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의 모습 (연합뉴스)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대선 1년 만에 탈당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MB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김종인 전 위원장은 "작년에 선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원이 됐는데 내가 (새누리당) 당원이고 아니고가 의미도 없는데 뭐…"라며 탈당 의사를 내비췄다. 그는 “탈당 부인은 안하네요”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대해 "네"라고 답해 탈당 의사가 확고함을 밝혔다.

김종인 전 위원장과 새누리당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김종인 전 위원장은 원래부터 당적을 별로 가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박근혜 후보 캠프 선대위원장을 하려면 당적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어쩔 수 없이 입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관계자는 “같은 비대위원이었던 이상돈 위원만 해도 그보다 먼저 입당했다. ‘선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원이 됐는데’란 말은 사실로 탈당이 자연스러울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종인 전 위원장이 당적을 마뜩치 않아 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이제 새누리당 내에서 김종인 전 위원장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내가 당원이고 아니고가 의미도 없는데”라는 그의 발언이 보여주는 바도 그것이다. 헌법 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의 주창자라고 알려진,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의 상징이었던 그가 새누리당에서 역할을 찾지 못하는 현실은 놀랍지도 않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정책의 후퇴가 그만큼 극적이라는 뜻일 것이다.

지난 2012년 총선 전 김종인 전 위원장이 이상돈·이준석 등과 함께 현 박근혜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은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에 합류했을 때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선 부정적인 여론이 높았다. “경제민주화를 말하면서 박근혜에게 가느냐”라든가 “총리를 하고 싶은 늙은이의 노욕이다”와 같은 반응들이 있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세간의 이러한 반응에 “박근혜 대통령만이 경제민주화를 할 수 있고, 해야겠다는 의지도 확고하다”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의 선택이 ‘노욕’에서 나왔다는 견해는 더 이상 설득력을 지니기 힘들 것이다. 그는 캠프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밝히다가 수난을 당했고 그럼에도 소신을 꺾지 않아 어떻게 보면 새정부 출범의 ‘1등공신’에 해당하는데도 중용되지 못했다. 비록 판단착오가 있었을지라도 그가 사심으로 박근혜 캠프에 합류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닐 것이다.

또 그가 “박근혜 대통령만이 경제민주화를 할 수 있고, 해야겠다는 의지도 확고하다”라고 말한 이유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그는 민주당 정권의 경제민주화는 수구세력의 크나큰 반발에 부딪힐 것이고 애초에 그리 급진적이지도 않은 민주당 정권이 다시 한 번 기업권력과 타협하는 것을 우려했을 것이다. 실제로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 재벌을 엄하게 통제했던 이들은 군부독재자인 박정희나 전두환이었지 ‘민주정부 10년’을 지휘했던 김대중이나 노무현은 아니었다. 오직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때 제대로 된 성과가 나고 한국 사회의 혁신이 가능했을 거라는 판단에는 기자조차도 동의하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김종인 전 위원장이 기대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는 없었다. 박 대통령은 단지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경제민주화 담론을 활용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그렇게 보기엔 박 대통령이 내세운 공약들의 질적 수준이 썩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추상적인 수준에서 경제민주화가 필요했다고 생각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누구의 협력을 구해야 하며 누구의 반발을 감수해야 하는지까지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수준의 고민이 없는 정치적 과제는 실행이 될 수가 없다.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를 위해선 야당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했고 경기회복이 우선이라는 경제관료와 재벌그룹들과의 ‘전쟁’을 각오했어야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NLL 대화록’ 따위를 끄집어내며 야당과 결사항전했고 “지금은 때가 아니니 기다려 달라”는 경제관료와 재벌그룹들의 변명을 너무 쉽게 수용했다. 새누리당 역시 이혜훈 최고위원 정도를 제외하면 대통령의 의중에 그대로 끌려 들어갔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 경험은 풍부하되 한 번도 정책적 과제를 고민해본 적이 없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참람한 풍경인지 모른다. 그렇기에 2012년 대선에서 나름의 시대정신을 읽어냈던 박근혜 캠프의 핵심 브레인은 당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박 대통령은 독일의 비스마르크처럼 보수주의자로서 사회 양극화 문제에 대한 처방을 내리는 큰 정치인이 될 기회를 스스로 놓쳤다.

만약 그랬다면 야권은 국정원 선거개입 논란과는 상관없이 해당 법안에 대해 적극 협조했을 것이고 지지율은 김영삼 정부 초기에 버금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50%를 상회하는 지지율에 만족할 뿐이고 ‘아버지’와의 추억이 깃든 청와대에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지금은 그 상태로 좋을지 모르나 5년 단임제 대통령이 임기 첫 해를 허송세월로 보낸 대가는 나머지 임기 동안에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김종인 탈당은 박 대통령이 ‘정말로 국가적 과제가 긴급했던 시기에 정말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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