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 14화에서는 많은 내용들이 다뤄졌다.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한 쓰레기와 나정의 알콩달콩한 이야기, 그런 나정이를 바라보며 쓸쓸히 눈물지으며 일본으로 떠나야 하는 칠봉이, 군 생활에 적응 중인 해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수술을 마친 상황에서도 의대생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로 인해 복학을 결심하게 되는 빙그레에 다음 회의 내용이 될 윤진이의 서태지바라기까지. 적어놓고 보니 서너 줄이나 되는 장황한 내용들이 다뤄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14화는 지금까지 방영된 <응답하라 1994> 중 가장 지루하고 장황했던 느낌이다. 심지어 중간에 딴 채널에서는 뭘 할까 확인하게 될 만큼.

아마도 <응답하라 1994>의 활기찬 동력이 없어진 가장 큰 이유는, 쓰레기-나정-칠봉이 사이의 팽팽하던 줄다리기의 긴장감이 쓰레기의 고백으로 느슨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칠봉이는 나정이에게 만약 자신이 다시 돌아왔을 때 네 옆에 아무도 없다면 사귀자 할 만큼 나정바라기이지만, 그 말은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나정-쓰레기 커플이 조만간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쓰레기 이종 사촌의 말만큼 복선을 위한 복선처럼 느껴진다. 속된 말로 사람 일이란 게 어찌될지 모르니, 지금 나정이랑 쓰레기가 사귀게 된들 앞으로의 일은 장담 못한다는 평범한 속설에 기대어 진행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쓰레기 나정 커플을 질시하는 운명의 여신이 호시탐탐 지켜보는 느낌?

하지만 <응답하라 1994>는 14화까지 너무나 많은 부분을 나정이 남편은 누구인가에 의존해 진행됐다. 마지막 회에 가서야 나정이의 남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정이와 쓰레기가 막상 사귀게 되니 맥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심지어 여전히 나정이바라기인 칠봉이 쿨하지 못해 보이기까지 한다. <응답하라 1997>에서는 형제가 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극적 장치라도 있었지, 별다른 사건 없이 삼각관계만으로 14회를 끌고 온 레이스도 길다 싶었는데 이제 다시 새로운 레이스를 시작해야 하는 느낌은 버겁기까지 한다. 1회 연장까지 얹어 21회로 종료되는 나정이 남편 찾기 게임이 길고 지루하단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14화 해태의 군생활 이야기는 양념을 넘어, <푸른 거탑>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만큼 장황했다. 더욱 맨날 후임 괴롭히는 재미로 시간을 때우던 선임이 알고 보니 능력자였다는 이야기는 상투적이어도 너~무 상투적이었다. 물론 마지막에 병장의 가방을 채운 신문지라는 '깨는' 요소가 있었음에도 군대에서 계급은 날로 먹는 게 아니라는 정설은, 마치 공부를 열심히 한 아이가 대학에 잘 간다는 논리처럼 원론적이어도 지나치게 원론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이 원론은 정작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에겐 그다지 공감을 얻지 못할 확률이 크다. 일 못하는 병장이 어디 한둘인가 말이다. 그리고 그 일 못하는 병장을 커버하느라 고생하는 상병의 고생담이 군대 이야기의 주류라는 점에서 이는 속설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해태의 이야기는 빙그레의 복학 결심과 함께 <응답하라 1994>를 뻔한 스토리로 만든다. 심장 수술을 앞둔 아버지가 환자복을 입은 채 은행에 가서 송금했다는 빙그레의 등록금. 말이 통하지 않는다던 아버지였지만 채 마취가 깨어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의대생인 아들의 공부 걱정을 하는 아버지로 인해 빙그레는 오랜 아르바이트 생활을 접게 됐다. 하지만 빙그레의 결심은 그것을 설명하는 장황한 내레이션에도 불구하고 허무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그간 아르바이트를 전전해 왔던 빙그레라는 인물의 속내가 전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느꼈을 빙그레의 갈등과 막막함이 그간 조금이라도 비춰졌었다면, 이제 와 복학을 결심하는 빙그레의 결정에 좀 더 공감이 갔을 것이다. 하지만 빙그레의 방황은 그저 방황이요 이제 방황을 할 만큼 했으니 복학한다는 설정처럼 보이는 14회의 결론은 어쩐지 허무하다.

<응답하라 1994>는 전작에 비해 행간의 여백이 느껴진다. 나정이를 비롯한 대학 새내기들의 대학생활 초반만 해도 1994년이란 동시대성을 느끼게 만드는 장치에 기반한 젊음의 생기가 느껴졌다면, 중반에 들어선 드라마는 몇몇 당대의 소재를 채용하는 것 외에 대학 1년생, 2년생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현장성을 상실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사랑 이야기에 의존하게 되고, 이제는 진부하다 느껴지는 상투적인 감동 스토리를 채용하게 된다. 나정이 남편 찾기 낚싯밥이 아닌, 1990년대 중반의 시대를 고스란히 담아낸 쫀득한 이야기로 남은 회차를 채워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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