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서 이뤄진 두 전설의 만남
결코 예전에 비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묵직한 무게감을 가진 두 배우를 가진 <이스케이프 플랜>은 이들의 만남을 매우 협소하고 한정적인 공간에서 주선했습니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탈출에 관한 한 최고의 실력을 가진 전문가로,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고도의 시설을 갖춘 감옥의 거물급 죄수로 출연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스케이프 플랜>에서 두 배우의 비중은 실베스터 스탤론이 조금 앞서고 있습니다. 배경부터가 감옥인 영화에서 탈출을 해야 하는 게 주요 임무인 상황이라서 실베스터 스탤론이 연기한 레이 브레슬린이 더 돋보이는 건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불러놓고 허수아비 행세를 시킬 수 없는 노릇, 따라서 <이스케이프 플랜>은 그에게 별도의 임무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스케이프 플랜>은 도입부부터 실베스터 스탤론의 활약이 펼쳐집니다. 모름지기 어떤 이유에서든 탈출을 목표로 삼은 캐릭터의 영화라면 치밀한 전략은 필수입니다. 폐쇄적이고도 감금된 공간에서의 압박과 감시를 뚫고 외부로 나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하는 건 바로 그것입니다. 아마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던 <프리즌 브레이크>만이라도 보셨다면 금세 동의하실 것 같습니다. <이스케이프 플랜> 또한 동일한 전략을 당연스레 구사하고 있습니다. 레이 브레슬린은 의도적으로 독방에 갇히려고 하면서 교도소 내부를 빠르게 탐색하고, 그걸 삽시간에 분석하여 허점을 찾아서 어렵지 않게 탈출에 성공합니다. 이것을 발판으로 <이스케이프 플랜>은 탈출에 필요한 3요소가 무엇인지도 주지시키고 있습니다.
배우> 이야기+연출
영화의 도입부는 본론에 앞서 분위기를 달구는 역할이라서 이해의 여지는 다분히 있습니다. 곧 어딘지 모를 교도소에 갇혀서 고군분투하게 될 레이의 캐릭터를 미리 구축하는 것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관객의 몰입과 흥미를 높일 수 있는 전초전의 역할이니까요. 그러나 <이스케이프 플랜>은 본론으로 들어가서도 여전히 산만하고 우왕좌왕입니다. 교도소의 정체가 밝혀진 데 이어 계속해서 레이가 탈출의 3요소를 들먹이고 있으나, 이야기와 그보다 더 부실한 연출은 전혀 긴장을 불러오지 못하고 있으니 영화에 집중할 가능성은 급격히 떨어지고 맙니다. 각각 제임스 카비젤과 비니 존스가 교도소장과 간수를 악랄하게 연기하면서 선전하지만 이마저 뚜렷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케이프 플랜>에서 참으로 의아한 것은 다름 아닌 감독인 미카엘 하프스트롬의 연출입니다. 할리우드로 건너와서 작업한 전작인 <디레일드>에서부터 <더 라이티: 악마는 있다>를 보건대, 그는 분명 스릴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는 나름 일가견이 있는 감독입니다. 특히 <1408>은 그 방면에서 근래 최고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반면에 <이스케이프 플랜>은 엉성한 이야기를 떠나서 같은 감독의 작품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연출이 헐겁습니다. "교도소가 육체는 가둘 수 있어도 영혼은 그렇지 않다" 따위의 진부하지만 가볍지 않은 대사조차 무의미하게 들리는 이유가 그래서입니다. 저로서는 미카엘 하프스트롬이 실베스터 스탤론과 아놀드 슈왈제네거라는 이름에 갇히고 만 결과를 보는 것 같습니다.
★★☆
덧) 위의 결론은 두 배우를 위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듯이 액션을 펼치는 결말부에서 거의 확신을 얻었습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었던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배려한 것인지 마치 코만도처럼 기관총을 들고 쏘게 합니다. 추억을 떠올리게 해서 그 자체는 괜찮았으나, "이런 걸 위해서 그랬던 거구나"라는 데 생각이 미쳐서 마냥 좋진 않았습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