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ronicles of Riddick
빈 디젤이 결정적으로 주목받았던 계기도 <에이리언 2020>이었고, 덕분에 제작사였던 유니버설은 리딕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속편을 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04년에 <리딕: 헬리온 최후의 빛>이 나오기 전에는 게임과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하여 리딕의 위용을 과시했습니다. 심지어 '리딕 연대기(The Chronicles of Riddick)'라는 거창한 제목까지 달아줬습니다. 그러나 정작 속편으로 제작됐던 <리딕: 헬리온 최후의 빛>은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실패했습니다. 일전에 한번 얘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전편이 왜 인기를 얻었었는지를 철저하게 망각했던 것이 화를 자초했습니다. 할리우드답게 장르까지 현란한 SF 판타지로 변경하면서 갑작스레 잔뜩 스케일만 키우고는 정수를 외면했었죠.
그로부터 10년 가량이 흘러 돌아올 <리딕>의 예고편을 보고 기대했던 건, 데이빗 트워히가 이번에는 <리딕: 헬리온 최후의 빛>이 실패한 요인을 분석하고 반영했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예고편만 봐도 <리딕>은 <리딕: 헬리온 최후의 빛>의 영향은 거의 사라진 대신에 <에이리언 2020>을 절로 떠올리게 합니다. 본편은 뭐 말할 것도 없습니다. <리딕>의 도입부는 전편에 등장했던 네크로몬거 종족의 사령관인 바코와 리딕의 사연을 흘리면서 연계성을 슬그머니 드러냅니다. 이것은 리딕이 홀로 황폐화된 행성에 버려지게 된 원인이기도 합니다. 이윽고 데이빗 트워히는 리딕의 입을 빌려 자신의 의지를 천명합니다. "세상에 물들어있었던 내가 문제였다. 이젠 본래의 나로 돌아가겠다"
태초로 돌아간 리딕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리딕>은 <에이리언 2020>이 그랬듯이 처절한 생존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리딕은 언제나 냉혈한에 가까웠지만 이 또한 자신 외에는 그 누구의 안위에도 관심이 없는 인물로 돌아갔습니다. 그나마 그가 가지고 있던 인정은 죽어가는 현상수배범과 의도치 않게 애완용으로 기르게 된 개(?)로 인해 조금 보여지고 있습니다. 데이빗 트워히는 <에이리언 2020>으로 돌아가 중심에 서야 할 캐릭터를 탄탄히 정비하고 남은 이야기를 펼칩니다. 그 사이에는 2편에 살짝 발을 담근 것처럼 1편과도 연관이 있는 설정을 더하면서 시리즈의 혈통을 간신히 지키려고도 합니다. 다른 무엇에 기대기보다는 자신의 손으로 빚은 캐릭터와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 우선이란 걸 깨달은 걸까요?
이건 마치 헝그리 복서가 챔피언에 오르면서 부와 명예에 빠져 흥청망청 살다가 처절한 패배를 당하자 그제야 각성하는 것만 같습니다. 약 10년이 흘러 제작하긴 했으나 메이저 영화가 아닌 독립영화로라도 명맥을 유지하려 했고, 빈 디젤 또한 제작자로 나서 사비를 보탰을 정도니 두 사람 다 리딕에 대한 애착은 큰 것 같습니다. 덕분에 <리딕>은 기본에 충실하면서 복귀에 나름 성공했습니다. 다만 수차례 언급했듯이 <에이리언 2020>이 보여줬던 것을 재차 답습하고 있다는 인상만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자승자박을 피하려고 그런 것인지 밤이 아닌 낮을 주로 택하고는 있으나, 이것은 오히려 리딕이 가진 특성 중 하나를 죽이면서 스릴을 반감시키는 역효과를 불렀습니다. 계속해서 시리즈를 이어가려고 한다면 데이빗 트워히에게는 연출 이상으로 지금보다 더 참신한 이야기와 캐릭터의 변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