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싹을 자르려는 헝거게임
헝거게임이라는 건 결국 판엠의 독재가 공고히 유지될 수 있도록 개최하는 연례행사이자 공포정치의 극단적인 예일 것입니다. 유래 자체가 과거에 일으킨 실패한 반란에 대한 연좌제적 성격의 처벌이지 않습니까. 그와 동시에 정부가 가진 무시무시한 권력의 과시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면 헝거게임이 지속되는 이유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판엠의 시민들은 매년 벌어지는 살상을 지켜보면서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고, 그때마다 정부의 지시와 통제에 고스란히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 속 자신들의 운명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체념했을 것입니다. 판엠이 그토록 오랫동안 헝거게임을 계속해서 실시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정부의 의도가 제대로 먹혀 패배의식을 심어줬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음에 다름 아닙니다.
남궁민수와 캣니스
반면 남궁민수는 과감하게 패러다임(기차)를 부수면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제가 <설국열차>를 본 바로는 썩어빠진 현실을 전복시키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커티스처럼 저돌적인 의지와 행동 이전에, 남궁민수처럼 기존의 가치관이 심은 사고에 안주하거나 답습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바로 이 역할을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에서 캣니스가 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캣니스는 자신이 이것을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반항에서 시작된 것은 맞지만 혁명을 시도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 사부작 영화가 점점 더 흥미로워지고 있는 지점도 바로 이것인데,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는 그랬던 캣니스가 서서히 전면에 나서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혁명의 불꽃이 타오르는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는 전편으로 다진 세계관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습니다. 전편이 혁명의 잉태를 담았다면 이번에는 그것이 자궁에서 차츰차츰 자라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판엠은 뒤늦게라도 혁명의 싹을 잘라버리려고 하지만 그 바람과는 정반대로 혁명 이전의 단계에서 필요조건인 반항심을 키우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에서 바야흐로 캣니스는 혁명을 상징하는 새인 '모킹제이'로 변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지막 이야기인 <헝거게임: 모킹 제이 1, 2>에서는 캣니스를 중심으로 한 반군이 판엠과 대대적인 전쟁을 벌이게 될 것을 암시해 호기심을 잔뜩 키웠습니다. 다만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가 그랬던 것처럼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도 서곡에 가까워 다소 지루했습니다. 시간이 부족해 헝거게임의 묘사와 비중이 현저하게 낮은 것도 흠입니다. 결말부에서 밝혀지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아쉬운 부분입니다. 유행을 따르며 책 한 권을 둘로 나눈 모킹제이가 우려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