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림이 만난 사람 ③] 김종인 전 국회의원 (2) (지난 기사에 이어 인터뷰 계속)

김종인 전 의원은 20세기 미국의 자본주의 발달에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으로 26대 대통령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901~1909년 재임)를 꼽았다.

뉴욕 주지사를 지낸 루스벨트는 역사가, 자연주의자, 탐험가이면서도 군인이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조예는 그가 이 분야들에 관해 무려 35권의 책을 쓴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1901년 부통령으로 일하다 멕킨리 대통령이 암살당하자 42살의 나이에 최연소 미국 대통령이 된다. 공화당원이면서도 공화당을 진보진영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던 진보적 개혁가였다.

루스벨트, 재벌의 불법비리 규제해 자본주의 발전의 기틀 마련

그는 재벌 기업인들을 불신했고, 무려 40개의 독점기업을 해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자본주의에 원칙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다만 기업들의 부패와 불법행위들을 반대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전국적인 의료보장제와 건강보험제의 도입을 촉구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기도 했다. 그의 두 번째 임기 동안은 대기업들을 공격하고 법원들이 노동조합에 적대적이고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고 줄곧 비판했다.

특히 그는 남북전쟁 직후부터 기업확장을 통해 시장 독점과 무소불위의 영향력과 횡포를 부리던 재벌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가 그렇게 해서 재벌들의 횡포를 제어했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와 시장경제가 미국에서 발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 김 전 의원의 설명이었다.

그가 왜 루스벨트를 높게 평가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1987년 국회 개헌특위에서 헌법 개정작업을 할 당시 경제분과위원장으로 활약하며 현 헌법의 '핵심 중의 핵심'으로 불리는 헌법 119조 2항을 포함한 경제민주화 조항들을 도입한 배경도 이해됐다.

▲ 김종인 전 국회의원

87년 개헌 당시, 정주영 회장도 2시간 자본주의 강의 듣고 오해 풀어

그는 당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다. 87년 개헌 작업 당시 자신이 개헌특위 경제분과위원장을 맡았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전경련(당시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김종인 의원의 경제 철학과 성향을 알고 있던 터라 '비상'이 결렸고, 홍보위원회를 만들어 김우중 대우 회장이 위원장을 맡도록 하여 전면적인 홍보 및 로비전에 돌입했다고 한다.

정주영 회장 등 재벌 회장들이 자신을 속초의 한 모임에 초청해 특강을 부탁했고 재벌 회장들 앞에서 자본주의의 역사와 성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 등을 설명하며 2시간 이상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그가 이 때 정주영 회장 등 재벌 회장들에게 했다는 이야기의 요지는 "자본주의는 기업들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였다고 한다. 강의와 논쟁이 끝나고 점심 식사를 같이하며, 정주영 회장은 "내가 당신을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은 이렇다. 자신이 독일에서 공부했다고 하니 1953년 독일에서 도입돼 대기업들이 채택하고 있던, 노동자(대표)와 사용자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의사공동결정제도'를 우리 헌법에 도입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는 것이다.

김 전 의원은 노동조합에게 기업 경영의 주요 결정과정에 참여토록 하는 의사공동결정권 제도는 독일이 처음 도입한 것도 아니라며, 역사적 배경을 설명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승전국(연합국)들이 전후 처리 과정에서 독일이 두 번째 세계대전을 일으키도록 부추긴 세력이 바로 전쟁으로 특수를 누리게 된 철강과 석탄 재벌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몇몇 전략산업 분야에서 자본가들을 견제하기 위해 노동자들도 의사결정에 참여토록 하는 헌법체계를 갖추도록 했다는 것이다. 독일이 군국주의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특정 정파가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하기 어려운 정당제도와 선거제도 등을 도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독일은 이 제도를 시행해 본 결과 노사문제 해결을 비롯한 노사 관계 전반에 굉장히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다른 산업 분야로 확대 실시하게 되었다"고 김 전 의원은 설명했다. 프랑스도 이 제도들 도입했고, 영국도 1970년대 중반에 이 의사공동결정제도를 도입할 것을 검토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양극화 해소 하지 못하면 민주주의, 자본주의 자체가 위협받을 것'

화제는 우리 사회에서 갈수록 심해지는 '부의 편중'과 '사회 양극화' 현상으로 옮겨갔다.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을 방치하고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 나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회 양극화를 이대로 방치하고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선진국이 될 수 있느냐? 절대 불가능하다. 민주주의 자체가 위협 받게될 것이다. 선진국들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역사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자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나쁜 사람'이라고 보는 이유도 이른바 참여정부 시절의 경제정책이 사회양극화를 해소하거나 빈부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정책을 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독일 이야기를 꺼낸다.

"내가 아는 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에서 시장경제 체제를 가장 충실히 도입하고 실시한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그의 주장은 독일과 독일 국민들이 누리고 있는 현재의 번영과 복지가 바로 재벌의 독주와 횡포를 적절히 견제함으로써 모든 경제주체들 사이의 공정한 경쟁과 균형발전을 도모한 덕택이라는 주장을 하려는 것으로 들렸다.

그의 톤이 자꾸 높아진다.

"시장(기능)에 모든 것을 맡기자고 한다. 시장문제를 포함해 모든 것을 기업에게 맡기자고 한다면, '분배의 문제'도 시장과 기업들이 맡아야 한다는 얘기인데, 기업들이 (모든 국민들의) 분배문제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절대 불가능하다."

정부가 할 일과 시장에 맡겨야 할 일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본질 아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이른바 '민주적 협조(democratic cooperation)' 체제가 개별 기업과 미국 경제 전체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왜 자꾸 우리 재벌들은 엉뚱한 소리나 하느냐는 비판이다.

"전경련이나 재벌들은 우리 헌법 119조 2항의 내용 중에서 ‘경제민주화’란 단어 자체가 못마땅하다는 겁니다."

헌법 119조 2항은 이렇다.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이 내용 중에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란 부분은 "개별 재벌 기업들을 지나치체 규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양극화 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경제·사회적 긴장이 고조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근본적으로 위협받거나 흔들릴 우려가 커졌을 때 정부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붕괴를 막기 위해 원용할 수 있는 비상 안전장치"를 염두에 둔 조항이라는 설명이다.

헌법 119조 2항을 '빨갱이 조항'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스탈린'이나 다름없어

옆에서 듣고 있던 남재의 전 장관이 거들었다. 자신이 대화문화아카데미(원장 강대인, 이사장 박종화)가 주관하여 2006년부터 금년 4월까지 진행한, '새로운 헌법 필요한가'라는 주제의 헌법 관련 토론회에 참석했더니 "어떤 참석자가 헌법 119조 2항을 '빨갱이 조항'이라고 하기에, 그게 '빨갱이 조항'이면 당신들은 '스탈린'이나 '히틀러'라고 고함을 치며 호통을 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김 전 의원이 다시 말을 받았다. 1997~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IMF 총재인 프랑스인 미셀 깡드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왜,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깡드쉬는 한국 정부가 7년 전에 재벌기업들을 주력 업종별로 전문화시키는 "'업종 전문화' 정책을 추진하려다 못한 데 원인이 있다"고 잘라 말했다는 사실을 김 전 의원은 상기시켰다.

시간이 갈수록 김 전 의원의 이야기는 헌법 문제와 경제문제 그리고 현재의 정치상황 등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한국의 자본주의 역사를 단계별로 구분해, 1960년대는 재벌의 성장기, 70년대는 재벌의 확대기, 80년대는 재벌의 정착기였다고 한다면, 1990년대 이후는 재벌과 재계가 정치권력을 압도하는 시기로 분류할 수 있어요."

무슨 말을 하기 위한 것인지 금세 이해가 되었다. 정치권력을 능가하거나 압도하며 무소불위의 위치가 돼버린 재벌들의 불법행위와 횡포를 제어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새롭게 도약하기 어렵고 그런 차원에서 헌법 119조 2항은 꼭 지켜내야 할 조항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듯했다.

촛불집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슬쩍 물었다.

"지금의 20대와 40대들은 1989년 이전에 태어나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체제 붕괴를 눈으로 본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데올로기가 퇴색한 시절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좌파'니 '우파'니 해서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곤란하고 통하지도 않는다. 지금 세대들은 자신의 생활에 불편을 준다고 생각하는 정당이나 후보에게 표를 찍지 않는다."

촛불집회 초기에 이명박 대통령과 보수우익 단체가 촛불집회 배후로 친북좌파를 지목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 얼마나 한심하냐는 투였다.

"경제가 잘 안 돌아가는 것을 촛불집회에다 핑계를 대고 있는데, 저 사람들(이명박 정부)은 나라와 경제를 운영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사회안전망 충실히 갖춘 나라에서는 공산당 허용해도 발 붙이지 못해

김 전 의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지금처럼 신자유주의 정책, 시장만능주의와 친 재벌 정책이 계속돼 사회양극화를 비롯한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시정할 길이 없게 되면, 민중 폭동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김 전 의원은 독일 태생의 저명한 미국 경제학자 허쉬만(Albert O. Hirschman)의 '터널효과(Tunnel Effect)' 현상에 빗대어 양극화가 몰고 올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터널효과란 왕복 2차선인 터널에 사고 등으로 한쪽 차선에서는 차가 빠지지 않고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 반대편 차선은 소통이 잘 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꽉 막힌 차선의 운전자가 처음에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가도 차가 빠지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면, 참다 못해 반대편 차선으로 자동차를 돌리게 되면 마주 오던 차와 부딪히게 되고, 결과적으로 소통이 되던 반대편 차선마저 막혀 두 개의 차선 모두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를 말한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경제관료 뿐만 아니라, 재벌과 한국 사회의 10% 부자들이 새겨들어야 내용이다.

김 전 의원의 2008년 현재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관한 진단과 전망은 자연스럽게 남북통일 문제로 이어졌다. "현재 남한의 제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 상태에서는 통일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설사 통일이 된다고 해도 위험하다"고 김 전 의원은 전망했다.

그의 대답의 준거는 역시 독일에서 나왔다. "서독이 1966년 공산당을 허용했는데, 그렇게 허용할 수 있었던 것은 공산당이 등장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서독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충실히 쌓아 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서독에 공산당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곧 이어 열린 총선에서 공산당이 전국에서 5% 이상 득표할 경우를 우려했으나 막상 선거에서 공산당의 득표율은 2%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기반에서 서독 정부의 통일정책인 '브란트의 동방정책(Ostpolitik)'도 성공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1969년 서독에서 처음으로 사회당이 집권에 성공했는데 브란트의 동방정책에 불만을 가진 정파들의 연합 공세에 밀려 1972년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할 당시 '반(反) 브란트 전선'이 형성되어 전후 독일 역사에서 가장 치열한 선거전이 벌어졌지만, 막상 서독 국민들은 69년 선거 때보다 더 많은 표를 사회민주당(Social Democratic Party)에 몰아주었다고 한다.

국민기초생활보호 대상자 외 차상위계층 준극빈층만 600만명이 넘어

김 전 의원은 다시 우리나라 상황을 비교한다. 우리나라에 '국민기초생활보장 대상자' 바로 위에 '차상위 계층'이라 부르는 가난한 사람들이 600만명이 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김 전 의원은 "이런 상태에서 이명박 정부가 만약 의료민영화 하나만 밀어붙여도 바로 폭발(폭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독일과 독일 국민들이 오늘날 누리고 있는 부와 번영의 기초가 된 '라인강의 기적'의 아버지이자 설계자인 에르하르트 전 경제장관(나중에 수상과 대통령까지 지냄)을 연구하게 된 배경을 물었다. 김 전 의원이 풀어내는 에르하르트에 관한 이야기는 '감동적'이라 할 만했다.

"에르하르트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다. 1차 세계대전 때 아픈 몸을 이끌고 전쟁에 나가 부상당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 뒤늦게 경제학 공부를 시작한다. 그러나 히틀러가 집권하자 히틀러를 지지하는 '교수동맹' 가입을 거부하고, 대학을 나와 뉴렘베르크의 한 연구소에서 1차대전 이후 독일이 걸어 온 길을 분석하며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패배를 확신한다. 그래서 그는 독일이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전철을 다시 밟아서는 안된다며 전후 독일 재건 계획을 직접 손으로 써 작성한다.

그의 계획서는 히틀러에 반대하는 지하조직의 손에 넘어갔으나 곧 바로 발각되어 모든 관련자들이 처형된다. 다행히 에르하르트는 발각되지 않고 지하에서 숨어 지내다 우여곡절 끝에 전승국 미군이 관리하던 바이에른·헤센 지역의 경제책임자가 되었으나 거기서도 1년 반 만에 관료들에 의해 쫓겨난다. 이후 뮌헨대학 등에서 강의하며 전후 독일의 재건을 위해서는 독일 혼자의 힘만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하며 유럽연합(EU) 같은 공동체를 구상하게 된다.

한편, 1948년 미국 의회는 전후 유럽 재건계획인 '마샬 플랜(Marshall Plan)'을 승인했고, 전승국들은 독일 재건계획을 책임질 경제총책을 물색하다 에르하르트를 발탁한다. 영국, 미국, 프랑스 등은 독일의 재건을 돕되 다시 전쟁을 일으키는 강대국이 되지 못하도록 기획경제, 통제경제 체제를 강요하게 된다. 그러나 에르하르트는 전승국들이 강요하는 경제정책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작성한 경제구상을 금요일 저녁에 기습적으로 발표해 버린다.

미군 헌병에 끌려간 에르하르트는 심문을 받게 되는데, 이 때 갈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 1908-2006)를 비롯한 미군정 경제자문관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구상의 정당성을 놓고 한 치도 양보없는 설전을 벌인다. 그 때 에르하르트는 '미국에서도 시장경제가 잘 안되고 있는데 독일에서 무슨 수로 시장경제를 바로 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며 자신의 재건계획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독일의 동쪽(동유럽)에는 이미 공산주의체제가 정착하고 있는데, 서독이 잘못되면 독일 전체가 공산화된다며 자신의 계획을 실행할 수 있도록 6개월만 기다려 달라고 호소하고, 6개월 후에 잘못되면 자신을 처형해도 좋다며 미국 군정 장관과 ‘담판’을 벌인다. 마침내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졌다.

'라인강의 기적'은 설계자 에르하르트의 '사회적 시장경제' 체제에 바탕

그리고 에르하르트는 자신과 정치적으로 원수지간이나 다름없는 아데나워 수상 밑에서 자신의 정책을 하나씩 펴 나간다. 그의 정책이 바로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system)'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에르하르트의 인기는 날로 치솟았고, 마침내 1949년 총선에서는 에르하르트가 출현하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에르하르트가 나타나지 않는 유세 현장은 썰렁할 정도였다고 한다.

1957년 에르하르트가 주도한 기독민주연합(CDU)은 마침내 단독집권에 성공하고, 이에 충격을 받은 (중도우파 정당인) 사회민주당(SDP)은 1959년 에르하르트의 기독민주연합 정권의 경제정책을 일부 반영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정강정책까지 바꾸게 된다."

김 전 의원은 "1968년 프랑스의 학생운동이 격렬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비슷한 시기에 독일의 학생운동은 프랑스 보다 훨씬 격렬했다. 그런데 독일의 학생운동이 결국 정부에 굴복하는 것으로 결말이 난 배경에는 독일의 탄탄한 사회안전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이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동조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미국이 1929년 세계대공황(The Great Depression) 이후 각 분야의 지성인들이 대거 공산당에 가입하는 열풍이 불자,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뉴딜(New Deal) 정책을 구상했고, 뉴딜정책은 바로 사회안전망(social security net)을 구축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것이 김 전 의원의 설명이다.

아무리 들어도 끝이 없을 것 같은 흥미진진한 경제 강의는 끝났다. 헌법 119조 2항의 의미와 중요성이 새롭게 느껴진다. 헌법 119조 2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 졌다. 그 조항이 재벌을 때려잡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분명해졌다.

그의 결론은 사회안전망 등을 구축하고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지 않고는 한국 사회는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고, 신자유주의와 의료 민영화 쟁책 등을 계속 밀어붙일 경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제 자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였다.

마지막 그의 말이 귓가를 때린다.

"우리나라 전·현직 대통령들 중에서 언론에다 핑계를 대는 사람들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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