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회의를 취재하다보면 현 정부가 ‘이 방송사를 손보려 하는 구나’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지난 4일 공교롭게도 TV조선 <뉴스쇼 판> 심의에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심의위가 ‘손석희 JTBC 뉴스를 불편해하는 구나’라고 확신했다. 최근 ‘JTBC 손석희 쇼크’는 미디어지 기자들의 주요한 관심거리 중 하나다. 청와대가 JTBC에 이른바 ‘손을 뻗치고 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JTBC 보도가 화제가 되고 있는 이때, 방통심의위에서는 코미디 같은 심의가 진행됐다. 여기서 그 전말을 공개하려 한다.

4일 방송통신심의위 방송심의소위(위원장 권혁부)에서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를 출연시켜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 김성환 노원구청장이 ‘종북’이라며 근거 없는 비난을 한 TV조선에 대해 ‘문제없음’ 의견으로 정했다.

이날 야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이걸 심의라고, 창피하지 않느냐”고 성토했고, 방청하던 기자들 사이에서도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한 주 만에 말을 정반대로 바꿀 수 있느냐”는 자조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이날 TV조선 <뉴스쇼 판> 정미홍의 박원순 시장 ‘종북’ 비난 심의는 한 주 전 정부여당추천 심의위원들이 ‘경고’(벌점2점)라는 중징계를 요청한 JTBC <뉴스9> 심의를 떠오르게 했다. 두 프로그램 모두 각 종편사의 간판 뉴스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일주일 간격의 두 심의에서는 방통심의위의 심각한 이중 잣대가 발견된다.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의 도 넘은 말 바꾸기 역시 볼 수 있다.

▲ TV조선 '뉴스쇼 판'에서 1월 21일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 출연시켜 일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심의가 진행됐지만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문제없음"을 주장했다

심의위 TV조선을 향하는 ‘굽은 잣대’…“언제는 포괄심의라면서요?”

지난 주 JTBC <뉴스9> 심의 때, 권혁부 소위원장은 심의 서두에 “뉴스의 몇 아이템이 심의규정 ‘공정성’ 그밖에도 다른 몇 가지 조항을 위반한 게 있다”고 말했다. 당초 JTBC <뉴스9>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9조(공정성) 위반으로 심의가 제기됐다. 하지만 권 소위원장은 민원인이 제기하지도 않은 문제들을 꼼꼼히 체크해 제14조(객관성) 등도 위반했고, <선거법>에도 저촉된다고 주장했다.

이날 권혁부 소위원장은 △손석희 앵커의 MC 자질문제, △여론조사 결과 소개과정에서의 미숙함, △박원순 시장 출연에 대한 선거법 저촉 등에 대해 새롭게 문제를 제기했다. 권 소위원장은 “손석희 앵커가 공정하지 않았다”, “MC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훈계를 하기도 했다.

JTBC 측은 권 소위원장이 지적이 당초 심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가 받은 문서(심의대상)에 없어서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다. 쉬는 시간이 있으면 검토하고 답변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이에 권혁부 소위원장은 “심의과정에서 새로운 위반을 지적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그동안 MBC <PD수첩>, KBS <추적60분>, CBS <김미화의 여러분> 등 정부가 불편해할 만한 프로그램에 대해 ‘포괄심의’라는 이유로 민원이 제기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제재해왔다.

하지만 권혁부 소위원장은 4일 TV조선 <뉴스쇼 판> 심의에서는 180도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TV조선 <뉴스쇼 판>은 <방송심의에 과한 규정> 제20조(명예훼손 금지) 위반으로 심의에 올라왔다. 장낙인 야당추천 심의위원은 명예훼손 뿐 아니라,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9조(공정성)와 제14조(객관성)를 추가로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방통심의위의 심의사례들을 살펴보면 해당 프로그램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하지만 권혁부 소위원장은 이날 회의 진행자로서 이날 TV조선의 ‘공정성’과 ‘객관성’ 위반은 심의대상이 아니라며 더 이상의 심의를 진행하지 않았다.

권혁부 소위원장은 “심의대상은 ‘명예훼손금지’ 위반 건이지 장낙인 위원이 제기한 공정성·객관성 부분은 없다”며 “(관련 조항 위반에 대해 심의를 하려면) 다시 TV조선 측에 의견진술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추천 심의위원들이 “언제는 ‘포괄심의’라면서요?”라고 반발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 11월 5일자 JTBC '뉴스9'에서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김재연, 김종철, 박원순 정당해산에 반대하는 인사만 인터뷰했다는 이유로 '경고' 의견을 냈다

“몇 년 근무했느냐?”와 “편성권 존중해야”의 차이

또 다른 여당추천 엄광석 심의위원은 JTBC 심의 당시 김종철 연세대 법학대학원 교수 출연에 대해 “설문결과 헌법학자 30명 중 통진당의 정당해산을 찬성한다는 의견이 6명 반대의견이 7명이었다”며 “그렇다면 양쪽 입장을 들어야 한다”고 ‘공정성’ 논리를 폈다. 그러면서 엄 심의위원은 JTBC와 관련해 “보도하는 사람이 잘못된 가치관과 기준, 생각을 가지고 있어 매우 놀랍고 우려스럽다. 엉터리 기준을 가지고 뉴스를 편집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이 과정에서 “(보도국에서) 몇 년 근무했느냐”며 인식공격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엄광석 심의위원은 하지만 TV조선 심의에서는 “편성권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말부터 꺼냈다. 엄광석 심의위원은 정미홍 전 아나운서가 잘못된 사실을 발언한 부분에 대해서도 “TV조선 측에서 정 전 아나운서의 발언을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두둔하기도 했다. 정 전 아나운서의 ‘종북’ 발언이야 말로 정확한 상대방이 있는 대립사안이었지만 이에 대한 지적은 일절 없었다.

박성희 심의위원 역시 TV조선에 대해 “정미홍 전 아나운서가 정보가 부족해 (잘못된 발언을 했던 것)”이라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는 개인의 정치적 의견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TV조선에서는 (잘못된 사실 발언에 대해)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바로잡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두둔했다. 박성희 심의위원은 개인이 선출직의 공무원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비판하는 것은 어느 정도 수긍해야한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하지만 박성희 심의위원은 지난 해 CBS <김미화의 여러분> 등에서 명진 스님이나 우석훈 교수 등 ‘개인’ 출연자가 ‘정보의 부족’이나 ‘실수’로 일부 사실을 틀리게 말한 것에 대해 앞장서 제재를 해왔던 당사자였다.

방통심의위, 앵커 공정성 판단기준은?

이날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TV조선 <뉴스쇼 판> 진행자인 최희준 앵커가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며 비호했다. 지난 주 JTBC <뉴스9>의 손석희 앵커 자질 문제를 거론했던 때와는 이 또한 180도 다른 태도였다.

엄광석 심의위원은 “최희준 앵커가 문제 발언들을 감싸고 넘어갔다면 문제지만 균형을 잡으려고 한 것은 인정한다”며 “적극적으로 반론은 제기하려고 했다. 큰 문제가 될 건 없다”고 두둔했다.

TV조선은 “인터뷰 도중 최 앵커가 선거로 선출된 사람들을 종북으로 몰 수 있느냐?”라고 물어본 것이 공정성을 유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희준 앵커가 ‘뜬금없다’, ‘난데없다’는 추임새를 넣은 것 역시 공정성의 일환이었다고 말했다.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3명(박원순·이재명·김성환)에게 전화 연결을 한다든지 출연을 요청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TV조선 측은 “그런 노력은 없었다”고 답했다. 또한 “세 분(박원순·이재명·김성환)의 의견을 다 반영하려면 방송이 길어진다”며 에둘러 대답을 회피하기도 했다.

방통심의위 방청석에서는 “이건 정말 생중계 하고 싶다”, “코미디 같아서 시청률도 잘 나올 것”이라는 발언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수준의 심의를 하고 있다. 방통심의위가 그것도 한 주 만에 TV조선과 JTBC에 대해 ‘이중 잣대’를 드러냈다. 최소한의 기준도, 원칙도 없는 심의를 왜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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