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참 다정한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한다. 다정한 말을 꺼내면, 손발이 오그라 붙는다면서 비명을 지르거나, 닭살 돋는다고 뭐 잘못 먹었냐고 한다. 작은 일에 칭찬하면 겸연쩍어 어쩔 줄 몰라 하고, 믿음이나 진심에 대해 표현할라 치면 아주 어색해한다. 그게 싫으냐고 물으면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다정한 말, 칭찬의 말, 신뢰가 담긴 말을 들으면 좋기는 좋단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고, 자기보고 하라면 차마 못 하겠다 한다. 그보다는 가볍게 구박하고 면박주고 핀잔주고 태클을 거는 것이 편하다. 혹은 말하지 않아도 그런 건 알아서 이해하고 넘어가 주기를 바란다. 대신 자신이 듣는 사람일 땐, 닭살 돋아도 그런 다정한 말을 한번쯤은 듣고 싶다.

“엄만 날 이해 못해!”
“그래, 엄마가 네 마음을 다는 모를 수 있지. 지금 기분이 어떤지 말해보렴.”
“몰라, 몰라.”
“엄마도 내 기분을 모를 때가 있단다. 네 말을 다 들어주진 못해도 네 기분은 받아주고 싶어. 얼마나 속상한 때가 많은지는 아니까.”
(《하루 10분, 내 아이를 생각하다》 서천석, BBooks. 57쪽.)

2011년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이 고정 게스트로 참여하는 라디오 방송을 들은 것을 계기로, 나는 딱히 육아를 하는 부모도 아니면서 그의 육아조언에 귀를 기울여왔다. 그의 가장 큰 특징은 이 시대의 부모들에게 오글오글한 다정함을 선물해주려 한다는 것이다. 라디오 방송의 사연에서나 각종 육아담에서 드러나는 부모의 말투를 보면 충격적일 정도로 다정하지 않다. 고민하다 사연을 보내 조언을 구할 정도로 자녀를 아끼면서도 말이다. 주변의 학생들이나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마찬가지로 다정하게 말하는 부모는 극히 적었다. 신뢰가 담긴 말, 진심이 드러나는 말, 감정을 솔직하고 차분하게 전달하는 말들은 어른들끼리도 하지 않고, 아이들에게도 하지 않는다. 어른끼리 쉽게 할 수 있는 핀잔의 말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하고, 혹은 그보다 더한 면박이나 구박을 던지기도 한다. 아이들은 아이들이기 때문에 언제나 어떤 잘못을 하고 구박받을 구실이 있어, 부모는 조심하지 않으면 그걸 계기삼아 자기도 모르게 과하게 나무라기 쉽다. 그것이 나중에 미안하고, 실제로 아이들을 사랑하더라도, 미안함과 사랑함을 다정하게 시간들여 전달하는 데는 또 쑥스러워서 어색하다.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도 모르겠고, 하란다 해도 그 말이 입 밖에 나올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말로 전하지 않고 다른 것으로 잘해주며 어물쩍 넘어가면 아이는 나무람은 듣고 진심은 듣지 못한 상태로 넘어간다.

어른도 사실은 진심 담긴 말에 위로받고, 직접 들어야 안심할 수 있다. 하물며 아이는 더더욱 자주 반복해서 들어야 믿고 안심하고 기억할 수 있다. “엄마 말 안 들으려면 집에서 나가!” 라는 말을 한 후에, 며칠 후에라도 “엄마가 화나서 잘못 말한 거야, 미안해. 엄마는 너를 사랑하고, 네가 다 자랄 때까지 늘 같이 지낼 거야”라고 말해 줄까? 말하지 않는다 해도 아이가 저절로 그렇게 이해해 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정함은 그저 듣기 좋고 위로가 되라고 필요한 것만이 아니다. 내던지듯 뱉은 “네 생각쯤 빤히 알아!”란 말을 들은 아이는, 엄마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맨날 다 아는 것처럼 저런다며 오히려 엄마의 말을 틀렸다고 여긴다. 반면 “엄마가 네 마음을 다는 모를 수 있지. 엄마도 내 기분을 모를 때가 있단다.”라고 말하면 아이는 오히려 엄마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육아의 뜻은 ‘아이를 키운다’ 이지만, 서천석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부모가 변한다’, 특히 ‘부모가 변한다’에 방점을 찍는다. 아이를 대하는 더 나은 방식을 익히고 진심을 잘 전달하는 것으로 육아는 저절로 따라온다.

하루 10분, 자신을 바꾸기 위해 성찰하는 시간

《하루 10분, 내 아이를 생각하다》 는 그가 트윗을 하면서 올린 육아에 관한 조언들을 모아 낸 책이다. 육아에 바쁜 부모가 읽기 부담 없도록, 조막만한 글들이 널럴하게 담겨 있다. 저자는 자상한 말투로, 아이가 바뀔 것을 기대하지 말고 부모인 내가 바뀔 결심을 하라고 독려한다. 그는 부모의 불안과 실수와 여건을 잘 이해하고 보듬고 위로하며, 큰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잘 못해도, 그럴 수 있고 그러기 쉽다고 답한다. 다만 부모의 기존 반응이 아이에게 어떤 식으로 비치는지 알려주고, 아이의 눈에 다르게 비치고 싶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대표적인 것이 저 오글거리는 다정한 말을 연습해서 아이에게 해보라고 권하는 것이다. 당장 도저히 못하겠으면 대사를 외워 거울 앞에서 여러 번 읊어보라 한다.

타임아웃을 벌처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임아웃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원인이죠.
심호흡을 가르친 후 타임아웃 때 해보게 하세요.
“마음을 가라앉히자. 넌 더 멋지게 행동할 수 있어.”
시간이 주어지면 아이가 좋은 판단을 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루 10분, 내 아이를 생각하다》 서천석, BBooks. 166쪽.)

타임아웃은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감정적으로 흥분하거나 약속을 어겼을 때 조용한 곳에 격리해 생각하게 만드는 방법을 말한다. 이것을 많은 엄마들이 독방 감금 비슷하게 처벌로 사용한다. 저 다섯 줄 조언은 타임아웃의 원래 취지와 교육적 의미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엄마가 뭘 하면 좋을지를 간단하게 알려준다. 아이와 심호흡을 같이 해보며 심호흡법을 미리 가르쳐 두고, 아이가 잘못해서 타임아웃을 적용해야 할 때 “마음을 가라앉히자. 넌 더 멋지게 행동할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도록 엄마 자신이 연습하라고. “넌 더 멋지게 행동할 수 있어”라니, 드라마 《상속자들》도 아니고, 말하는 것도 내 귀로 듣는 것도 쑥스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자꾸 해보면 멋있다. “넌 더 멋지게 행동할 수 있어.” 빈 방으로 격리시키면서 “거기서 반성하고 있어!” 하고 외칠 때보다 더 좋은 엄마라는 생각도 들 것 같고, 아이 표정도 훨씬 괜찮을 것이다.

하나씩 하나씩 연습할 것들이 많다. “어디서 쪼그만 게 뭘 잘했다고 큰 소리야!” 대신 “네 생각을 말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지금은 일단 이걸 해야 해.”를, “왜 매일 하는 거 가지고 투정이야! 어서 이 안 닦아?” 대신 “그래? 그럼 닦지 마. 아직 이 닦기가 익숙하지 않아 힘들구나. 대신 내일 낮에 학교에서 오면 이 닦는 연습을 두 번 하자. 괜찮겠지?”를 아이에게 말할 수 있도록. 다정한 말은 쑥스럽지만 효과가 좋다. 뻔뻔하게 말하는 것보다 쑥스러워하면서도 용기내어 다정한 말을 하는 게 어쩌면 더 효과가 좋을 지도 모른다. 그것마저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다.

미션 없는 좋은 관계 만들기

얼마 전 내가 부모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여러 전문가의 육아책나 육아지침을 찾아 읽고 참고하였는데, 그것들도 아주 유용했다. 헌데 대개의 육아책엔 공통적으로, 아이를 어떤 상태가 되도록 키워야 한다는 미션이 있다. 사회성을 높인다거나, 자존감을 높인다거나, 절제력을 높인다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낮춘다거나. 그것을 위해 엄마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안내돼 있다. 원칙에 일관성을 가진다거나, 상벌을 과하지 않게 운용한다거나, 어떤 종류의 칭찬은 하지 말고 어떤 종류의 칭찬은 해야 한다거나. 하지만 이 때 엄마의 역할은 엄마 자신의 인간적 덕성과 성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이를 성장시키기 위한 자극으로서만 존재한다. 부모는 그러한 접근법을 써서, 아이를 성장시키거나 변화시켜야 미션이 달성되는 셈이다. 엄마가 그 책에서 시킨 대로 제대로 하지 못하면 아이가 잘못 성장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가 바로 그래서이다.

서천석의 책은 부모가 변하고 아이와 사이가 좋으면 그걸로 되었지 달리 달성할 미션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건 애초에 없다. 아이와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도, 그게 그 연령대에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라면 터널을 지나가듯 버티는 것이 곧 좋은 부모라고 말한다. 아이는 원래 쉽게 바뀌지 않으니, 2~3년간 꾸준히 말하거나 꾸준히 같은 태도를 취하면 된다고 말해준다. 실제 해 보면 당장 성과로 드러날 조언들도 많지만, 그는 어른이 보기에 아이의 문제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당장 해결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부모가 좋은 방향으로 키를 잡으면 그걸로 된다고 말한다.

이게 다른 육아지침들이 부담스럽고 무서운 반면 그의 책은 위로가 된다고들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아이의 무슨 특성을 개발시키기 위해 뭘 할 필요는 없다. 부모가 불안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고르고, 아이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아이에게 건네기 적합한 언행을 익힐 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의 어떤 특성이 떨어지거나 나쁜 습관이 붙는다는 식의 협박도 없다. 오히려 그런 걱정에 대해, 그렇게 당장 뭐 어떻게 크게 잘못되지 않으니 여유를 가지라고 대답해준다. 그가 굳이 강조하는 거라면, 관계만 좋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유를 가지고 자신의 시선과 태도에 대한 철학을 조금씩 개선해가도록, 결과적 성취를 목표로 하지 않고 부모 자신이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기를 유도한다.

뜬금없고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그래서 이것이 연애지침서로도 훌륭하다. 나는 이 책을 사실 미혼이던 때 학생들을 이해하기 위해 자료삼아 읽고서, 미혼인 친구들에게 연애가이드로 활용하라고 추천해 주었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철학이고,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접근법을 택하는 길을 보여주므로, 그 대상이 아이가 아니라도 유효하다. 저자 본인이 종종 트위터나 라디오에서 육아 조언을 하다 말고 연애도 마찬가지라며 연애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한다. 연인을 아이처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연인처럼 존중하는 차원에서, 연애와 육아는 정말 많이 비슷하다.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어 닮아가는 것도, 사회적 페르소나를 벗고 밑바닥까지 드러낸 맨얼굴로 충돌하는 관계라는 것도, 가장 소중하다면서 오히려 무시해버리기 쉽다는 것까지도 비슷하다. 연애도 상대를 내가 원하는 대로 바꾸는 미션을 목표로 돌아가기 쉽지만, 그것이 또한 서로에게 과욕과 실망을 안겨 관계를 나쁘게 만든다. 미션이 아니라 같이 있어 즐거운 관계를 형성하고 그걸 위해 내가 달라져야 할 부분을 찾아야 잘 풀린다는 것도 같다.

부모가 조금씩 변해 아이와 관계를 좋게 유지하면, 부모들이 그토록 무서워하는 ‘사춘기’도 세게 겪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고 한다. 아이가 부모가 생각하는 모범적이고 안정적인 길에서 일탈하더라도, 부모와 관계가 좋으면 그리 멀리까지 튕겨가지 않는다고도 한다. 그러니 다소 쑥스럽고 얼굴 붉어지더라도 연습할 만하지 않겠는가. 기왕 연습한 김에 배우자나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 다정함을 써먹어 볼 수도 있고 말이다. 여담으로, 나는 그런 다정한 말을 얼굴 붉히지 않고 던져대는 사람이다. “넌 진짜 이런 점이 너무 좋은 것 같아. 나도 이런 걸 배워야 되는데 말이야.” 같은 것. 이것이 듣는 이들을 행복하게 한다. 진짜로.

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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