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진 쓰레기(정우 분)의 고백에서 시작된 달콤한 멜로도 잠시, 그들은 오랜 기간 나정을 많이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쓰레기가 나정에게 섣불리 다가갈 수 없었던 현실의 벽과 마주해야만 했다.

쓰레기와 나정의 속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나정을 사랑함에도 그녀를 힘겹게 밀어내야했던 지난날 쓰레기의 행동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 있겠다. 진짜 친남매도 아니고, 하물며 지난날 최루성 신파 멜로극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했던 이복남매도 아니고, 법적 도덕적으로 쓰레기와 나정이 만나지 말아야할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쓰레기와 나정의 부모님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피를 나눈 친형제보다 더 진한 신뢰 관계를 쌓아온 쓰레기의 부모와 나정의 부모에게 쓰레기와 나정은 친구 자식이 아닌, 친자식과 다를 바 없는 소중한 존재였다. 쓰레기를 진짜 친아들로 인식하는 집안 분위기에서 쓰레기와 나정의 연애는 '내 아들이 내 딸과 사귄다고?'라는 식의 믿지 못할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싶다. 그래서 쓰레기는 오랜 기간 망설였고, 용기 내어 오빠가 아닌 남자로 나정과 진지한 만남을 시작한 이후에도 행여나 나정과의 달라진 관계를 동일과 일화에게 들킬까봐 노심초사했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예나 지금이나 동일과 일화의 레이더망에는 여전히 쓰레기가 포착되지 않는다. 딸의 남자친구와 마주보며 서있음에도 우리 딸은 성격 때문에 남자가 붙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 짓는 동일. 엄마로서 나정이 좋은 남자를 만나길 진심으로 기원하는 일화에겐 나정이 남편감으로 칠봉이(유연석 분), 하다못해 빙그레(바로 분)의 의대 친구들의 명단이 우르르 열거되는 와중에도 쓰레기는 그저 '아들'일 뿐이다.

자신을 '친아들'처럼 막역하게 대하는 동일과 일화의 입장을 누구보다 이해하는 쓰레기다. 하지만 실없이 지나가는 농담이라도, 단 한 번도 자신을 사윗감으로 거론조차 하지 않는 동일과 일화의 무심함에 쓰레기는 애써 쓴웃음으로 속상함을 꾹꾹 눌러 담는다.

결국 쓰레기는 보다 떳떳하고 당당하게 나정이를 만나기 위해, 동일과 일화에게 나정이와의 교제 사실을 알린다. 생각지도 못한 뉴스를 들은 동일과 일화의 반응은 냉담 그 자체였다. 부모로서는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는 교제였다. 그동안 '아들'로 익숙한 그였지만 예나 지금이나 일등 신랑감 0순위인 의사에, 자상함까지 갖춘 쓰레기 아니던가. 게다가 누구보다 나정을 잘 알고 그녀의 모든 것을 이해해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남자라는 점에서, 쓰레기만한 신랑감 혹은 사윗감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동일-일화 부부가 지나가는 말이라도 쓰레기를 '사윗감'으로 언급하지 않았던 것은 단순한 외적 조건 결핍에서 비롯된 망설임이나 싫음 때문이 아니었다. 쓰레기와 나정이 동일과 일화처럼 행복한 부부로 결말이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연애 그 이상을 꿈꾸는 남녀 관계에서 항상 장밋빛 미래만 생각할 수는 없는 법이다.

쓰레기 오빠가 너무 좋아서 그와 함께 있는 달콤한 장면만 생각했던 나정과 달리, 동일과 일화, 그리고 쓰레기의 머릿속에는 혹시나 쓰레기와 나정 이 연인 앞에 놓일 수도 있는 가혹한 운명의 장난까지 생각하게 된다. 만약 쓰레기가 나정의 남자친구로 알게 된 사이라면, 두 사람이 가슴 아픈 이별을 한다고 해도 그렇게 인연을 끝낼 수 있다. 그러나 쓰레기와 나정은 사랑하는 연인을 넘어, 부모님 간에 친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라는 끈끈한 줄로 맺어진 복잡한 관계다. 동일과 일화, 그리고 쓰레기가 염려하는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레기는 어렵게 용기 내어 동일과 일화에게 나정이와의 교제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보다 떳떳하고 당당하게 더 이상 오빠, 동생이 아닌 공식적인 연인 관계로서 새로운 인연을 시작하게 된다.

허나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으로 다가가기 위해 오랫동안 뜸들여왔던 쓰레기와 나정은,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이 허비된다 하더라도 차마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는 시련과 마주하게 될 것 같다. 지금도 충분히 바쁘지만 조만간 인턴이 되면 더더욱 바빠질지 모른다는 쓰레기는 잠시 나정의 곁을 비워야하는 운명의 장난과 맞서 싸워야 한다.

힘들게 서로의 마음의 문을 열게 된 쓰레기와 나정은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사랑은 두 사람의 마음만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사랑만으로 이겨내기 어려운 장벽에 부딪쳐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산산조각 날 때도 있고, 그 과정에서 비롯된 오해, 질투, 미움 등의 감정들로 인해 이별을 고하는 일도 다반사다. 그렇게 남녀관계는 어렵다.

하지만 어렵게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풍파를 이겨냈듯이, 쓰레기와 나정은 자신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사랑의 장애물을 잘 극복할 것이다. 때로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잠시 멈춰 서서 숨 고르는 지혜도 필요한 법이다.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서로를 사랑한다는 확신과 믿음이 존재하는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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