 부딪혔다.

친정부 성향 위원, '의안 성립' 여부에 부정적…야당 추천 3인과 팽팽한 대립각

▲ 박명진 위원장
정종섭·김규칠·손태규 방통심의위원이 참석하지 않은 이날 회의에서 박명진 방통심의위원장이 "이것이 과연 의안으로 성립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하자는게 내 의견"이라며 "오늘(30일) 이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위원 가운데 법률 전공하는 분들이 있으니까 그분들이 오면 폭넓게 이야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특히 "우리가 의결한 내용에 대해 외부에서 소송을 한다든지 그런 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스스로 적법성 여부를 외부에 묻는다는 것은 굉장히 모순되는 것"이라며 "우리 스스로가 심의를 맡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공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스스로 능력 없다는 것 공포하는 것" VS "'밀실협의'이지 공식 회의 아냐"

▲ 이윤덕 위원
그러나 이윤덕 위원은 "지금 의안 성립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간담회가 과연 심의냐'하는 것"이라며 "16일 회의는 6인의 위원들이 비공개 간담회에서 조율된 내용을 단순 발표한 것이기 때문에 불법성이 있다. 이건 '밀실협의'이지 공식 회의가 아니다. 이점에 대해 명확하게 판단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반박했다.

엄주웅 위원도 "오늘 회의에 불참한 분들은 오늘 이 안건이 논의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이다. 그들의 의견이나 권리를 굳이 보호해야 하느냐"며 "우리 내부에 감독관이 있거나 감사원의 감사를 받는 행정청이면 이런 문제는 그 부분에 요청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완전히 독립적 합의제 위원회이므로 내부에 자정작용이 없으면 외부 기관에 질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엄 위원은 "앞으로 민감한 사안마다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하고 회의록도 남기지 않을 것이냐"면서 "회의 공개 절차에 대해서 분명하게 매듭짖자"고 강조했다. 백미숙 위원 역시 "회의가 비공개여도 회의록은 남겨야 된다"며 "회의 절차상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할 수 밖에 없다"고 동조했다.

박천일 위원 "회의 비공개로 한 것은 공정하고 정확한 결정을 위한 것"

하지만 이들 위원들의 주장에 대해 박명진 위원장을 비롯한 친정부 성향 3인 위원은 "16일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한 것은 공정하고 정확한 결정을 내리기 위함이고, 외부 기관에 질의를 요청하는 것은 방통심의위의 위상을 깎아내리는 것"이라며 팽팽히 맞섰다.

▲ 박천일 위원
박천일 위원은 "당일 회의에서 퇴장한 사람들은 그날 직무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며 "퇴장한 이들이 회의 과정의 적법성에 대해 외부에 질의하자는 의견을 낼 권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박 위원은 "통상적으로 회의를 비공개로 갈 때 '간담회로 하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일상적인 것"이라며 "16일 회의를 비공개로 한 것은 보다 더 공정하고 정확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였다"고 항변했다.

또 박 위원은 "당일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긴 했으나 어떤 심의 규정을 적용할지를 놓고 진지한 토론이 있었다"며 "그날 회의에서 나온 내용을 외부에 구체적으로 다 발표했는데 굳이 절차의 적법성에 대해서까지 논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정호 위원 "이미 의결된 사항 왜 외부에 질의하나"

▲ 박정호 위원
박정호 위원 역시 "회의 절차에 문제가 있으면 심의 결과에도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이미 의결된 사항에 대해 심의위원 스스로가 적법성을 외부에 질의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 선에서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엄주웅 위원은 "꼭 밖에서 누가 문제제기를 하고 고소해야만 하느냐. 우리는 헌법위에 군림하는 기관이냐"며 "우리가 퇴장했어도 남아있는 위원들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회의를 진행했어야 했다"고 맞섰다.

백미숙 위원 "절차상 심각한 문제…외부에 자문 구해야"

▲ 백미숙 위원
백미숙 위원 역시 "당일 회의는 비공개 회의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바로 간담회로 들어갔기 때문에 실상 '정회'되서 회의를 안한거나 마찬가지"라며 "절차상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에 대해 외부의 자문을 구한다면 위원회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위원들 간 팽팽한 주장이 엇갈리면서 '안건 성립 여부'에 대한 친정부 성향 위원들의 반발이 지속되자 엄 위원은 "< PD수첩> 제재조치 유효 여부는 묻지 않고 절차에 대해서만 묻겠다"며 한발짝 후퇴했다.

엄주웅 위원, '16일 회의와 심의 결정'에서 '일부 진행'으로 안건 축소

엄 위원은 "과거에 국회에서 안건이 날치기로 통과됐을 때 통과된 안건은 의결된 것으로 보지만 정당한 절차는 어긴 것이라는 헌재 판결이 있다. < PD수첩> 심의 결정의 적법성까지 의심될 수 있지만 일단 거기에 대해서까지 말하진 않겠다"며 "16일 회의의 일부 진행이 심의위의 회의 공개, 회의록 작성 등에 대한 조항에 적법하게 진행됐는지 여부만 유관기관 또는 복수의 법무법인에 질의해보자"고 안건을 수정했다.

하지만 이 안건은 찬성 3표(엄주웅·백미숙·이윤덕), 반대 3표(박명진·박정호·박천일)로 의결 정족수인 과반수를 충족하지 못하면서 끝내 부결됐다.

엄주웅 위원 "사유 명확하지 않을 땐 비공개 회의 참석 안해"…'회의 비공개' 논란 지속될 듯

< PD수첩> 심의 과정에서 불거진 방통심의위의 내부 자정 시도가 무산됨에 따라 앞으로 회의 비공개와 심의 적법성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의결 직후 엄주웅 위원은 "이렇게 사소하고 작은 성찰의 부분도 심의위가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대단히 안타깝고 이런 사례가 또 일어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며 "비공개 사유가 명확히 적시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앞으로 비공개 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것임을 미리 말씀드린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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