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 제11화 '짝사랑을 끝내는 단 한 가지 방법'은 쓰레기(정우 분)가 성나정(고아라 분)에게 마음이 있음에도 정작 그녀에게 오빠 이상으로 다가갈 수 없었던 이유가 명확히 드러난 한 회였다.
쓰레기가 나정이를 향한 이성의 감정을 억지로 누를 수밖에 없는지는, 첫 회에서부터 친남매가 아님에도 친남매 이상으로 의지해왔던 쓰레기와 나정이의 다정한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쓰레기의 말에 따르면, 쓰레기의 부모님과 나정의 아빠 성동일의 관계는 절친 그 이상의 단어로도 표현이 안 될 정도로 깊은 사이다. 쓰레기의 아버지가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을 때 유일하게 보증을 서준 이가 나정이 아빠였고, 쓰레기의 아버지가 심장 수술을 받았을 때 자식들이 공부한다고 미처 찾아가보지 못했을 때에도 든든한 힘이 되어준 이도 나정이 아빠였다고 한다.
해태(손호준 분)의 입방정으로 나정이가 하숙집에 기거하는 남자들 중 마음에 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만천하에 밝혀진 순간, 나정의 부모 성동일과 이일화는 각각 칠봉이(유연석 분)과 빙그레(바로 분)을 꼽았다. 쓰레기는 아예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았다. 쓰레기를 '아들'로 생각하는 성동일과 이일화에게 쓰레기는 사윗감에 있어서 나정이 아빠 동일의 소싯적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일찌감치 제외된 듯한 해태만큼의 존재감도 없어보였다.
나정이의 고백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을 뿐, 매일 나정 생각에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쓰레기에는 다소 섭섭한 일. 쓰레기는 쓴웃음을 지어보이며 힘겹게 마음을 잡는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냉혹한 현실인 것을.
"성님, 만약 나정이를 친구로 만났다면, (이성으로) 좋아했을 건가요?" 해태의 의미심장한 돌직구에 쓰레기는 잠시 주춤거린다. 하지만 쓰레기의 대답은 명확했다. "어"
만약 나정을 칠봉이나 해태처럼 대학 친구 혹은 친구의 동생으로서 만났다면, 그녀를 향한 쓰레기의 서성거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막 풋풋한 연애를 시작해 훗날 결혼이란 결실을 맺은 삼천포(김성균 분)와 조윤진(도희 분)처럼 남들 앞에서 자유롭게 팔짱도 끼고, 애정표현도 스스럼없이 하는 그런 알콩달콩 사랑을 했겠지.
그러나 나정의 부모에게조차 "쓰레기는 사윗감이 아닌 우리 아들"이라고 대놓고 못박힌 쓰레기에게 청춘이라면 누구나 누릴 권리인,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소박한 연애를 꿈꾸는 그 자체가 언감생심 사치였다. 하지만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했을 뿐 쓰레기의 눈빛은 계속 나정을 향해 있었고, 세상 그 누구보다도 그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결국 나정을 향한 자신의 뜨거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던 쓰레기는 나정과 함께하기 위해 중요한 세미나에서 뛰쳐나갔다. 그리고 자신의 숨길 수 없는 감정을 꿰뚫어 돌직구를 날린, 그의 사랑에 있어서 최대 라이벌 칠봉에게 그 나름의 방식으로 직구를 던진다. 나정이를 좋아한다고, 나정이 마음 받아들일 것이고 내 마음도 이야기할 거라고. 고민만 하다가 좋아하는 여자 다른 남자에게 빼앗기면 어떻게 하냐고.
하지만 나정은 자기 혼자서만 짝사랑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진실을 미처 알지 못한다. 여전히 나정은 자신을 좋아한다는 쓰레기 오빠의 답변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만, "쓰레기 성님도 너한테 마음이 있다"면서 진실을 전하는 해태의 말을 믿지 않는다.
정말로 힘겹게 쓰레기가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었음에도 기막힌 운명의 장난에 선뜻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쓰레기와 나정 그리고 칠봉이. 그러나 서두를 필요도, 조급해할 필요 없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짙어지고 명확해지는 그들의 감정선 자체에 귀 기울이면 그뿐. 그렇게 <응답하라 1994>는 조금씩 용기를 내며 서서히 사랑에 솔직해지는 쓰레기의 변화로 진한 여운을 남기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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