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대와 우려 속에 꽃보다 누나가 선을 보였다. 꽃보다 할배의 인기가 워낙 하늘을 찌를듯해서 그 후속이라고 할 수 있는 꽃보다 누나를 준비하는 제작진이나 출연하는 배우들 모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은 분명하다. 그런 한편 꽃보다 할배로 이미 경험이 축적돼 있으니 더 잘할 거라는 의욕과 기대 또한 적지 않았을 것도 사실일 것이다. 결과는 꽃보다 누나는 꽃할배보다 오히려 더 할 거라는 예감을 준다.

막강한 팬을 거느린 스타 이승기라고 아무 걱정 없이 이번 여행을 준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같은 소속사 이서진이 워낙 큰 이슈가 된지라 적잖은 노파심이 있었을 터. 그러나 제작진은 그런 이승기를 위해서 별다른 배려를 하지는 않았다. 1박2일을 통해서 충분히 익숙해진 나영석 PD나 이우정 작가는 그만큼 이승기에 대한 굳은 믿음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승기는 그런 믿음을 결코 배신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기대 이상의 활약(?)을 출발부터 보여주었다. 이승기의 시작은 짐꾼이 아닌 짐으로의 전락이었다. 짐꾼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세상을 충분히 알기에는 어린 스물일곱의 청년 이승기는 아직 짐꾼에 익숙지 않다. 터키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릴 때에도 아직 느긋하다. 그렇게 뒤쳐져서 오는 이승기에 대해서 누나들은 잊지 않고 뒷담화를 나눈다. 그도 그럴 것이 짐꾼이면 당연히 가장 먼저 와서 짐을 챙겼어야 하지만 이승기는 인천공항 도착도 그렇거니와 터키 공항에서 나올 때까지도 꼴찌였다.

이승기인들 지금까지 언제 다른 사람보다 서둘러 일정을 준비해봤겠는가. 겨우 비행기 한 번 탓을 뿐이기에 아직 짐꾼의 옷을 몸에 착 달라붙게 입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짐을 찾을 때에도 번번이 김희애나 이미연보다 반 박자 늦은 반응을 보여 온전한 짐꾼이 되기에는 멀어보였다. 그러나 그런 늦장 짐꾼 이승기의 모습은 애교나 다름없었다. 이른바 이승기 터키공항 실종사건이 곧바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터키 공항에 도착한 시각이 새벽 3시 30분. 이런저런 수속을 거쳐 공항 로비에서 자유롭게 숙소를 찾아갈 마음을 먹었을 때 역시도 4시 30분밖에 되지 않았다. 문제는 빠듯한 돈으로 손쉽게 택시를 부를 형편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승기는 저렴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낯선 터키공항을 동분서주하며 지하철이나 버스 이용방법을 찾아 헤매야 했다. 그러나 하필 새벽이라는 점이 함정이었다.

세계 어느 공항이나 다 있는 안내센터도 잘 보이지 않아 이승기는 아무나 붙잡고 ‘익스큐즈미’를 연발해야 했다. 그러나 이승기도, 터키인들도 영어에는 그다지 익숙지 않아 충분한 정보를 얻기는 어려웠다. 급기야 공항 터미널 바깥으로까지 나간 이승기는 직접 버스 기사에게도 물어보는 등 땀나게 노력했지만 역시나 너무 이른 시각이라는 점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한 번의 환승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현실의 벽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어린 이승기가 머나먼 타국 터키공항의 신새벽에서 진땀을 흘리는 동안에도 야속한 시간은 멈춰주질 않았고, 아무 연락 없이 장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누나들은 이미 폭발직전이다. 그렇게 이서진을 능가할 거라는 짐꾼으로 의기양양하게 인천공항을 떠났으나 첫 번째 관문부터 이미 짐꾼이 아니라 짐에 불과하다는 말이 나와 버리고 말았다. 마치 스스로 몰카를 찍는 것처럼 이승기는 터키 생고생을 겪어야만 했다.

사실 누구라도 똑같은 상황이라면 이승기보다 많이 잘 해내기는 힘들 것이다. 또한 만일 이승기가 아무 문제없이 공항을 떠나 숙소에 도착했다면 꽃보다 누나의 운명은 상당히 어두웠을 것이다. 예능이 아니라 다큐가 돼버렸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승기가 누군가. 바로 허당의 원조이다. 허당 본주 이승기가 짐꾼에서 짐으로 강등되는 터키공항에서의 공황상태가 꽃보다 누나의 예능을 다 만들어냈지 않은가.

게다가 이승기의 터키공항 실종사건으로 인해 베일에 싸여 있던 누나(?)들의 성격을 빨리 알아차릴 수도 있었다. 알려진 대로 윤여정은 깐깐한 이미지 그대로의 반응이었고, 왈가닥누나로 소개된 이미연은 그런 윤여정보다 더 뜨겁게 반응했다. 반면 그러거나 말거나 김자옥은 조용히 일기를 쓰며 무관심한 태도였다. 그런 극과 극의 반응 속에 김희애는 중간 정도의 위치에서 조용히 이승기를 구해주는 현명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여배우들의 성격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비록 이서진의 경우처럼 공항몰카는 없었지만 그런 장치 없이도 허당 이승기는 스스로 몰카 이상의 예능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이승기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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