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란티노와 로드리게즈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데뷔가 어땠는지 알거나 <엘 마리아치>를 봤다면 그가 천재라는 데 큰 이견은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당시엔 천재라는 수식어를 얻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는 '예산' 혹은 '제작비'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돈을 가지고 원맨쇼를 벌였습니다. 그나마 이 돈도 자신의 몸을 마루타로 하여 의약품을 실험하여 번 돈이라는 사실까지 알려져서 더 전설적인 인물로 떠올랐죠.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같은 해에 <저수지의 개들>로 역시 큰 주목을 받았던 쿠엔틴 타란티노와는 또 달랐습니다. 두 사람 다 지독한 영화광이라는 공통점은 종종 파트너를 이루게도 했으나 현재의 영역과 입지는 서로 조금 다릅니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기존 영화의 뼈대를 가지고 자신만의 확고한 영역을 구축해 전 세계에서 추앙을 받는 감독으로 떠올랐다면,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마치 그 뼈대가 점차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가 연출한 영화들을 보면 B급 영화를 21세기에 재현하고 전파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초기의 <황혼에서 새벽까지>나 <패컬티>만 하더라도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쿠엔틴 타란티노처럼 B급 영화의 인자를 '티 안 나고(?)' 깔끔하게 흡수시켰습니다. 그런데 로버트 로드리게즈와 쿠엔틴 타란티노가 각기 다른 길로 들어선 것 같은 지점도 바로 여기였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갑자기 <스파이 키드>를 만들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셨을지 모르겠으나 저는 좀 당황했습니다. "아니 왜???"라고 반응하는 게 당연했을 정도랄까요? 물론 아동 영화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했던 것에서 완전히 방향을 틀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타란티노가 <킬 빌 1,2>로 정점을 찍고 있던 와중에도 그는 변하지 않았으니 더욱 야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2005년에 <씬 시티>를 내놓긴 했지만 이것도 프랭크 밀러와 공동연출이라는 게 못내 아쉬웠습니다.
철저한 B급 지향성
이 정도면 로버트 로드리게즈도 별종 중의 별종이죠. 분명 타란티노 못지않은 재능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그걸 토대로 전형적이지 않은 또 다른 타입의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지금의 그는 흡사 '21세기의 로저 코먼'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친구이자 동료인 타란티노를 보면서 자극을 받을 법도 한데, 자신은 전 세계를 호령하는 감독에는 일절 관심이 없다는 걸 <마셰티>와 <마세티 킬즈>로 공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게 좀 안타깝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대단하게 보입니다. 남이야 뭘 하든 로드리게즈는 자신이 하고 싶은 영화를 하겠다는 거니 그 굳은 의지가 부럽습니다. <플래닛 테러>에서 그치지 않고 <마셰티>를 연출했을 때만 해도 재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굳이 속편인 <마세티 킬즈>까지 내놓은 걸 보면 그의 의중은 분명해 보이거든요.
더군다나 <마세티 킬즈>에서는 또 하나의 속편까지 나올 것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 제목하야 <마세티 킬즈 어게인 인 스페이스>입니다. 네, 보시는 그대로입니다. 마지막에 마세티가 지구를 탈출한 악당을 쫓아서 기어코 우주로 나가서 싸운다는 내용입니다. 이걸 보고 알았는데 <마세티 킬즈>에서 멜 깁슨이 연기한 루더 보즈가 자신이 스타워즈의 팬이라는 멘트를 했던 것도 의도적이더군요. <마세티 킬즈 어게인 인 스페이스>의 예고편을 보면 광선검을 들고 싸우는 장면까지 등장합니다. 시쳇말로 이 정도면 뭐 덕질도 수준급이죠. 멜 깁슨, 미쉘 로드리게즈, 앰버 허드, 찰리 쉰, 안토니오 반데라스, 쿠바 구딩 주니어, 레이드 가가 등이 B급 영화의 악동과 함께하고 있으니 타란티노가 부럽겠습니까? 사실 <마세티 킬즈>의 이야기는 크게 흥미롭지 않습니다. 타국에서 보는 미국의 입지와 현실을 풍자하고 있어서 익살스럽긴 하지만 큰 재미를 느낄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원래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마세티 킬즈>는 그렇게 보는 겁니다.
★★★☆
덧 1) 제시카 알바는 전편에 이어 <마세티 킬즈>에도 등장합니다만... 포스터에 안 보이는 이유가 다 있습니다.
덧 2) 크레딧을 보니 찰리 쉰은 <마세티 킬즈>에서 자신의 본명인 '카를로스 에스테베즈'를 사용했더군요.형인 에밀리오 에스테베즈와는 달리 아버지(마틴 쉰)처럼 쭉 가명을 썼었는데 의아하네요.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덧 3) 한글제목이 전편은 '마셰티'고 속편은 '마세티' 킬즈입니다. 몇 년 사이에 표기법이 바뀌기라도 한 걸까요?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