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회사에서 일하는 레이 브레슬린은 이른바 탈출 전문가입니다. 그가 하는 일은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교도소마다 죄수인 척 가장하여 들어가서 허점을 찾고는 탈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토대로 이를테면 카운셀링을 하는 것이 레이의 전문분야입니다.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CIA 관계자는 레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극비리에 한 감옥에 잠입하여 동일한 테스트를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레이는 동료들에게마저 비밀로 부쳐야 한다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이내 이를 수용하는데, 계획했던 것과는 달리 일이 꼬이기 시작하다가 급기야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갑니다. 이제 레이는 살기 위해 자신을 도와주는 포트마이어와 함께 절대적으로 탈출이 불가능한 감옥을 빠져나와야만 합니다.

교도소에서 이뤄진 두 전설의 만남

대개 <이스케이프 플랜>에 관심을 가지는 공통적인 이유는 하나일 것입니다. 바로 왕년의 액션스타이자 라이벌인 실베스터 스탤론과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함께 출연했다는 것입니다. 1990년대까지 액션영화를 양분했던 두 배우는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함께 연기하자는 얘기가 오갔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이 성사되지 못한 것은 워낙 잘 나갔던 시기라서 도저히 스케줄을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조금 여유가 있었을 때는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재임하고 있어서 불가능했습니다. 다행히 실베스터 스탤론을 주축으로 액션스타가 총집합했던 <익스펜더블>이 있었으나 카메오에 불과해서 올드 팬이라면 아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케이프 플랜>은 그 한을 풀어줄 영화였습니다.

결코 예전에 비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묵직한 무게감을 가진 두 배우를 가진 <이스케이프 플랜>은 이들의 만남을 매우 협소하고 한정적인 공간에서 주선했습니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탈출에 관한 한 최고의 실력을 가진 전문가로,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고도의 시설을 갖춘 감옥의 거물급 죄수로 출연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스케이프 플랜>에서 두 배우의 비중은 실베스터 스탤론이 조금 앞서고 있습니다. 배경부터가 감옥인 영화에서 탈출을 해야 하는 게 주요 임무인 상황이라서 실베스터 스탤론이 연기한 레이 브레슬린이 더 돋보이는 건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불러놓고 허수아비 행세를 시킬 수 없는 노릇, 따라서 <이스케이프 플랜>은 그에게 별도의 임무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스케이프 플랜>은 도입부부터 실베스터 스탤론의 활약이 펼쳐집니다. 모름지기 어떤 이유에서든 탈출을 목표로 삼은 캐릭터의 영화라면 치밀한 전략은 필수입니다. 폐쇄적이고도 감금된 공간에서의 압박과 감시를 뚫고 외부로 나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하는 건 바로 그것입니다. 아마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던 <프리즌 브레이크>만이라도 보셨다면 금세 동의하실 것 같습니다. <이스케이프 플랜> 또한 동일한 전략을 당연스레 구사하고 있습니다. 레이 브레슬린은 의도적으로 독방에 갇히려고 하면서 교도소 내부를 빠르게 탐색하고, 그걸 삽시간에 분석하여 허점을 찾아서 어렵지 않게 탈출에 성공합니다. 이것을 발판으로 <이스케이프 플랜>은 탈출에 필요한 3요소가 무엇인지도 주지시키고 있습니다.

배우> 이야기+연출

안타깝지만 <이스케이프 플랜>은 탈출에 필요한 3요소까지 그럴 듯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에 비해서 상당히 허술합니다. 이 불안은 일찌감치 도입부에서부터 감지됐던 것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이스케이프 플랜>의 이야기에서 일단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십중팔구 "철통같은 보안을 자랑하는 교도소에서 용의주도하게 탈출한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에피소드는 부차적으로 더해지는 것입니다. 설상 심오한 주제가 있을지언정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으려면 이것에 공을 들이고 시간을 할애했어야 하는데, <이스케이프 플랜>은 배우에게 집중한 나머지 영화에서 정작 주가 됐어야 할 것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방금 말했다시피 레이 브레슬린의 특기를 나열하는 데 그치고 있는 도입부가 좋은 예일 것입니다.

영화의 도입부는 본론에 앞서 분위기를 달구는 역할이라서 이해의 여지는 다분히 있습니다. 곧 어딘지 모를 교도소에 갇혀서 고군분투하게 될 레이의 캐릭터를 미리 구축하는 것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관객의 몰입과 흥미를 높일 수 있는 전초전의 역할이니까요. 그러나 <이스케이프 플랜>은 본론으로 들어가서도 여전히 산만하고 우왕좌왕입니다. 교도소의 정체가 밝혀진 데 이어 계속해서 레이가 탈출의 3요소를 들먹이고 있으나, 이야기와 그보다 더 부실한 연출은 전혀 긴장을 불러오지 못하고 있으니 영화에 집중할 가능성은 급격히 떨어지고 맙니다. 각각 제임스 카비젤과 비니 존스가 교도소장과 간수를 악랄하게 연기하면서 선전하지만 이마저 뚜렷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케이프 플랜>에서 참으로 의아한 것은 다름 아닌 감독인 미카엘 하프스트롬의 연출입니다. 할리우드로 건너와서 작업한 전작인 <디레일드>에서부터 <더 라이티: 악마는 있다>를 보건대, 그는 분명 스릴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는 나름 일가견이 있는 감독입니다. 특히 <1408>은 그 방면에서 근래 최고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반면에 <이스케이프 플랜>은 엉성한 이야기를 떠나서 같은 감독의 작품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연출이 헐겁습니다. "교도소가 육체는 가둘 수 있어도 영혼은 그렇지 않다" 따위의 진부하지만 가볍지 않은 대사조차 무의미하게 들리는 이유가 그래서입니다. 저로서는 미카엘 하프스트롬이 실베스터 스탤론과 아놀드 슈왈제네거라는 이름에 갇히고 만 결과를 보는 것 같습니다.

★★☆

덧) 위의 결론은 두 배우를 위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듯이 액션을 펼치는 결말부에서 거의 확신을 얻었습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었던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배려한 것인지 마치 코만도처럼 기관총을 들고 쏘게 합니다. 추억을 떠올리게 해서 그 자체는 괜찮았으나, "이런 걸 위해서 그랬던 거구나"라는 데 생각이 미쳐서 마냥 좋진 않았습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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