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은 내게 동의도 구하지 않고 게임을 시작했다. 내게서 가장 긴 답을 얻는 사람이 승이다. 질문은 단 한번. 정현이 먼저였다.
“마음에 있는 여자한테 처음 고백하실 때 뭐라고 하셨어요?”
“너 단편 하나 쓰자.”
“대상이 너무 포괄적이잖아요. 보통 때는 뭐라고 청탁하시는데요?”
“단편 원고 하나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 김려령, 《너를 봤어》, 147~148쪽

▲ 김려령의 장편소설 '너를 봤어 '
김려령 작가의 《너를 봤어》라는 소설의 한 대목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정수현은 중견 소설가이자 유수한 출판사의 편집자로, (필자가 애정하는) 중년의 미남자다.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부인을 잃은 뒤로 그는 겉으로는 평온하게 살아가지만, 때때로 아내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죄책감과 끔찍했던 유년시절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후배 작가 서영재. 영재에게 첫눈에 반한 수현은 본인이 만드는 문학계간지에 실을 단편소설을 영재에게 청탁하고, 영재와 다른 후배 작가 도하에게 협업 소설을 제안하면서 계속 그녀와 인연을 이어간다.

이 소설은 작가가 ‘19금’을 내걸 만큼, 내숭 떨지 않는, 진지한 어른들의 사랑을 보여준다. 영재는 수현에게 키스해달라는 뜻으로 “혀.” 하고 말하곤 한다. 서로의 애정을 재거나 주도권을 먼저 쥐려고 아옹다옹하지 않는, 언제든 서로의 몸을 탐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관계. 수현은 마흔여섯 살이 되어서야 진짜 사랑을 알 것 같다.

“(...) 첫사랑 기억해요?”
“응.”
“몇살 때예요?”
“마흔여섯.”
“나라고 하면 죽일 수도 있어요.”
“너야.”
- 김려령, 《너를 봤어》, 119쪽

동시에 그는 그녀의 곁을 떠날 준비를 한다. 그녀를 사랑할수록 자신의 내부에서 자꾸 고개를 드는 나쁜 운명에 대한 예감 때문에, 끈질긴 악연의 가족 때문에. 그렇게 수현은 점점 자신을 파괴하는 중이다. 사랑과 폭력. 이 두 가지 주제가 마치 찬물에 탄 커피 믹스처럼 부글부글 거품을 내며 섞여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혀처럼 끈적끈적하고 부드럽고 탐스러운 동시에, 혀가 내뱉는 말처럼 잔인하다.

《너를 봤어》를 읽게 된 계기는 당연히 좋아하는 소설인 《완득이》의 작가 김려령의 작품인 데다가 앞서 말한 것처럼 주요 등장인물이 출판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문단 쪽. 비소설을 주로 만드는 나와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인물과 세계와 이야기였다. 수현과 영재와의 사이가 깊어졌을 때, 문단 선후배 작가들이 모여 떠드는 와중에 수현은 이 서평의 맨 앞 인용문에 등장하는 짓궂은 질문을 받는다. 우리의 주인공은 망설이지 않고 영재만 알아들을 수 있게 저렇게 대답했다. 멋진 작업 멘트라고 생각한다. 수현은 선배 작가로서 영재에게 작업 걸지 않았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대뜸 “너 단편 하나 쓰자”고 연락했다. 동종업계 사람으로서 나는 이 말을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로 받아들였다. 무척 두근거렸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부잣집 도련님이 하는 사랑 고백보다 더 일상 밀착형(?)이고 낭만적이었다.

가끔 생각한다. 출판 편집자는 책보다 오히려 사람을 좋아해야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저자, 역자 그리고 책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 모든 사람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은근히 싸우고, 적당히 맞춰주고, 모른 척 우기기도 하고 해야 만들 수 있는 게 바로 책이라고. 사람을 싫어해서는 오히려 나중에 오히려 편집자가 힘들어진다고.

특히 저자. 처음 저자를 만났을 때, 첫인상이 나쁠 수도 있다. 편집자도 사람이니까.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사람한테 정 붙이지 않으면 정말 일하기 힘들었다. 싫어하는 사람이 써놓은 글을 매만지는 일은 말 그대로 고역이니까. (물론 부정적인 에너지를 일하는 데 활력으로 작용하는 편집자도 있을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다.) 조판 디자이너한테 갓 출력한 뜨끈뜨끈한 교정지 받아서 빨간 펜 들고 코 박고 교정만 볼 때도 편집자는 저자와 계속 얘기한다. 저자가 주로 펼쳐놓은 생각들을 좇으면서, 이 사람은 이 단어를 자주 쓰네, 자꾸 이 맞춤법을 틀리네, 문장을 이렇게 끝내는 걸 좋아하네,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네,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빨간 펜을 들어 말을 건다. 이 문장은 틀렸으니 이렇게 고치겠습니다, 이 단어는 계속 나오니까 다른 말로 바꾸겠습니다, 여기 마무리가 부족한데 더 채워주세요, 이 문장은 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등등. 이렇게 교정지를 두세 번 갈아치우다 보면 저자와 아주 오랫동안 대화한 기분이다. 싫어하는 사람과는 그렇게 며칠을 이야기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있는 낭만, 없는 낭만 다 끌어모아서 표현하자면, 편집자는 저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수현은 영재에게 마음이 기울었을 때, 함께 일하자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 이는 무척 당연해 보였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서 아주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 하니까. 편집자인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작가라면, 기회가 닿는 대로 함께 작업하고 싶을 테니까.

“누가 교열 봐요?”
“내가 할까?”
“선배님 아직도 교열 보세요?”
“하라면 해야지. 작품 주신 분인데.”
“그럼 선배님이 해주세요.”
- 김려령, 《너를 봤어》, 40쪽

오가진

책 만드는 사람. 넓고 얕은 취향의 소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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