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1
내가 만드는 잡지는 자가출판, 소규모출판의 범주의 속한다. 잡지의 유통처는 주로 전국 소규모 출판물 전문점과 일부 온라인 서점인데, 그 중 홍대 인근 소규모 출판물 전문점에서 잡지를 접하는 독자들이 특히 많은 것 같다. 대표적인 독립출판물 축제 두 개도 홍대인근에서 벌어진다.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리는 ‘어바웃 북스’와 합정 카페 무대륙에서 열렸던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그것이다. 그래서 소규모 출판물이 인디밴드의 음악과 함께 대표적인 홍대문화로 꼽히나보다.

요즘 소위 ‘홍대문화’와 관련된 사람들이 까이는 분위기다. “어휴, 힙스터(중간계급 부모님을 둔 청년 중심의 문화로 주류를 배척하고 위선적이고 모순적인 부분을 가진 집단이라고 한다) 나셨네. 님들이 주로 몰리는 지역 땅값은 올라가고, 그렇게 땅값만 올려놓으면 창작자 소비자 세입자 모두 쫓겨날 거고, 그렇게 다른 곳 가면 또 그곳 땅값 올릴 거고... 부동산 중계업자들과 지주만 좋은 일 시켜주고, 세입자들은 영원히 고통 받고…. 이게 다 홍대에서 뭔가를 하는 님들 때문임.”이라고 주로 까이는 듯?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홍대문화 창조자와 소비자를 대표할 수는 없겠지만)은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고 무엇을 실천할 것일지에 대한 고민하고 있다. 일단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감수성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이들끼리 모이는 활동 자체를 멈출 수는 없을 것 같다. 자존감을 형성하게끔 돕고 삶의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있다는 감각을 주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활동이 체제의 부조리에 순응하는 것이 아닌 맞서는 방향이면 좋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하죠?
고민2
기술의 발전, 노동의 유연화 등은 ‘쓰이고 싶지만 쓰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를 늘이고 있다. 일을 하더라도 저임금 고강도 노동일 경우가 많다.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며 불행을 느끼는 사이 땅값은 자꾸 오른다.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해진다. 전세로 몇 년 살다보면 몇 천의 돈을 올려달라는 요구와 마주하기 십상이다. 몇 천의 돈을 구하지 못하며 다른 데로 쫓겨나거나, 월세로 전환하거나, 월세비도 감당하지 못하면 거리로 내몰리거나…. 나 역시 극단적인 경우 노숙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금태환 폐지 이례 신용은 무한히 팽창하고 있고, 적은 자산을 가진 노동자들은 물가와 집세가 올라가는 속도를 쫓아가지 못해 가랑이가 찢어진다. 그러는 사이 자본가들과 지주들은 가만히 앉아있어도 돈을 번다. 아오, 쓰다 보니 또 빡치네. 이게 다 화폐경제 때문이다!
고민이 해결되기 바라며 <화폐 없는 세계는 가능하다>를 읽었다. 이 책의 저자 중 하나인 테리 레이치는 화폐, 시장,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선물경제(gift economy)를 제시한다.
"자본주의와 달리 선물경제는 환경에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농업을 예를 들면 생산자들은 토지를 혹사시켜서 거둘 이득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미래의 삶을 보장하고 농산물을 공동체에 돌려줌으로써 얻는 사회적 인정을 유지하기 위해 농업 환경 자원을 보존하려 노력할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업가들은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판매하며, 소비자들은 강요된 노동의 삶에 지친 탓에 이 상품들을 구매한다. 이는 과잉 생산과 토지 자원의 남용으로 이어진다. 선물경제에서 사람들의 생산적 노력은 한가로운 삶을 즐기며 아름답고 건강한 환경을 향유하려는 욕망과 조화를 이룬다."(p.179)
또 다른 저자 애덤 뷰익은 화폐 계산 대신 현물 계산을 강조한다.
"화폐경제는 무엇을 생산하는 ‘비용(credit)’이 단순히 돈과 관련되어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냈다. 실제로 비용이라는 단어는 재정 및 화폐 유통과 결부되어 있어서, 우리가 이것을 비화폐적인 뜻으로 말하고 싶을 때는 따옴표를 붙여야 한다. 그러나 내가 이 글을 쓰는 데 사용하는 연필의 진짜 비용은 50펜스가 아니라, 이것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나무, 흑연, 노동, 에너지, 기계가 마모된 정도의 총합니다. (중략) 재화는 나무에서 열리지 않을 것이고 그것을 생산하는데 노력과 자원을 소모해야 할 것이다. 요점은 사회주의하에서는 이런 노력과 자원의 소모가, 나무와 흑연과 기계의 마모와 전기(와 노동시간) 등을 기준 삼아 오로지 현물로만 평가 계산되리라는 것이다. (중략) 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재미없고 창조적이지 않으며 틀에 박힌 노동이야말로 진짜 ‘비용’이므로 이것들을 최소화하는 일이 목표가 될 것이다. 생산방식의 변화도 느려질 것이다."(p.228-p.229)
책은 실제로 화폐 교환이 아닌 현물 계산과 노동의 교환에 기초하는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이들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트윈 오크스 공동체와 스페인 스쿼터 들이 그 예다. 그걸 보니 따라하고 싶어서 얼마 전 내가 운영자로 있는 사이트인 여잉추(http://ingchu.com) 이용자들과 만나 ‘여잉추 마을’을 상상해봤다. 감수성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이들끼리 모여 감자밭을 일구며 개드립을 치며 사는 것을 생각하니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구체적인 강령도 정했다.
- 최소한의 화폐만 이용하며 최대한 자급자족한다.
- 자립과 자아실현을 위한 활동을 지향한다.
- 감자를 주식으로 한다. 작은 공간 적은 노력대비 많이 수확할 수 있고 병충해에도 비교적 자유로운 구황작물이니까.
- 생산한 감자는 공동체 일원 모두가 공평하게 나눠 갖는다.
- 경쟁이 아닌 다른 삶의 방식이 있음을 이해하고 실천한다.
-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지 않는다.
- 문화적 다양성과 재미를 추구한다. (끊임없이 개드립을 연마하고 상대의 개드립에 관대하게 대응한다)
- 공감능력과 눈치를 갖도록 훈련한다.
- 국가권력에 대한 견제도 잊지 않는다.
- 갈등은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고 36시간 내에 푼다.
하지만 역시 고민은 남아있다. 땅을 소유해야 모여 살며 공간, 시간, 재화 등을 공유하여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을 할 수 있고 활동하다가 땅값이 올라 쫓겨나는 일도 방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개같이 벌어 정승 같은 지주가 돼야 하나? 혹은 ‘착한 지주’를 포섭해야 하나? 또한 저런 형태의 마을공동체는 도시에 고립된 곳에 위치할 확률이 큰데 최소한의 소비를 위한 화폐는 어떻게 벌어들여야 하나.
일단 여잉추 마을에 관심 있는 착한지주 분은 monthlyingyeo@tistory.com으로 메일 보내 주세여. 함께 고민해봅시다.

잉집장

<월간 잉여>는 잉여를 위한 잉여에 의한 잡지입니다. 14호까지 발간됐습니다. 이름만 월간 잉여임. 갈수록 발행텀이 길어지고 있음. 발행인 겸 편집인이 개털인데다 게으른 탓입니다. 그 발행인 겸 편집인이 저임. 최근 이상한 웹진 커뮤니티 사이트도 만들었는데 놀러오세요. http://ingch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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